1. 카스트로의 공직 사퇴, 예정된 일이었나
갑작스런 일은 아니었다. 카스트로는 81세 고령이며, 지난 몇년 동안 건강이상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었다.
2006년7월 장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에게 권력을 `임시 이양'하는 절차를 밟은 바 있다. BBC방송 등 외신들은 지난해 말부터 "이른 시일내 카스트로가 공식 권력 이양을 선언할 것"이라고 보도했었다. 절대권력자의 갑작스런 사망이나 변고 같은 일 없이 몇년에 걸쳐 `포스트 카스트로 체제' 준비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는 점이 쿠바에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2. 그럼 현지에서는 혼란이나 소요는 전혀 없는 것인가
물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쿠바 수도 아바나의 분위기는 혼란이나 소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반세기 동안 나라를 지배해온 카스트로의 퇴장을 바라보는 아바나 시민들의 감정에는 지도자에 대한 추억, 실패한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원망, 앞으로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도 격렬한 반체제 움직임이나 동요 등은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으며, 차기 지도자도 급격한 체제변화를 시도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 쿠바는 중미의 작은 나라에 불과한데 왜 쿠바 문제에 세계가 이토록 관심을 쏟는 것일까
면적 11만㎢로 한반도 크기의 절반에 불과한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는 경제규모나 외교적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현존하는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들 중 하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이래로 제3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아이콘이 돼왔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쿠바를 `미국 턱밑의 위협'으로 보아왔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알수 있듯, 냉전 시절 쿠바는 미국과 옛소련의 대립을 상징하는 대리전 전장이기도 했다. 쿠바의 변화는 북한을 비롯한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향방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이다.
A tricycle taxi with images of Cuba's retired leader Fidel Castro is parked
on a street in Havana February 20, 2008. /Reuters
4. 현재 쿠바의 경제 사정은 어떤지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쿠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기준(PPP)으로 환산했을 때 4500달러로 세계 140위 수준이다. 이집트(5400달러)나 중국(5300달러)에는 못미치고, 인도네시아(3400달러)와 필리핀(3300달러)보다는 나은 정도로 보면 된다. 수치로 나타난 경제력은 좋지 않지만 보건돚의료 수준이 높아 국민 평균 기대수명은 77.08세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교육 인프라가 잘돼있어 성인 문자해독률도 99.8%로 선진국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해 실질경제성장률은 7%였다.
5. 미국의 제재 때문에 많이 피폐해졌다고 하는데, 경제적 자생력이 있는 것인가
물론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계획경제체제의 폐해가 없다고는 볼수 없다. 지난해 공식 실업률은 1.7%였지만 실제로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력의 4분의3이 국가에 고용돼 있기 때문에 향후 시장경제로의 변화 과정에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쿠바는 코발트 니켈 철광 구리 같은 천연자원을 소량 생산하고 있으나 에너지는 거의 `좌파 국가' 베네수엘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해 대외교역은 사실상 끊긴 상태다. 쿠바가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시킨 `중국식 개혁'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경제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다.
6. 카스트로는 좌파의 아이콘인 동시에, 세계 최장기 집권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후 쿠바의 권력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쿠바 의회는 24일 5년 임기의 국가평의회 위원 31명과 차기 의장을 선출한다. 지난달 선출된 쿠바 의회 614명은 모두 공산당이 소속인데, 카스트로는 지난 19일 공직 사퇴 성명에서 국가평의회 의장직과 군 통수권을 내놓겠다고 밝히면서도 공산당 제1서기 자리를 내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의회가 `민주적 절차'를 밟긴 하겠지만 카스트로의 의중이 계속 힘을 발휘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스트로는 1997년 공산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사실상 동생 라울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했으나, 최근 몇년새 "더 젊고 에너지 넘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입장에 변화가 생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관측통들은 76세로 역시 고령인 라울이 형식상 최고지도자가 되고, 주변 카스트로의 옛 동지와 상대적으로 젊은 `개혁파'들이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People pass a billboard showing Cuba's retired leader Fidel Castro in Havana, February 19, 2008. /Reuters
7. 그렇다면 라울을 제외한 `차기 후보군'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나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카스트로 최측근이던 라미로 발데스(75) 전 정보통신장관과 호세 라몬 발라르게(75) 보건장관, 리카르도 알라르콘 케사다(70) 인민권력전국회의 의장 등이 라울을 보좌하며 형과 동생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맡고, 좀더 젊은 테크노크라트들이 개혁 실험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런 테크노크라트의 대표주자는 5명의 현 부통령 중 한명인 카를로스 라헤 다빌라(56)와 페르난도 라미레스 에스테노스(56) 공산당 대외관계 위원, 펠리페 라몬 페레스 로케(42) 외무장관 등이다. 외신들은 특히 라헤를 가장 유력한 주자로 보고 있다.
8. 카스트로 퇴진 뒤 대미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점쳐지는데
미국은 카스트로의 퇴진을 일단 환영하면서도 "향후 쿠바 지도부의 변화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며, 미 국무부는 당장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일단 미국의 최대 앙숙인 카스트로가 공식 석상에서 물러난 만큼, 해빙의 모티브는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선 미국의 대(對) 쿠바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단언하긴 힘들다. 미국이 쿠바 카스트로 체제에 초강경입장을 취해온 배경에는 플로리다를 기반으로 한 쿠바 반(反) 카스트로 망명단체들의 로비가 있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런 단체들이 이른바 `쿠바 민주화'에 미국이 좀더 개입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은 중남미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9. 미국의 향후 쿠바 정책에 대한 주요 대선 주자들의 입장은
공화당의 대권주자로 사실상 굳어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달 유세 과정에서 "베트남전 참전 때 포로로 잡혔다가 쿠바인에게 고문을 받았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베트남 정부는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나 교도소에 쿠바인은 없었다"며 부인했고, 쿠바 측도 넌센스라며 일축하는 등 설전이 벌어졌었다. 매케인은 쿠바의 민주화를 앞당겨야 한다며 아바나를 상대로 강경론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 유력 후보들인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도 쿠바 민주화를 위해 미국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쿠바계 히스패닉 표심을 염두에 둔 `선거용 발언'으로 보는 시각들이 더 많다.
10. 카스트로 퇴진이 중남미 `좌파 전선'에 미칠 영향은
브라질 언론들은 지난 20일 "라울이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에게 쿠바의 변화를 도와달라며 지원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룰라 대통령은 카스트로와 오래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지' 사이다. 강경 반미주의자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진작부터 "내 스승은 예수와 카스트로"라며 카스트로 추종자를 자처해왔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에게 카스트로가 미쳤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우상'이 사라진 중남미 좌파전선은 룰라와 차베스의 경쟁 속에 동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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