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꽤 알려진 영화인 듯. 팀 버튼, 이완 맥그리거, 제시카 랭... 내가 알고 있는 이름만 해도 이렇게 셋 씩이나 등장하는 걸 보면 '네임 밸류' 면에선 그런대로 괜찮은 영화인가보다. 암튼 나는 어제, 2007년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빈둥거리며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내게는 신작이고, 새로운 발견이고, <놀랍도록 흥미진진하며 모험 가득한 팬터지>였다.
물고기 한마리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에 참 잘 어울리는 포스터
팀 버튼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결과적으로' 팀 버튼의 영화를 자꾸만 보게 된다. 이 영화 <빅 피쉬>는 팀 버튼의 작품인 줄 아예 모르고서 우연히 보게된 것이니 딱 그 케이스에 해당된다. 영화 보고 몇년 지나서야 그게 팀 버튼의 작품인 줄 알게 됐던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비틀 주스>와 <가위손>, <배트맨>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 중 <배트맨>은 너무 재미있고 으스스하게 보아서 그 충격이 오래오래 갔었다. <비틀주스>와 <가위손>은 '정말 희한한 영화네...' 하면서 봤는데 지나고 나서 두고두고 곱씹어보니 어쩐지 내 취향인 것 같다, 하는 그런 영화들이었다. 팀 버튼의 영화인줄 알고서 일부러 '골라 보고' '깔깔 웃으며 보았던' 유일한 작품은 <슬리피 할로우>였다. 그 시절에 왜 굳이 분위기 쭈글쭈글한 신촌의 비디오방에서 그 영화를 봤는지는 지금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내가 팀 버튼의 영화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릴적 <킹콩> 이래 처음 다시 보는 듯한 제시카 랭(왼쪽 두번째), <브래스트 오프> 이래로 역시나 처음 보는, 못알아볼 정도로 변한 이완 맥그리거(오른쪽 두번째) 왜 이 사진에서 남자주인공 옆에 있는지 알수 없는 미묘한 여성 배역(맨 오른쪽)...
<빅 피쉬>는 내가 보았던 팀 버튼의 영화들 중엔 가장 쉽고 재미있고 따뜻하다! 좀 보태어 말하자면,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내겐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내 취향 판타지'로 기록될 것 같다. 뻥쟁이 아버지의 되도 않는 모험담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한 아들, 그것도 직업이 UPI통신 기자(매우 도식적입니다그려)인 아들. 평생 허풍떨다 지쳐 몸져누운 아버지. 영화는 아버지의 회상, 아버지의 상상,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아버지가 자신을 따르는 착한 며느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등등으로 직조돼 있다. 멍텅구리 샌님 아들녀석이 건져올린 아버지의 인생, 그리고 영화의 테마는 결론만 놓고 보면 단순하다.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시작해 평생 모험의 바다를 헤치며 다니다가 결국 고향의 강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인생, 그가 살아온 시대 자체가 결국은 거대한 판타지였단 말이다, 이 녀석아...
저렇게 큰 사람이 정말 있었다는게 놀랍다!!!
사랑을 발견하면 시간이 갑자기 멈추고, 사랑을 잡으려하면 갑자기 시간은 빨리 지나가버린다
집채보다 큰 괴물과 눈에 유리알을 낀 마녀, 유령 마을과 샴 쌍둥이 미녀, 서커스, 로맨스, 전쟁과 시인과 은행강도. 참 잘 짜맞춰진 스토리와 영상들, 폴 오스터의 소설들보다도 더 환상적인 '미국판 마술적 사실주의'. 그러면서도 현실을 살짝 비웃어주는 듯한 팀 버튼의 묘한 센스. 아, 진짜 환상적인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