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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탈식민에 관한 책들

딸기21 2023. 4. 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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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우리집에서 성실을 혼자 담당하고 계시는 분이 탈식민 세미나를 한다고 해서, 생각난 김에 제가 읽은 것들 목록을 정리해봅니다. 제 리스트들이 다 그렇듯이, 이 책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고요. 그냥 제가 읽은 책들 중에 탈식민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예요.
 
맨 먼저 꼽을 것은 단연 이 책이죠. 
 

 
네그리튀드(흑인성, 흑인됨)라는 개념을 만든 에메 세제르의 <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
 
한 흑인이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노예선 바닥에 실려 묶인 채 얻어터지고 모욕을 당하면서 대륙으로 이송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합시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요? 이 모든 것이 내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역사가 분명 무겁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30쪽)
 
그리고, 인도 학자가 쓴 것답게 매우 현란하면서도 번쩍이는 통찰이 철철 넘치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스피박의 유명한 에세이(바로 이 책의 제목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나온지 25년이 지나서, 그 에세이 이후의 서발턴 논의를 보여줄만한 글들을 묶은 책입니다. 애초의 에세이에 대한 차테르지 등의 평가도 들어있고, 스피박 스스로의 후일담같은 글도 묶여 있습니다. 책에는 그 에세이가 두 번 나옵니다. 맨 앞에 스피박의 업그레이드 버전 에세이, 맨 뒤에 원래의 1983년 에세이가 실려 있거든요. 그 사이에 묶여 있는 글들이 모두 재미있습니다.
 
스피박의 대담 -마이너리티는 누구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나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도 재미있었는데, 내용에 대한 기억은 안드로메다로... 
 
스피박을 읽었으면 당연히 이어서 읽을 수밖에 없는 라나지트 구하. <역사 없는 사람들>이라는 책인데요. 역시나 인도식 어려운 글쓰기입니다만, 읽고 나면 후회 없는. 
 
책에 인용된 타고르의 글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라, 다시 옮겨놓습니다.
 
"어느 날 오후 네 시 반쯤에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막 돌아왔는데, 그때 우리 집 삼층 높이에 걸쳐 있는 검푸른 뭉게구름을 보았다. 얼마나 놀라운 장면이었던가. 나는 지금도 그날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그날의 역사 속에서 그 뭉게구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안에서 라빈드라나트는 혼자이면서 모든 사람이 되었다. 
또 한 번은 방과 후에 우리 집 서쪽 베란다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작은 당나귀 한 마리(영국 제국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그런 당나귀 말고 언제나 우리 사회 안에 들어와 있었고 태초 이래로 변함 없는 그 짐승)가 가정부가 사는 방 쪽에서 나와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암소 한 마리가 그 당나귀 등을 사랑스럽게 핥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살아 있는 한 생명체가 다른 한 생명체를 위해 사는 모습을 본 아름다운 광경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역사를 통틀어 그 장면을 황홀한 눈으로 본 사람은 라빈드라나트 밖에 없었다. 나는 확신한다. 그날의 역사에서 그 장면이 갖는 심오한 의미를 갖게 된 사람은 라빈드라나트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 자체로 창조인 터전 속에서 라빈드라나트는 오로지 혼자였고 역사를 통해 공적으로 어느 누구하고도 엮이지 않았다· 역사가 공적인 곳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영국 백성일 뿐 라빈드라나트 그 자신은 아니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문학 속의 역사성>)
 
호미 바바가 엮은 <국민과 서사>도 비슷한 종류의 책입니다. 
 
작년에 읽고 정리해둬야지... 마음만 먹고 식탁 위에 그냥 던져둔 아슈스 난디의 <친밀한 적>도 매우 흥미로운 책입니다. 역시 인도 학자의 글인데, 인도의 식민주의-탈식민과 영국인들에게 뿌리 내리고 결국 그들마저 옥죄게 만든 식민주의의 그늘을 분석해요. 
 
난디의 책을 읽은 것은 작년에 이 책을 읽고 궁금해졌기 때문이었어요. '다양한 다른 세상'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아르투로 에스코바르의 <플루리버스>. 이거 보고, 올들어 갈레아노 책 보고 나서 필 받아 읽은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칼리반> 또한 흥미진진했어요. 올들어 남미에 관한 책들을 좀 읽었는데 그 쪽에 대해서는 목록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네요.
 
인도 학자들 책을 여러 권 소개했는데, 세제르와 함께 탈식민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프란츠 파농이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진짜 읽어볼만 합니다. 
 
나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나를 끊임없이 밀어냈다.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이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고로 나는 비합리성에 내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더 불합리한 백인 때문이었다. (156쪽)

나는 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한 주체가 아니다. 의미는 이미 그 곳에 있었다. 내 이전에 이미 그곳에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며 말이다. 내가 세상을 태워버릴 횃불을 만들 구상을 하는건 내 열악한 검은 불행, 내 사악한 검은 이빨, 내 한심한 검은 궁기 때문이 아니다. 횃불이 이미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반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169쪽)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구절들입니다.
 
오래전 글- 프란츠 파농을 읽다가
말리, 알제리, '식민 모국'
 
<아프리카 아이덴티티>라는 책은 현대 아프리카의 이야기이고 탈식민 논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추천.
 
[관련 목록] 아프리카에 대한 책들
 
기억에 남는 또 한 권은 <작가의 망명-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의 대화>입니다. 체코 저널리스트가 인도네시아의 반체제 지식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를 만나 대화한 내용인데, '프람'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는 프라무댜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좀 아쉽긴 했어요. 얼마 전 읽은 책에 또다시 프람이 언급됐던데 언젠가는 읽어야지 싶습니다.
 
비자이 프라샤드의 <갈색의 세계사-새로 쓴 제3세계 인민의 역사>는 말 그대로 제3세계의 현대사를 담은 책입니다. 저자는 인도 사람이고, 책은 약간 도식적인 느낌을 주긴 합니다만 매우 재미있습니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그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적어두긴 해야겠네요. 그렇다면 베네딕트 앤더슨의 <세 깃발 아래에서 -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도 추가해야 할 듯. 사카이 나오키의 <세계사의 해체 -서양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세계를 말하는 방법>도 좋았습니다. 일본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학자인데, 그의 책을 몇 권 읽어봤지만 글은 사실 좀 어려워요. 하지만 번득이는 뭔가가 있습니다. 역시나 좋아하는 일본 학자 니시카와 나가오의 <신식민지주의론 : 글로벌화시대의 식민지주의를 묻는다>도 떠오르네요. 아, 읽으면서 스크랩을 해뒀어야 하는 책들이 줄줄이... 

아,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사미르 아민의 <유럽중심주의>를 구하지 못해 아쉽다고 적었는데 그걸 보신 블로그 친구님이 책을 보내주셔서! 읽었지 뭡니까. ^^ 넘나 반갑고 감사한 인연...
 
책들을 훑자니 떠오르는 의문. 한국에서는 탈식민 논의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던 듯. 식민주의를 해체하지 못하게 막은 독재 체제, 상대적으로 짧았던 식민통치 기간, 일본의 한국 점령이라는 특성 때문에 유럽의 지배를 받은 지역에 비해 인종주의가 덜 스며들었던 점 등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요. 오히려 독립 이후의 한국은 미국바라기가 되면서 '백인 마인드' 혹은 '가해자 마인드'에 가까운 정서를 갖게 됐고,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이주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엮이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이 블로그의 인기 글;; 중의 하나를 링크해둡니다. 제목과 달리 진지한(?) 글입니다 ㅎㅎ
 
붕가붕가 bunga bunga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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