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언론 통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더 심해지면서 서방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번엔 영국 BBC방송을 차단했네요.
BBC방송은 영국 공영방송이고, 세계에서 공익성과 신뢰성으로 영향력이 큰 매체죠. 그런데 중국 정부가 지난 11일 중국 내에서 BBC월드뉴스 방송을 금지해버렸습니다. BBC 측이 웹사이트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문제삼은 것은 서부 신장위구르 자치지역의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에 관한 보도였다고 합니다.
위구르는 중국 서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이죠. 터키어 계통의 언어를 쓰고요. '소수민족'이라고 해도 숫자가 1200만명이 넘습니다. 대부분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살고 있는데, 동투르키스탄이라는 이름의 독립국가를 세우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계속 중국 당국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중국 중앙정부는 신장위구르에 한족을 대거 이주시킴으로써 위구르 민족을 희석시키는 작업을 해왔고요. 2009년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자 위구르족 시위를 당국이 유혈진압하기도 했습니다.
신장에서 '재교육 캠프'라는 이름으로 위구르족을 가둔 뒤 강제 노역을 시키고 학대한다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보고가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BBC에 따르면 캠프에 수용된 위구르족 등 무슬림 소수민족이 1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이른바 ‘반체제’ 위구르인들을 노동수용소에 가두기 위해서 첨단기술들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탐사언론인협회는 중국 정부가 노동수용소 관리에 알고리즘 매뉴얼을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국 정부의 통신문을 입수해 2019년 11월 폭로했습니다. 통신문에 따르면 중국 경찰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신장위구르 주민들을 분류한다고 합니다. 당시 보도된 매뉴얼에는 개인정보를 추적하는 방법, 탈주를 막고 수용소의 존재를 비밀로 유지하는 방법, 구금자들을 세뇌하고 ‘행동 개조’를 점수로 측정하는 방법 등까지 제시돼 있었습니다.
Exposed: China’s Operating Manuals for Mass Internment and Arrest by Algorithm
지난해에는 강제 수용소에 갇힌 위구르족 사이에 코로나19가 심각하게 퍼지고 있는데도 당국이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작년 10월이었던가요,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중심도시인 카슈가르의 통행을 갑자기 봉쇄했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됐다는 소문이 흘러나왔고요. 이후에도 확산세가 심상찮다는 얘기들이 나왔지만, 무증상자를 환자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고... 위구르족의 코로나19 감염과 관련해서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BBC는 이달 초 위구르 여성들을 인터뷰했고, 이 여성들은 '재교육 캠프'에서 성폭행 등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작년에도 BBC가 위구르 수용소 문제를 보도한 적 있는데, 중국 당국은 매번 잘못된 보도라고 부인하곤 했습니다.
중국이 방송을 막아버린 BBC월드뉴스는 영어 TV채널입니다. 중국 대부분 지역에선 예전에도 금지돼 있었고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묵는 대도시 큰 호텔이나 외교관들 거주지역 같은 곳에서만 방송됐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볼 일은 거의 없다고 BBC는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금지시킨 것은 외국 방송이 중국 내부의 민감한 문제를 보도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겠지요.
BBC는 중국의 조치에 “실망스럽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BBC가 문제가 아니라, 영국 정부 당국이 나서서 중국과 맞서는 양상입니다. 중국이 BBC의 방송을 금지시키기 전에 이미 영국 방송 규제당국인 오브컴(Ofcom)은 이달초 중국 국제 방송망인 CGTN(차이나글로벌텔레비전네트워크)의 영국 내 방송 허가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CGTN은 CCTV의 해외 방송을 떼어내 만든 네트워크입니다. 영국 측의 명분은 이 방송이 허가규정에 포함돼 있지 않은 채널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중국의 외국 언론 규제 움직임에 대한 보복조치 성격이 짙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중국이 BBC 방송을 중단시킨 거죠. 도미니크 라브 영국 외교장관은 “언론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조치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정부는 위구르 문제뿐 아니라 홍콩 사태를 놓고서도 중국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중국이 홍콩 시위대를 탄압했을 때 세계가 비판을 했습니다만, 특히 영국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해 7월 홍콩 국가보안법 발효를 앞두고 영국 정부는 홍콩 사람들에게 '원하면 영국 시민권을 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식민주의의 연장선이라고 볼 소지가 다분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중국은 예상대로 강력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월 영국은 새 비자 규정을 만들어서, 홍콩 시민 540만명에게 영국 시민이 될 길을 실제로 열어줬습니다.
그러던 차에 중국이 BBC 금지조치를 내리자 미국도 비판을 보탰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조치가 자유로운 언론을 탄압하는 중국 당국의 폭넓은 통제의 일환일 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작년에 미국 언론 특파원들을 추방한 것을 비롯해 외국 언론에 빗장을 닫아거는 조치를 취해왔죠. BBC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 접속은 이전부터 금지돼 있었고요.
미국과 중국은 알다시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집권기간 내내 무역전쟁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홍콩 사태를 거치며 정치 싸움으로도 확대됐고요. 한 걸음 나아가 지난해 미국 의회는 위구르 탄압을 문제삼아 중국을 제재하는 위구르인권정책법을 만들었으며 양국이 서로 상대 측 관리들을 제재하는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조 바이든 정부도 중국 문제에서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들의 인권 문제를 반드시 제기함으로써 미국이 윤리적으로도 세계의 모범이 되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죠.
[구정은의 ‘수상한 GPS’]'외교전문가' 바이든, 중국선 "큰 기대는 금물"
이런 긴장관계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통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11일에 두 정상이 통화를 했지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바뀌면 정치적 갈등은 좀 내려놓고 얼마 동안이라도 서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허니문 기간이 있어야 하는데, 두 정상의 통화 분위기는 매우 사나웠던 모양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무역문제는 물론이고 홍콩과 신장 인권문제, 대만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압박을 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시 주석은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맞받았고요. 미국 정부가 바뀌었어도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냉랭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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