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평등해야 건강하다

딸기21 2009. 4. 2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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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The Impact of Inequality 

리처드 윌킨슨 저  |  김홍수영 역 | 후마니타스



삶의 질은 중요하다. 건강해야 행복하고, 행복해야 건강하다. 잘 살아야(돈도 좀 있어야) 건강도 행복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해진 지금 우리는 왜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고 느끼는 걸까. 아니,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점점 많은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저자는 우리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얼핏 당연한 얘기인 듯도 하고, 얼토당토 않은 얘기인 듯도 하다. 당연한 얘기로 들리는 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적으로, 느낌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난할수록 보건 혜택도 못 받고 하루하루의 스트레스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아프리카의 영유아 사망률만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얼토당토않은 주장처럼 들리는 것은, 앞서 말한 ‘당연한 이유’에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면 건강하기 힘들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부자 나라로 불리는 미국 같은 나라(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만)에서조차 건강과 행복이 마구 증진되지 않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 같은 불평등과 관련 있다고 하면 너무 심리 지향적인 해석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돈이 없다고 꼭 일찍 죽으란 법도 없다. “가난하지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그 많은 이야기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통계조사들을 검토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사회적 지위 격차, 즉 ‘권력의 격차’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더 많은 질병에 시달린다. 말단 공무원이 고위공무원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4배 이상 높다는 영국의 연구결과도 있다. 두 번째는 소득 불평등이다. 비록 소득의 총량에서는 6% 정도의 차이 밖에 없을지라도,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질 때에는 40~50%의 격차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가 실려 있다. 


세 번째는 빈약한 사회적 관계다. 사회적 관계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로도 불린다. 경쟁적, 공격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는 소외감과 모욕감이 커지고 사회적 자본 즉 관계가 깨져나간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돼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 혹은 결과가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연결된 사회적 불평등이 총체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권위적이고 상하 간 권력 불평등이 크고 경쟁적인 분위기의 사회에서 권력-부(富)의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낮은 지위의 사람들’은 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마음이 병을 만든다”는 통념을 넘어, 저자는 진화심리학적 연구들을 분석해 인간이 타인을 의식하고 서열을 의식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남성들의 경우 폭력성이 증가하고 여성들은 우울증이 늘어난다는 현상적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지위/서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책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영장류 사례 연구와 사회심리학 스터디들을 검토한다. 


불평등이 스트레스를 가져온다는 점을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한 저자는,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생리의학적 연구들을 동원한다. 이를 테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게는 ‘투쟁-도주 메커니즘’이라는 생리학적 기제가 있다. 위기를 느끼면, 즉 스트레스를 받은 인간은 생체 자원의 배치와 생리적 우선순위를 바꾼다. 몸의 생리작용은 에너지를 근육활동에 집중시켜, 여차하면 싸우거나-혹은 도망치기 유리하게끔 대비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자원이 싸움-도주에 집중되는 동안 생체 조직의 유지·치유와 면역, 성장, 소화와 재생산 능력은 저하된다. 


“그런데 몸싸움이나 도주가 필요 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정신적인 각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지방조직으로부터 혈액으로 방출된 지방산이 사용되지 않아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인다. 따라서 지속적인 무기력과 근심은 심장질환의 발병률을 높인다.


“문제는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다. 우리의 육체가 경계 상태나 생리적 각성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 자원 분배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리면,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는 급속한 노화와 비슷해서 다양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전체적으로 화시키며, 인간을 외부환경에 취약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에너지의 축적, 소화, 성장과 관련된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교감 신경계만 활성화된다. 이 또한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고 피가 근육으로 흐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스트레스에 대한 또 다른 생리적 반응은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생물학적 우선순위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며, 인슐린만이 아니라 성장 호르몬과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 같은 재생산 호르몬의 분비도 억제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주로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통해, 그리고 교감 신경계의 지나친 활성화를 통해 이뤄진다.” 


“불안이나 생리적 각성 상태가 몇 주, 몇 달, 몇 해에 걸쳐 너무 자주 발생했을 때 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단순히 생리적 우선순위가 바뀌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각성 상태가 일정 기간에 걸쳐 계속되면 정상치로 회복되는 피드백 메커니즘이 파괴되어 버린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겨나는 코르티솔 수치를 제어하는 피드백 센서가 무뎌진다는 뜻이다. 피드백 센서가 둔해지면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코르티솔의 반응도 둔화된다.” 


코르티솔수치가 높아지면 인슐린의 신호가 억제된다. 


“보통 만성 스트레스의 부작용이 누적되었을 때 신체가 지불해야하는 생리적 비용을 ‘알로스타 부하’ allostatic load라고 부른다. 이는 코르티솔의 기본수치와 혈압이 높으며, 인슐린 저항을 유발시키고, 혈액이 쉽게 응고되며, 복부 비만과 면역 기능이 감퇴하는 현상을 포함하고 있다. 알로스타 부하가 클수록 심혈관 질환, 암, 감염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고, 나이가 들었을 때 정신적 기능이 빨리 저하된다.” 


길게 인용했는데, 사회적 스트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저자는 ‘평등해서 건강하고 불평등해서 건강하지 못한’ 사례들을 펼쳐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이탈리아인 집단 거주지였던 로세토 마을이다. 상대적으로 전통 문화와 주민들 간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던 이 지역 이탈리아인들은 주변 다른 주민들이나 다른 지역의 이탈리아인들에 비해 건강했다. 그러나 미국식 문화에 점차 젖어들고(이탈리아 문화가 미국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 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작용했다는 뜻이다) 유대관계가 깨지고 소수민족이라는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건강도도 낮아졌다. 


더 분명한 사례는 동유럽일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은 1980년대 동유럽 연구를 통해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동유럽 사회가 비슷한 경제수준의 다른 사회보다 건강 면에서도 훌륭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회주의 붕괴 뒤 ‘건강의 구조’는 모두 무너져 내렸다. 카스트제도 등으로 인한 차별이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는 인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인도의 케랄라 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카스트와의 싸움이 많이 진전됐고, 토지개혁과 교육확대, 빈민 보조, 여성권익 향상 등에서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었다. 케랄라 주의 평균수명은 1인당 GNP가 1000달러 안팎이던 1990년대 후반에도 미국보다 3, 4년 정도 짧은 수준으로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의 사례도 등장한다. 


“사실 정부와 통치자들은 항상 소득 분배와 사회 통합이 서로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건전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 사회를 통합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부가 전략적으로 평등주의적 정책을 도입했던 사례들도 많다.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면서 빠르게 성장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1960-80년대에 소득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들8개국(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은 세계은행이 ‘동반성장’이라 부르기도 했던 정책 하에서 급격히 성장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이 8개국 정부들은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대중의 승인과 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북한이라는 경쟁자가 있었고, 대만과 홍콩은 중국 본토와 관련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는 것이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의 위세가 꺾이면서 급속하게 평등주의적으로 변모했다.” 


책은 다양한 사례들을 촘촘히 분석하고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는 연구 성과들을 종합한다. “불평등의 사회학”에 대한 과학적 해설이라 보면 되겠다. 현실적인 함의는 분명하다. 우리가 부국에 살든 빈국에 살든 ‘평등한가 그렇지 못한가’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50개 주를 대상으로 각 주의 소득 분배 정도와 개인의 소득 수준에 따른 사망률을 조사했더니 불평등한 주에 빈민층이 많아서 건강 수준이 미국의 전체 평균보다 낮아지는 현상은 불평등과 건강의 관계를 3분의 1 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소득 불평등과 건강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나머지 3분의 2는 건강에 미치는 불평등의 맥락효과였다. 다시 말해 어떤 수준의 소득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더 불평등한 사회에서 생활한다면 평등한 사회에 사는, 자신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가진 사람보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역으로, 종업원 지주제를 확대해 노동자들의 결정권을 높이고 민주적인 기업구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직장 내의 스트레스는 확 줄어든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한 작은 노력(그러나 굳은 정치적 의지를 필요로 하는) 만으로도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과 심리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빈곤의 물질적 측면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심리사회적 요인은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추가적인 근거이지 결코 반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여 사회적 위계질서와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경제 성장 다음으로 한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의 정도는 사회 전체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됐든 뭐가 됐든, 불평등을 양산하고 사회를 균열시키고 인심 나빠지게 만드는 정책들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더 설명할 것도 없는 요즘의 우리 사회 모습이다.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 넘기고 난 뒤끝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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