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진화하는 세계화- 동네마다 다른 '세계화', 구체적으로 보는 방법

딸기21 2007. 4. 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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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Globalization (2002) 진화하는 세계화 

타모츠 아오키 | 앤 번스타인 | 아르투로 폰테인 탈라베라 | 신-후앙 마이클 시아오|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 | 한스프리트 켈너 | E. 푸앗 케이만 | 야노시 마차시 코바치 | 에르군 외츠부둔 | 한스-게오르그 쇠프너 | 툴라시 스리니바스 | 윤시앙 얀 | 조슈아 예이츠 (지은이) | 새뮤얼 헌팅턴 | 피터 L. 버거 (엮은이) | 김한영 (옮긴이) | 아이필드 | 2005-12-10



편저자 이름은 유명한데 제목은 어째 번역해 내는 출판사에서 꿔다붙인 것 같고 출판사도 통 모르는 곳이고 해서, 알라딘에서 이 책 보관함에 넣어놓고 몇 번을 클릭했다 놓았다 반복했다. 인터넷에서 잘 모른채 책 샀다가는 실패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 애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함정을 피해가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뭐 노하우랄 것도 없이 저자 이름, 출판사 이름, 서평 같은 것들 가지고 책을 고르거나, 아니면 오프라인 서점에서 먼저 한번 구경하고 살지 말지를 정한다든가 하는 방법 말이다.


서점 나가서 일단 뒤져볼까 하다가 어찌어찌 여의치가 않아서 그냥 속는 셈 치고 책을 샀는데, 책상 위에 놓여있던 이 책을 본 후배가 한 마디 던진다. “그 책 나도 샀는데 별볼일 없어요.” 어, 그럼 실패한 것인가.


전혀 아니었다. 뭐냐고? 전혀 실패가 아니었다. 이 책 별볼일 없다고 했던 후배는, 아마도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이름은 순전히 ‘이름값’으로 쓰기 위해 붙인 것 같다. 이 책은 각국의 학자들이 보스턴대학 교수 피터 버거의 세계화 잣대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현상들을 포착해 놓은 것이다. 저자는 제각각이지만 총체적으로 버거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버거가 서문에서 설명한대로, 책은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을 뼈대 삼아 세계화라는 도전과 그에 반응하는 각 지역/지역사회/지역문화의 응전을 다루고 있다. 지역은 세계화에 포괄되지만 무작정 휩쓸리지 않는다. 지역에 맞춰 세계화는 변용되고 ‘진화한다’(책의 원제는 그러나 ‘진화하는 세계화’가 아니라 Many Globalizations 즉 ‘다양한 세계화’다).


그 반응의 양상은 그야말로 다양하지만 그 속엔 세계화라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버거는 세계화가 각 지역들에서 이끌어낸 사회문화적 변화의 양상들 중 보편적인 네 가지를 추출해낸다. 첫째는 ‘다보스 문화’로 상징되는 국제 여피족 혹은 경제 엘리트들의 문화, 둘째는 맥도널드 헐리웃 영화 따위로 대변되는 미국식 ‘맥월드 문화’, 셋째는 지식인들 중심의 ‘국제적인 교수 클럽’ 넷째는 오순절교회로 대표되는 미국식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확산을 비롯한 신흥종교운동. 


이 네가지가 ‘보편적 요소’라고는 했지만, 경향성을 지칭한 것일 뿐이지 세계화의 흐름에 빠져든 나라들에서 이 네가지 현상이 모두 똑같이 나타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 같으면 워낙에 공화국 건국에서부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오순절교회(그냥 우리나라 ‘교회’라고 생각하면 된다)가 종교현상의 지배적인 양상이 된지 60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개신교 확산이 가톨릭 대륙인 남미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하면 그것은 또한 세계화의 반영인 것이다.


책은 중국, 대만, 일본, 인도, 독일,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터키, 미국 학자들이 한 편씩을 맡아 자기네 나라에서 저 네 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중심으로 특수성들을 펼쳐보이는 형식으로 돼 있다.


그리 게으르지 않은 후배가 이 책을 ‘별볼일 없다’고 한 것은, 아마도 이 책의 그런 특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칠레에서 오순절교회가 왜 확산되는지, 에이즈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남아공에서 개 나발부는 금연운동이 일어난 가닭이 무엇인지, 일본식 패스트푸드점이 맥도널드식 패스트푸드에 맞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인도의 사이바바 신앙촌은 대체 어떤 곳인지 등등 구체적인 사례들은 관심 있는 사람에겐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꼭 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겐 너무 구체적이라 오히려 재미없고 알아도 그만 몰라도 아는척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아주 재미있었다. 세계화가 미국화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면의 진실이다. 무엇에든 절반의 자명한 진실과 절반의 가려진 사실이 있고, 어떤 현상에든 도전과 응전이 있다. 포괄적으로 주르륵 꿰는, ‘문명의 충돌’ 식으로 임팩트 팍팍 주면서 ‘세계화란 이거야!’ 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 지지부진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다양하다’는 것, 그 자체가 세계화를 지탱하는 가장 일관된 특징이자 역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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