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옥의 티는 있지만... '예루살렘'

딸기21 2004. 12. 17. 10:15
728x90
예루살렘 Jerusalem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이동진 옮김. 그린비



우리는 3대 종교가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라고 알고 있고 또 실제로도 그렇지만, '3대 유일신교'라고 하면 통상 불교 대신 유대교를 집어넣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이 세 종교는 모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서 시작됐다는 공통점과 함께, 구약성경이라는 공통의 텍스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유독 서로간에 분쟁과 갈등을 많이 일으켰던 종교들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서로 얽혀 있는 종교들이기도 하다. 얽혀있는 정도가 아니라 물고뜯고 싸우는 점에 있어서는 이 세 종교의 관계만큼 복잡한 것이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이 책은 '예루살렘'을 키워드로 해서 세 종교의 역사를 훑어보고, 세 종교의 신도들이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대해 갖고 있는 특수한 관념을 소개한다.

저자는 미국인인데, 이름과 약력으로 볼 때 그리스 계인 듯하다. 종교학자이고, 동방기독교(정교) 계열이 아닌가 싶다. 다만 약력을 통해 추측할 때 그렇다는 것일 뿐, 책에는 저자의 종교를 직접적으로 암시해주는 구절은 없다. 적어도 각 종교에 대한 설명에선 '객관성' 면에서 합격점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저자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순서(이는 저 종교들이 탄생한 순서이기도 하고, 저 종교를 믿는 세력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순서이기도 하다)에 따라 예루살렘과 각 종교의 독특한 역사적 관계를 설명한다. 물론 예루살렘은 '키워드'일 뿐,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카테고리를 훨씬 넘어선다. 

1부 '유태인 역사에서 본 예루살렘의 의미'에서는 유대인-유대교의 역사와 함께 팔레스타인 지방의 고대사를 두루 훑고 있다. '골리앗과 다윗' '솔로몬왕의 재판' 따위의 일화로만 알려져 있는 다윗왕과 솔로몬왕. '정치가 다윗' '권력자 솔로몬'의 면모를 비롯해, 면모를 비롯해 고대국가로서 이스라엘의 독특함(신정체제)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더불어 저자는 유태인들이 갖고 있는, 역시나 독특한 숙명적 역사관을 설명하는데에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다윗왕가의 부활과 예루살렘 귀환'을 핵심으로 하는 유태인들의 예정설에 가까운 역사관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목숨 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고리이기도 하다.

2부는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바라본 예루살렘을 다룬다.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동방기독교의 역사, 십자군 운동을 비롯한 '서방'의 움직임도 등을 다루면서 기독교 내부의 신학적 논쟁도 소개하고 있다. 3부는 '이슬람 역사에서 본 예루살렘의 거룩함'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예루살렘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역시 이슬람권 전반의 역사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책의 장점을 말하자면, 3대 유일신교를 교차 서술했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겠다. 이들 세 종교의 접점이 예루살렘 뿐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중동분쟁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저술은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다. 더우기 이슬람교가 유대교와 기독교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그닥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는, 일반 독자들에게 중동의 상황을 알려주는 제법 훌륭한 개론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번째로, 이 책은 극히 드물게도-- 국내 번역자와 출판사의 지극정성으로 부가가치가 엄청 높아진 책이라는 점이다! 문장이 매끈한 것은 물론이고, 페이지마다 아랫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충실한 각주는 모두 역자가 붙인 것. 거의 감동적...이라 할 정도의 성실성이 아닐 수 없다.

더우기 책이 갖고 있는 '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뒷부분에는 국내 학자가 쓴 보론을 첨가해놨다. 책은 1967년 3차 중동전쟁까지만 다루고 있는데, 그 이후 상황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뿐만 아니라(이건 원저자의 노력이겠지만) 중동지역 약사와 각 종교그룹의 왕계표, 참고연표를 실어놨기 때문에 중동사 개론서로 읽어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문제가 있다면, 예루살렘의 최근사(20세기 초~1967년)를 다룬 4부. 

저자는 전반적으로 종교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정치경제적 배경에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현대 이스라엘의 탄생을 '아랍권의 과실'로 보는 견해를 갖고 있다. 오스만의 지배에서 갓 해방된 아랍인들이 제국주의와 결탁한 유태인들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또한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책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이 부분에서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도 나한테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오스만 치하에서 망가진 예루살렘을 영국 점령당국이 훌륭하게 정비했다고 했는데, 일제가 개판 5분 전이던 조선에 철도를 놓았다는 논리와 똑같다. 또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 유태인 민병대가 아랍인들을 학살했던 것은 쏙 빼놓은채 '아랍인들이 폭력적으로 유태인을 죽였다'고만 서술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취사선택'함으로써 사실상 왜곡해버리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많은 책인 것은 틀림없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