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스크랩]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딸기21 2002. 12. 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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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Reminiscenes of Lev Nikolaevich Tolstoy).


톨스토이, 그리고 막심 고리키라는 이름만 보고 선뜻 책을 집어들었다. 톨스토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릴 적 읽었던 바보 이반 류의 동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혹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따위 몇개의 단편들 외에는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톨스토이라는 이름이 내 맘을 움직인 것은 마하트마 간디 때문이다. 얼마전 간디 전기에서 톨스토이와 간디의 대화(편지라는 매개를 통한 것이긴 했지만)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그렇다면 톨스토이와 고리키의 대화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으려나.


막심 고리키. 그 이름 하면 또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고 싶어서 서점을 뒤졌었다. 나는 고리키가 그냥 위대한 작가인 줄로만 알았지, 우리나라에서 그의 책이 정식 출간되어 판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뭘 모르는 10대 소녀는 동네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어머니>라는 소설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펄 벅의 <어머니> 밖에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때,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인상적인 작품이기는 했지만 사실 내 기대에는 못 미쳤다. 그 소설의 제목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던 탓일까, '읽고픈 욕망을 오래 묵혔다 읽은' 만큼의 감동은 없었고 다소 교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고리키의 또다른 작품(제목은 생각 안 남)을 읽었는데 비슷한 감상을 가졌었다(여담이지만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역시 시대의 차이 때문인지 그저 그랬었다).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은 고리키가 톨스토이와의 대화, 톨스토이를 보면서 느낀 것들, 톨스토이가 숨진 뒤의 회고 등을 적은 것이다. 짤막한 글들과 뒷부분 추모사 비슷한 회고담으로 구성돼 있다. 톨스토이라는 인물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현자의 공격에 상처 입을 때마다 약간씩 뒤틀리는 심사를 숨김없이 드러내놨다. 글 속에 나타난 톨스토이는 아주 지적이고 위대한 문인인 동시에,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다중적인 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리키는 존경해 마지 않았던 레프 니꼴라예비치(톨스토이의 이름)를 가리켜 '늙은 마술사'라는 표현을 썼다. 톨스토이의 말에 고리키의 글이니, 책은 당연히 멋지고 아름답고 재미있으면서 때로는 조금 고약하다. 하지만 짧은 글에 너무 많은 뜻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놓고 나같은 무식자의 <감상>을 적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맘에 들었던 부분들을 옮겨놓는다.



★안데르센
"자네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좋아하나?"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마르코 보보치카가 번역한 책을 읽었을 때 사실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어. 그런데 십년이 지난 후 그 책을 다시 읽으니까 안데르센이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걸 아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 나는 그 사람의 인생이 진짜로 어땠는지 몰라. 내 생각에 그는 방탕하게 생활했고 여행을 좋아했던 것 같아. 하지만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혼자였어.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거지. 비록 그것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말이야. 그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러나 실제로 아이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뭘 원해야 하는지도 모르지."

★순례자
그를 보면 평생 동안 손에 지팡이를 쥐고 수천마일을 걸어 수도원을 찾아 한 성인의 유골을 보고 또 다른 것을 찾아다니는 순례자가 떠오른다. 철저하게 집도 사람도 물건도 소유하지 않는 순례자.
그의 세계는 자신을 위한 것도 하느님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습관적으로 신에게 기도하지만 그 내밀한 영혼은 신을 싫어한다. 왜 신은 그 같은 사람을 이 세상 끝으로 내모는 것일까? 무슨 목적으로?
레프 니꼴라예비치 같은 사람은 길가의 쭉정이, 돌부리, 나무뿌리와 같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그것에 걸려 넘어진다. 심지어는 그 것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같은 사람이 없어도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점, 혹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놀라는 일은 즐겁다.

★신과 욕망
그가 읽어보라고 건네준 일기에서 기이한 경구를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신은 나의 욕망이다"
오늘 그에게 일기를 돌려주면서 나는 그 뜻을 물어보았다. 그는
"완성되지 않은 생각이지"라고 말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신의 존재는 그를 알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다...아니, 그게 아니지."
그는 웃으면서 일기장을 돌돌 말아 윗도리의 큰 주머니에 넣었다. 하느님과 그의 관계는 대단히 이상하다. 때때로 '하나의 굴 속에 있는 두 마리의 곰'을 생각나게 한다.

★신에 대하여
"왜 하느님을 믿지 않나?"
"나는 신앙이 없습니다, 레프 니꼴라예비치."
"그건 사실이 아니야. 천성적으로 자네는 믿는 사람이고 하느님 없이는 잘 버텨낼 수가 없네. 자네도 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 자네의 불신은 고집에서 오는 걸세. 자네는 상처를 입었거든. 사랑과 마찬가지로 믿음에도 용기와 대담성이 필요해. 자신에게 '나는 믿는다'고 말해야 해. 그러면 모든 것이 잘될 걸세.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나타나 자네에게 설명하고 자네를 끌어당기겠지. 자네는 많이 사랑하고 있지만 신념이 사랑보다 더 클 뿐이네.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 틀림없이 그 여인이 세상에서 최고의 여인이겠지.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최고의 여인과 사랑하는 거라네. 그게 믿음이야. 믿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못해. 오늘 사랑에 빠졌다가 내년에 또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지겠지. 그런 사람의 영혼은 불모의 삶을 사는 떠돌이야. 그건 좋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믿는 자로 태어났으니 자신을 부정하려고 해보았자 소용이 없네. 글세, 자네는 아마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겠지. 그런데 무엇이 아름다움인가? 가장 높고 가장 완전한 하느님이지."
그는 이 주제에 대해 나에게 거의 말한 적이 없어서 그 진지함과 갑작스러움으로 나는 압도되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리를 끌어올리고 소파에 앉아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죠.
"자네는 침묵으로 여길 빠져나가진 않을 걸세. 그렇지 않을 거야."
그리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나는 그를 무슨 이유인지 매우 조심해서 약간 수줍어하며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 같아'.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내 영혼 속에는 개가 울어대고 불행한 예감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문이 막 도착했고 그러한 예감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영혼들이 슬픔에 잠겨있어야 할 이 때, 영혼이 텅 빈 혐오스런 사람들이 그를 향해 경배한다면 그 얼마나 큰 해악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집에서 '전설을 창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으름뱅이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은 성인을 만들어냅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오랫동안 영웅을 갈망해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욕망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존재, 즉 경건한 인간과 성인의 삶을 창조합니다. 확실히 니꼴라예비치는 위대하고 경건합니다. 그는 미치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인류 전체를 위한 사람입니다.
...나는 니꼴라예비치를 성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죄악의 세계, 우리 각각의 마음에 더 가까운 죄인으로 놔두어야 합니다.
...그가 관에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는 시냇물 바닥에 매끄러운 돌처럼 누워있고, 회색 수염 속에는 고즈넉하고 신비스러운 미소가 조용히 숨겨져 있겠지요. 그리고 힘든 일을 다 마친 손은 평화롭게 고이 겹쳐져 있겠지요. 그의 예리한 눈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눈이지요. 그 손가락이 움직임은 마치 허공에서 무언가 영원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의 말과 농담, 그가 가장 좋아하던 농부의 말투, 교묘히 대답을 회피할 때의 목소리. 그는 얼마나 대단한 생명력을 가졌고, 얼마나 비인간적일 만큼 영리했던가요.
...구름의 그림자가 돌 사이를 물 흐르듯 지나가자 돌과 함께 그 노인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습니다. 파도에 마모되어 둥글어진 큰 돌은 해초로 덮여 있었습니다. 니꼴라예비치 역시 살아있는 오래된 돌처럼 보였습니다. 돌, 풀, 바닷물, 조약돌에서부터 태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우주만물의 시작과 끝을 아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바다는 그의 영혼의 일부이고 그 주변의 모든 것은 그로부터 나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노인의 꿈꾸는듯한 부동성에서 나는 운명적이고 마술적인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기운은 마치 그의 발 아래에서 서치라이트처럼 바다의 푸른 빈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니꼴라예비치의 집중력이 파도를 밀려왔다 밀려가게 하고, 구름 그림자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진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가능해. 그가 일어나서 손으로 주술을 걸면 바다는 투명한 돌이 되고 돌은 파도치며 소리칠거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생명체가 되어 여러 목소리로 니꼴라예비치에게 말을 걸거야."
당시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하기가 더욱 힘들군요. 내 영혼의 기쁨과 두려움이 하나의 행복한 생각으로 결합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여기 살고 있는 한 나는 지구의 고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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