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대장의 쾌거, 그러나 남는 의문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ｍ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해발 8091ｍ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 27일 오후 9시30분(한국 시각 28일 새벽 12시45분) 캠프4에 도착했다. 오 대장은 하산을 시작한 지 6시간 만에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캠프4(7200m 지점)에 내려왔다. 하지만 스페인 원정대의 구조 요청 때문에 베이스캠프로의 하강은 일단 멈추고 캠프4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 대장 소속사인 블랙야크는 후아니토 오이아르사발 대장이 이끄는 안나푸르나 원정대원 1명이 7700m 부근에 탈진해 쓰러져 도움을 요청해왔으며, 이 때문에 오 대장이 28일 곧바로 베이스캠프로 내려오려던 계획을 미루고 캠프4에서 구조작업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5600m 지점 캠프2에 머물던 오 대장 팀의 셰르파 3명도 구조에 동참하기 위해 떠났다. 

공교롭게도 오 대장의 발길을 멈추게 한 원정팀은 오 대장의 최대 경쟁자로 꼽혀온 여성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36)과 같은 국적인 스페인 팀이다. 오이아르사발 팀을 돕기 위한 오 대장의 노력은 목숨을 건 등반에서는 ‘적(敵)도 라이벌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정 소식에 대해선 해외 언론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외신들은 ‘14좌 완등’이라는 타이틀을 붙일지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반을 가장 상세하게 보도한 미디어는 영국 BBC방송이다. 이 방송은 지난해 칸첸중가 등정 ‘진위 논란’과 라이벌인 파사반의 문제제기, ‘14좌 완등’을 인정받는 절차 등을 그래픽과 함께 자세히 전했다.

BBC는 칸첸중가 건이 아직 ‘미해결 상태’라며 오 대장의 완등 타이틀에 대해선 결론을 유보했다. AFP통신 등도 오 대장이 “14좌 완등을 주장했다(claim)”고 보도하면서 공식 확인을 뒤로 미뤘다. 

특히 1960년대부터 40여년 동안 히말라야 등정과 관련된 기록들을 정리, 사실상 ‘공인 기록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산악기록가 엘리자베스 홀리(86) 여사가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반에 대해 유보 판정을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등정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국제적인 공인기관은 없으며, 홀리의 판단이 사실상 최종 판결에 해당되는 권위를 갖고 있다. 홀리는 지난주 파사반의 문제제기를 인정,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반에 대한 기록을 ‘공인(recognized)’에서 ‘논란이 있음(disputed)’으로 바꿨다.

현재 13좌 등정을 마치고 14좌 중 가장 낮은 시샤팡마(8027m) 등정길에 올라 있는 파사반은 27일 “칸첸중가에서 오 대장이 찍은 ‘정상 사진’에 대한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며 재차 문제를 제기했다. 파사반은 지난주에도 영국 더타임스 등과 인터뷰하면서 “오 대장과 함께 칸첸중가를 올랐던 셰르파 3명 중 1명이 ‘정상에 오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내게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반과 관련된 의문은 ▲오 대장이 ‘정상 사진’으로 공개한 사진 속 풍경이 같은 계절 칸첸중가의 이전 사진과 다르다는 점 ▲셰르파들의 증언이 엇갈린다고 파사반이 주장하고 있는 점 ▲오 대장 뒤에 칸첸중가에 오른 노르웨이 원정대가 오 대장이 꽂은 태극기를 칸첸중가 정상(8586m) 200m 아래 지점에서 발견했다는 점 ▲오 대장의 사진에 나온 로프가 8530m 지점에 묶여 있었다는 후속 원정팀 증언이 나온 점 ▲오 대장의 원정이 예상 밖으로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는 점 등 크게 5가지다.

따라서 오 대장이 ‘14좌 완등’ 기록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몇가지 절차를 더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 대장은 우선 카트만두에 내려와서 홀리와 만나 의문에 답을 해야 한다. 홀리는 오 대장과 칸첸중가를 올랐던 셰르파 3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할 계획이다. 

앞서 셰르파들의 협회인 네팔산악협회는 오 대장의 칸첸중가 정상 등반을 공식 인정했다. 블랙야크 측은 오 대장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이틀 정도 쉰 뒤 홀리와 면담하고, 등정 보고회를 연 후 다음달 중순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