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란 여성의원의 투쟁과 희망

딸기21 2004. 2. 24. 12:43
728x90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합니다. 보수세력은 무너져야만 합니다".

올해 35세의 파티마 하키캇주는 이란 마즐리스(의회)의 최연소 여성의원. 2000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개혁파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개혁바람이 불었을 당시 하키캇주 의원은 개혁과 여성인권의 상징으로 국민적인 스타가 됐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보수파의 대대적인 공세 속에 그는 총선 출마 자격까지 박탈당하며 정치공세의 타겟이 됐다.

대학교수 출신인 하키캇주 의원은 지난달 보수파의 본산인 혁명수호위원회의 총선 자격심사에서 입후보 자격이 박탈된 2500여명 중에 포함됐다.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이끄는 개혁파 정부와 의회가 혁명수호위 조치에 반발하며 내각 총사퇴까지 경고하면서 맞붙었지만 싸움은 개혁파들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다.
19일 치러진 총선에는 개혁파들의 대거 불참으로 보수파의 압승이 예상된다. 반(反)호메이니 투쟁을 벌여온 무장단체 '인민무자헤딘' 등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총선은 하타미 정권의 권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면서 개혁정권을 좌초 위기로 내몰고 있다. 입헌민주주의를 향한 이란 개혁의 길은 멀기만 하다.

여성과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이란판 벨벳혁명으로 의회에 진출했을 당시만 해도 하키캇주 의원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290명 마즐리스 의원 중 11명이 여성이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극히 제한된 이란에서는 가히 혁명에 가까운 놀라운 성공이기도 했다.
이슬람혁명 이후 25년. 신정(神政)의 폭압에 지친 국민들은 선거혁명을 원했고, 하타미 대통령 집권 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군대와 사법부를 장악한 보수파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키캇주 의원은 당선 이듬해인 2001년 8월 혁명정신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혁명수호위 조치에 반발, 총선 연기를 요구하는 연좌시위를 벌이던 그는 '호메이니의 뜻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고발됐으며 징역형을 앞두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이슬람참여전선(IIPF)에 소속된 개혁파 의원 상당수가 하키캇주처럼 보수적인 사법부의 공격을 받았다.

이란 유권자 3500만명 중 4분의1에 가까운 800만명이 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출생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을 비롯한 개혁 지지세력들은 개인의 자유와 교육문제, 실업난, 경제개혁과 정부의 투명성 제고, 법치 확립과 같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보수파들은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혁명정신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미 고립노선을 고수하려 한다. 이란의 보-혁 싸움은 이슬람세계에서 선거를 통한 정치혁명이 가능할지, 독자적인 민주주의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냉전 시절 미-소 어느 쪽도 아닌 이슬람식의 '제3의 길'을 선택했던 호메이니의 후예들은 달라진 시대에 맞게 국가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떠안고 있다.

"대학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이 내게 묻습니다. 어째서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느냐고요.  사람들이 많이 실망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엄마인 하키캇주 의원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선거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유를 향한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차도르를 둘러쓴 하키캇주 의원은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인터뷰에서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