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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기업 '추악한 두 얼굴' 드러낸 원주민들의 소송

딸기21 2009. 6. 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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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에너지기업 로열더치셸이 나이지리아 유전 개발 과정에서 환경파괴와 인권침해를 일으킨 책임을 인정하고 현지 주민들에게 배상하기로 했습니다.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이 제3세계 자원을 꺼내가면서 현지 독재정권과 결탁,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셸 사건은 서방 에너지기업의 추악한 두 얼굴과, 이에 맞선 원주민들의 목숨 건 투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네덜란드 에너지기업인 셸은 8일 미국에서 제기된 나이지리아 환경운동가 처형 개입 관련 소송에서 일부 책임을 인정하고 1550만 달러(약 200억원)를 내기로 합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BBC방송 등이 보도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오고니족 원주민 운동가들이 5월27일 미국 뉴욕 연방법원 앞에서 셸의 원주민 탄압에 대해 배상판결을 내리라며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AP

발단은 1995년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 유전지대 환경운동가 켄 사로-위와(아래 사진) 등 6명이 처형된 사건이었습니다. 셸은 70년대부터 20여년간 니제르델타의 오고니족 원주민 거주지역에서 원유 캐내면서 환경을 파괴했고, 93년에는 파이프라인을 만든다며 40일간 원유를 누출시켰습니다. 사로-위와는 셸에 항의하며 오고니 지역 내 채굴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이 사실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셸에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얼마 안 있어 사니 아바차 장군이 이끄는 나이지리아 군부독재정권은 오고니족 탄압에 나섰고, 사로-위와는 5명의 동료들과 함께 군인들에 체포돼 처형됐습니다.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도망쳤다가 99년 아바차 정권이 무너진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로-위와 등 처형된 이들의 유족 10명은 미국 국내법인 ‘외국인 불법행위 배상청구법’에 따라 미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셸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뉴욕 인권변호사들이 변론을 맡았습니다. 

셸은 개입 혐의를 부인했으나 2001년 그린피스가 “셸이 군정에 돈을 댔다”는 증언을 폭로해 망신을 당했지요. 이어 나이지리아군이 사로-위와 등을 체포할 때 셸의 헬기를 타고 밀림에 들어간 사실이 드러났고, 셸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증인들을 매수하려 했던 것까지 폭로됐습니다. 2003년 셸 나이지리아 법인은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행동이 현지 분쟁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일부 책임을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을 고용해 만든 조사보고서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번 합의 뒤에도 셸은 “소송을 끝내기 위한 것이지 모든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원고들은 셸이 사실상 항복한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사로-위와의 아들은 “아버지는 ‘언젠가는 셸이 법정에 설 날이 올 것’이라 말씀하셨었다”며 합의를 환영했습니다. 셸의 배상액 절반은 지역개발기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소송비용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셸은 37년 나이지리아에 진출해 58년 니제르델타에서 첫 대형 유전 채굴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이 나라 석유의 40%를 셸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셸 전체 산유량의 10%가 니제르델타산입니다. 니제르델타해방운동(멘드·MEND) 등 원주민단체들은 서방 기업들로부터 개발이익을 돌려받아야한다며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군은 9일에도 반군을 소탕한다며 공격작전을 벌였습니다.

자원을 빼앗기면서도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민들의 열악한 현실이 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인권단체들은 주장합니다. 셸은 2003년 나이지리아 정부 산하 니제르델타개발위원회에 5450만 달러를, 지역개발 프로그램에 3000만 달러를 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가져가는 이익에 비하면 미흡하다”고 말합니다.

 

셸은 이번 합의 때문에 멘드 등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셸 측은 “나이지리아 사업에서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강조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셸은 2006년에는 브라질에서 아마존 오염물질 배출 혐의로 그린피스에 고발당한 바 있습니다. 

에너지기업들의 횡포에 대한 원주민들의 저항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아체지역 유전개발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미국 기업 엑손모빌은 정부군의 원주민 탄압을 도왔다는 이유로 2006년 아체 주민들에 의해 제소됐습니다. 남미 에콰도르 북부 누에바로하 지역 인디오 원주민들은 미국 셰브론텍사코의 원유 찌꺼기 배출로 밀림이 오염돼 암환자가 급증했다며 93년부터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미국과 에콰도르 양측에서 벌어진 소송으로 회사 측은 270억 달러를 배상해야 할 판이라고 합니다.

 

콜롬비아의 우와족 인디오들은 미국 옥시덴탈 석유의 밀림 파괴에 맞서 수차례 ‘집단 자살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석유회사 유노칼은 90년대 버마에서 송유관을 만들면서 인신매매된 노예들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 거액 배상에 합의한 바 있고요. 수단 오가덴에서는 최근 들어 중국계 에너지기업들의 자원 수탈에 맞서 주민들이 외국인 기술자들을 납치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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