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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눈물의 <흑인 정치사>

딸기21 2008. 11. 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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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데드릭 배틀은 55세의 아프리카계 유권자다. 1960년대 민권운동가들에 대한 기억은 가슴 속에 생생히 남아있지만 아직까지 그는 한번도 투표를 해본 적은 없다.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사는 섄들 윌콕스는 올해 29세의 여성 유권자이다. 윌콕스 역시 흑인이고, 아직 투표를 해본 경험이 없다. 두 사람은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반드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일찌감치 유권자 등록을 마쳤다.


이유는 물론 민주당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다. 오바마에게 투표하기 위해서 생애 처음으로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처럼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혹은 정치적 무력함만을 느껴왔던 흑인 유권자들이 ‘오바마의 시대’를 앞두고 투표 대열에 나서고 있다고 2일 전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흑인 인권운동가 밥 로는 “84년 제시 잭슨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밀린 뒤로 흑인들은 정치와 거리를 뒀었다”며 “그들이 20여년만에 다시 정치적 열정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을 눈 앞에 둔 흑인 유권자들은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오바마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AP통신은 건국 이래로 희망과 좌절을 반복해 겪어온 흑인들 사이에 지금도 기쁨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바마가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와의 격차를 벌이며 당선 가시권에 들어간 뒤로 희망은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인종 폭력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공포심도 동시에 싹트고 있다는 것. 50~60년대 백인들의 ‘반동’을 지켜봤던 룰라 쿠퍼(75)라는 흑인 여성은 AP통신에 “우리 세대가 믿고 따랐던 지도자들은 모두 살해됐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AP는 “흑인 유권자들은 오바마 당선이 인종차별의 끝이 아닐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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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국 흑인 정치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흑인 투표권은 남북전쟁 뒤 5차, 13차, 14차, 15차 수정헌법을 거치며 조금씩 진전을 이뤘고 1870년 마침내 “인종 등을 이유로 투표권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수정헌법이 발효됐다. 그러나 실제로 흑인들이 자유롭게 투표를 할 수 있기까지는 한 세기가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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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워싱턴에서 흑인들의 존재는 미약하다. 6년 임기의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흑인은 현재 오바마 한 사람 뿐이다. 지금까지 통틀어도 오바마 포함 3명에 불과하다. 재선된 사람은 없다. 오바마가 초선에서 곧바로 대선에 나섬으로써, 당분간 ‘재선 흑인 상원의원’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연방하원에는 1868년 이래로 123명의 흑인 의원이 있었다. 1900년 이후로는 총 93명인데 그 중 90명은 민주당, 3명은 공화당 소속이다. 이들 대부분은 90년대 이후 당선된 사람들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 하원의원을 배출한 전례가 있는 선거구는 시카고, 볼티모어 등 10곳에 불과했다. 미국 흑인들은 대공황을 거치고 40년대 ‘대이주’를 통해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 때문에 인구비율상 흑인 우세지역이 사라진 것도 흑인 정치인들의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이 됐다.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현재 국무장관으로 재직 중인 콘돌리자 라이스 등 두드러진 인물들도 몇몇 있긴 했으나 민선 정치인 중 흑인들은 여전히 마이너리티다. 흑인 주지사는 역대 4명 뿐인데 그 중 최초였던 루이지애나의 핑크니 핀치백은 1872년 35일 임기를 지키는데 그쳤다. 실질적인 흑인 주지사는 90년 당선된 더글러스 와일더가 처음이었다.


근래에 눈길을 끄는 흑인 정치인은 지난 3월 취임한 데이빗 패터슨 뉴욕주지사(민주)와 데벌 패트릭 매서추세츠 주지사(민주), 마이클 스틸 메릴랜드 부지사(공화) 등이다. 특히 패트릭 주지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에 하버드 법대를 졸업, 오바마와 많은 공통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국에서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흑인들을 가리키는 말은 시대와 함께 변화해왔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꽃을 피우기 전까지는 ‘네그로(negro·깜둥이)라는 경멸적인 호칭이 여과없이 사용됐다. 엉클 톰, 짐 크로(Jim Crow·까마귀 짐) 같은 별칭도 많이 쓰였다. 
70년대에는 흑인들 사이에 ‘블랙(black)’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자는 흐름이 생겨나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모토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등 여러 이민자들과 달리 유독 흑인들에 대해서만 피부색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혈통을 나타내는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이라는 말이 8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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