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물론 민주당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다. 오바마에게 투표하기 위해서 생애 처음으로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처럼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혹은 정치적 무력함만을 느껴왔던 흑인 유권자들이 ‘오바마의 시대’를 앞두고 투표 대열에 나서고 있다고 2일 전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흑인 인권운동가 밥 로는 “84년 제시 잭슨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밀린 뒤로 흑인들은 정치와 거리를 뒀었다”며 “그들이 20여년만에 다시 정치적 열정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을 눈 앞에 둔 흑인 유권자들은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오바마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AP통신은 건국 이래로 희망과 좌절을 반복해 겪어온 흑인들 사이에 지금도 기쁨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바마가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와의 격차를 벌이며 당선 가시권에 들어간 뒤로 희망은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인종 폭력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공포심도 동시에 싹트고 있다는 것. 50~60년대 백인들의 ‘반동’을 지켜봤던 룰라 쿠퍼(75)라는 흑인 여성은 AP통신에 “우리 세대가 믿고 따랐던 지도자들은 모두 살해됐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AP는 “흑인 유권자들은 오바마 당선이 인종차별의 끝이 아닐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흑인 정치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흑인 투표권은 남북전쟁 뒤 5차, 13차, 14차, 15차 수정헌법을 거치며 조금씩 진전을 이뤘고 1870년 마침내 “인종 등을 이유로 투표권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수정헌법이 발효됐다. 그러나 실제로 흑인들이 자유롭게 투표를 할 수 있기까지는 한 세기가 더 걸렸다.
지금도 워싱턴에서 흑인들의 존재는 미약하다. 6년 임기의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흑인은 현재 오바마 한 사람 뿐이다. 지금까지 통틀어도 오바마 포함 3명에 불과하다. 재선된 사람은 없다. 오바마가 초선에서 곧바로 대선에 나섬으로써, 당분간 ‘재선 흑인 상원의원’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연방하원에는 1868년 이래로 123명의 흑인 의원이 있었다. 1900년 이후로는 총 93명인데 그 중 90명은 민주당, 3명은 공화당 소속이다. 이들 대부분은 90년대 이후 당선된 사람들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 하원의원을 배출한 전례가 있는 선거구는 시카고, 볼티모어 등 10곳에 불과했다. 미국 흑인들은 대공황을 거치고 40년대 ‘대이주’를 통해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 때문에 인구비율상 흑인 우세지역이 사라진 것도 흑인 정치인들의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이 됐다.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현재 국무장관으로 재직 중인 콘돌리자 라이스 등 두드러진 인물들도 몇몇 있긴 했으나 민선 정치인 중 흑인들은 여전히 마이너리티다. 흑인 주지사는 역대 4명 뿐인데 그 중 최초였던 루이지애나의 핑크니 핀치백은 1872년 35일 임기를 지키는데 그쳤다. 실질적인 흑인 주지사는 90년 당선된 더글러스 와일더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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