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668

[월드 피플] 팀 쿡 애플CEO, 워싱턴포스트에 칼럼... “동성애자 차별 마라”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화제성에서는 세계 최고였다지만, 후임자인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그 못지 않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쿡 CEO가 이번엔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썼다. 지난해 동성애자임을 밝혀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았던 그는 이번 칼럼에서 동성애자 차별을 허용하는 입법조치들이 미국 내에서 늘어나는 것을 강력 비판했다. 쿡은 29일자 기고에서 “미국 전역에서 아주 위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24개가 넘는 주에서 이웃에 대한 차별을 허용하는 일련의 법안들이 도입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인디애나와 아칸소 등 미국 내 일부 주들은 가게나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고객이나 사업파트너,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 그랜드캐년에 하이브리드 들소 ‘비펄로’ 떼...  

아메리카 초원의 주인이었던 버펄로는 유럽인들의 미주 정착과 함께 밀려났다. 버펄로 사냥이 대륙을 휩쓸면서 개체수는 급격히 줄었다. ‘아메리칸 바이슨(American Bison)’이라고도 불리는 버펄로는 1492년 이전 북미 초원에 600만마리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1890년 무렵에는 750마리 수준으로 줄어 멸종 위기를 맞았다. 이후 사냥이 통제되면서 2000년 기준 36만마리 정도로 늘었다. 요즘 미국 그랜드캐년 일대가 색다른 버펄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 버펄로는 흔히 알려진 미국 들소가 아닌 ‘비펄로(Beefalo)’다. 비펄로는 일종의 하이브리드(잡종) 동물이다. 목축업자들이 버펄로와 소를 교배시켜 비펄로를 만들었지만, 이들은 야생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어 농장들을..

‘오바마 암살할 수 있을까’ IS 가담하려던 미 극단주의자들 체포  

미국에서도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가입하려던 남성 3명이 체포됐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연방검찰이 뉴욕 브루클린에 살던 카자흐스탄 국적의 아크로르 사이다크메토프(19) 등 3명을 체포해 25일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사이다크메토프는 시리아 IS에 합류하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 했다고 뉴욕 JFK공항에서 붙잡혔다. 검찰은 그가 이스탄불로 갈 수 있게 도운 혐의로 아브로르 하비보프(30)라는 남성도 함께 체포했다. 하비보프는 우즈베키스탄인으로 역시 브루클린에 살고 있다. 하비보프는 가판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점원으로 채용한 사이다크메토프를 극단주의로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압두라술 주라보프(24)도 다음달 이스탄불로 가..

애플 시가총액 7000억달러 돌파...기업 역사를 새로 쓴 팀 쿡

스티브 잡스가 ‘전설’을 만들었다면 팀 쿡은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 애플사의 시가총액이 세계 기업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잡스의 그늘이 너무 클 것이라는 우려를 샀던 애플 최고경영자 쿡은 수치로 나타난 실적을 통해 전임자를 넘어서는 저력을 보여줬다. 1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1.9% 올라 122.02달러로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7107억4000만달러(약 780조원)로 추산됐다. 올해 한국 예산(376조원)의 거의 2배이고, 한때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던 제너럴모터스(GM) 시가총액의 12배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장중에 잠시 7000억달러를 돌파한 적이 있지만 종가 기준으로 넘은 것은 처음이다.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애플 주가는 2000년의 120배로 뛰어올..

미국의 자선가들은 혁신가들...잡화점 청소 알바하던 소년 얀 쿰, 미국 네번째 자선가 되다

얀 쿰(38)은 우크라이나 키예프 교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듬해인 1992년, 16세 소년은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사회보장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머니는 보모로 일했고 쿰은 잡화점 청소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새너제이대학에 진학한 그는 회계법인 언스트영의 보안담당 직원으로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을 댔다. 1997년 쿰은 포털회사 야후에 엔지니어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다 나와 앱 개발을 시작했다. 2009년 1월 아이폰을 한 대 장만한 쿰은 앱스토어에서 마침내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다음달 그는 ..

상위 1% 부자들 세금으로 복지 늘린다- 오바마의 '중산층 경제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의회에서 국정 연설을 했습니다. 상위 1%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중산층을 위한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해 상하 양원을 공화당에게 모두 빼앗기고, 레임덕이 극심할 것이라 예상됐던 오바마... 하지만 이번 연설을 통해 오바마는 카리스마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며, 의제를 선점하고 정국의 이슈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오바마는 이 새로운 구상에 '중산층 경제학(경제론)'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대체 내용이 무엇인지, 백악관 웹사이트에 공개된 자료를 퍼왔습니다.(번역은 나중에... 죄송...) Middle Class Economics for the 21st Century - Helping Working ..

쿠바, 미국과의 약속대로 정치범 53명 석방  

쿠바 정부가 정치범 53명을 석방했다. 지난해 말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이후, ‘개혁’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첫 조치다. 아바나타임스는 12일 쿠바 당국이 53명의 정치범을 풀어줬다고 보도했다. 아바나의 미국 대표부 등 미국 측도 석방 사실을 확인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관리는 “쿠바 정부는 우리와 약속했던 대로 정치범들을 석방했음을 알려왔다”며 “매우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지난해 말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논의하면서 정치범 문제를 거론했고, 국제 인권단체들이 석방을 요구해온 정치범들의 명단을 쿠바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쿠바 정부는 미국이 줄곧 제기해온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있음을 보여줬다. 앞서 미국..

언론의 역할이란... 미-쿠바 화해 뒤엔 뉴욕타임스와 '그란마'가 있었다

미국과 쿠바가 '비밀 협상'을 해서 '전격적으로'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지요.그 뒤에는... 장소 빌려준 캐나다, 밀어주고 당겨준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바마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분위기 띄워준 존 네그로폰테(부시 시절의 관료였지만 미-쿠바 관계개선을 촉구했습니다) 등 유명인사들, 기타등등 기타등등 여러 요인&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언론'입니다. 쿠바 합의 뒤에는 뉴욕타임스와 '그란마'가 있었습니다. 그란마는 쿠바 공산당 기관지입니다. (영어 버전도 있어요. 보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로) 바티칸의 중재로 비밀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12일, 뉴욕타임스는 사설로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이 외에도 그 무렵부터 계속해서 쿠바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Ob..

‘쿠바 충격’ 베네수엘라 더 고립되나...미국은 제재 추진  

‘쿠바 충격’이 라틴아메리카를 강타하자 세계의 눈길은 베네수엘라로 향하고 있다. 저유가로 국고가 비어가는 차에 정치적 타격까지 입은 베네수엘라는 더욱 고립될 것이며, 결국 반미 수사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 우고 차베스가 주창한 ‘21세기 사회주의’의 경제적 바탕은 베네수엘라의 페트로달러(석유 수익)였지만 정신적 지주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였다.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합의 뒤에도 아직 그의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88세인 그는 7월에도 남미 지도자들의 방문을 받았고 건강에 심대한 이상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직 침묵하고 있다. 그가 직접 대중들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은 올 1월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전격적인 합의 뒤에는 ..

피그만에서 관타나모까지, 미국과 쿠바의 굴곡진 역사  

피그만에서 관타나모까지, 미국과 쿠바 사이의 관계는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하고 극적인 드라마였다. 두 나라의 관계는 18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훗날 미국의 6대 대통령이 된 존 퀸시 애덤스는 1819~25년 국무장관을 지낼 당시 쿠바를 “스페인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져나온 사과”라 표현했다. 애덤스는 미국이 반 세기 안에 쿠바를 병합해야 한다면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게 만든 중력의 법칙이 있듯 (미국이 쿠바를 병합해야 할) 정치의 법칙도 있다”고 주장했다. 독립 이후 중남미의 스페인 세력과 대치해온 미국 입장에서 ‘스페인에 맞서온 쿠바’는 서반구의 거점으로 삼을만한 후보지였다. 1881년 당시 미 국무장관 제임스 블레인도 “멕시코만의 열쇠인 이 풍요로운 섬이 만일 스페인으로부터 벗어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