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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포페스쿠 '국가 경계 질서'

딸기21 2018. 9. 2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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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경계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경계 경관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물리적 분리의 표식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 시야가 닿는 곳에는 그 어떤 국경 펜스나 감시탑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강을 건너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소련도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곳으로 넘어갈 이유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강을 건너지 못했던 이유가 그것이 경계라는 것을 알고, 넘어가면 앞으로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하천 중간에는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경계가 나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6-7쪽)


8월에 읽은 책인데 책상 위에 쌓아두고 있다가 이제서야 정리한다. 가브리엘 포페스쿠의 <국가 경계 질서>(이영민 외 옮김. 푸른길). 원제는 Bordering and Ordering the Twenty-First Century: Understanding Borders.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모양의 얇은 팜플렛 같은 책이다. 표지 디자인은 마지 못해 한 듯하고, 두께도 얇다. 동어반복이 적잖고 딱히 극적인 내용도 없다. 그런데도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생각할 거리들이 많았다. 당장 뭔가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곱씹어봐야만 할 것 같은 묵직한 어떤 것.




이름을 보면 유추할 수 있듯이 저자는 루마니아 사람이다. 책은 루마니아와 소련을 가르는 강변에서 멈칫거리며 걸음을 멈췄던 저자의 오래 전 기억으로 시작한다. 국경임을 알리는 어떤 표식도 없었지만 건너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던 소년. 냉전은 끝났고, 차우세스쿠 정권은 무너졌고, 성년이 된 소년은 "새로이 얻은 자유를 십분 활용해 곧장 여권을 발급받았고, 경계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시작해 남쪽으로는 구 유고슬라비아 지방, 북쪽으로는 폴란드까지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 그러나 내 여권으로는 서유럽에 입국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7쪽)


그 순간 지리적으로 뒤틀린 채, 내가 예전처럼 잘못된 경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국경을 넘어가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이 내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라, 부쿠레슈티 시내의 대사관 건물 내부와 그 주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경계라는 것이 엄청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대사관 직원에게 뇌물을 주었다면 이 오락가락하는 경계를 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수천 달러를 뇌물로 지불하려는 사람이라면, 관광을 하러 프랑스나 독일을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 고정된 경계가 세계체제 곳곳에서 발생하는 조직적인 문제들을 만드는 원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8쪽)


저자는 "나의 경계 이야기는 독특한 것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기야, 우리는 지구상 어느 곳보다도 독특하다면 독특하고 강력하다면 강력한 경계선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고등학생 시절 강이라는 지리적 경계가 국경으로 굳어진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지만, 나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두 발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살았다. 


그렇게 국경은 언제나 강력하게 생각을 가뒀지만 그 지리적 위치를, 국경을 건너는 검문소를 본 적은 없다. 그 사이엔 비무장지대라는 부자연스러운 장치가 한꺼풀 더 자리잡고 있으니까. 처음으로 땅 위를 지나 국경을 넘는 경험을 했을 때의 느낌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신기하고 낯설거나 혹은 대단한 시설이라도 자리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국경이 지극히 평범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 오히려 당혹했던 순간.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국경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없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이 독특한 '넘을 수 없는 경계'의 테두리 안에 사고가 굳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경계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살고 있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 한때 나를 배제했던 경계의 모습은 모스크바, 멕시코시티, 라고스, 베이징의 거리 등 세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9쪽)


책은 국경 혹은 경계가 역사적/지리적으로 '구성'돼 왔다는 것을 간단히 짚고, 경계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20세기 중후반을 지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간략히 소개한다. 냉전 틀에서 글로벌화 담론으로, 그리고 9.11 이후로 넘어가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과정이다. 


정보기술 그리고 안보담론과 결합된 21세기 '네트워크화한 국경'은 자본과 재화를 이동시키면서 동시에 커트라인에서 탈락한 불량한 이주자들은 걸러내는 이동의 거름망 역할을 한다. 그 거름망이 작동하는 곳은 '국경검문소'나 공항의 출입국장만이 아니다. 생체계측기술로 신원을 확인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 몸 안에서까지(!) 국경이 힘을 발휘한다. 내 몸이 곧 나의 신분증이다. 


이제 '넘어다닐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는 권력의 구조에서 위치가 달라진다. 실제로는 우리 삶의 곳곳에 경계가 있고 사회경제적 권력에 따라 선이 그어지지만 우리들 눈에 그 경계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경계 '안에' 있으면서 넘나들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혹은 보이지 않는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한마디로 인터넷 구매대행 쇼핑을 할 수 있고 외국 여행비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경계를 인식하지 않은 채 "저 위험한 쓰레기들로부터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구사회를 차지하려 침입해 들어오는 이민자 군대의 이미지'(149쪽)에 경도된 한국 사람들의 '유사 서구 의식'을 요즘처럼 강하게 느낀 적도 없는 것 같다.


"침입자들은 무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선진국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직종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많은 이민자가 보호소를 찾는 난민이라는 점도 위협적 타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실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민자에 대한 타자화 담론의 기저에는 선진국 사회의 문화적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담론은 경제 논리로 대개 설명되지만, 이민자를 수용하는 많은 이익집단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이민자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점보다는 그들과 이웃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149쪽)


저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 얻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말한다. 또한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권리는 가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아 미래에 그 권리를 잃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서문을 읽은 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지도는 우리가 지표 공간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어떤 관점, 즉 국경으로 구획된 지구를 당연시하는 관점을 담고 있다.

경계의 목적은 공간 상에 차이를 분명히 표시하는 것이다. 동네, 도시, 지방, 지역, 국가의 경계, 그리고 최근에는 초국가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다양한 공간적 질서 내에서 오랫동안 이뤄져왔다. 다양한 경계들은 문화 경관과 물질 경관이 되어 다채로운 모습으로 형상화되곤 한다.

동시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경계 넘나들기를 유도하는 이동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스스로를 경계의 틀 속에 열심히 가둬놓으려고 애써왔으며,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뀌었을 때 비로소 그 경계를 가로질러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이 시대의 공간적 상호작용 양상은 다양한 스케일의 경계들이 지리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관계망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계와 사회의 상호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경계들에 의해 정렬돼 있는데 때로는 그 경계들이 영토적 특성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공간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 패턴은 사라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지지도(mental maps) 상에 각인돼 있는 경계가 쉽게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경계라는 것은 사람들의 의시고 속에 보편화돼 있는 고정된 실체다. (15쪽)


어떤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국경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사를 가르는 엄청난 문제다. 경계의 역동성과 그러한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경계짓기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경은 지역적이면서도 네트워크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동시에 경계화 과정은 전자기술이 점점 더 반영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어가고, 생체계측 기술로 인간의 신체 속으로도 뿌리내리고 있다. 국경과 관련된 더 많은 권한들이 사적기관이나 준공공기관으로 이전되면서 그 통제기능도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런 변화의 결과, 국경은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스며들어 대단히 불평등한 방식으로 인간과 장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7쪽)


사람, 자본, 물자, 질병, 아이디어 등이 국경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이동하는 가운데, 전 세계의 국경은 그런 흐름이 가져다주는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보루로서 오히려 장기간 지속돼야 한다는 새로운 정당성을 부여받게 됐다. 달리 말해서 국경은 이제 이동성을 용인해줄 수 밖에 없는 동시에 그 부수적인 효과를 막아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17쪽)



경계만들기는, 경계짓기(bordering)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악하기가 어려운, 모호한 과정이다. 경계는 고정돼 있지 않다. 그것은 일시적이며 공간과 시간상에서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경계는 단순한 선분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네트워크로서 변화무쌍한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 경계는 다양한 규모와 형태로 출현하며, 모든 경계는 누군가에 의해 그 구성의 기준이 규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만들어진다. 공간 상에서 인간 존재를 필연적으로 분리시키는 자연적 경계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는 무엇보다도 권력과 관련된 개념이다. 경계 만들기는 공간에 차이를 새겨넣음으로써 공간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권력의 전략이다. 차이의 영역화는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배타적인 권력 실천인 것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이 누구인지를 결정짓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경계는 사회의 질서를 정립하는 역할을 해왔다. 경계 만들기는 공간상에서의 이동을 규제함으로써 인간행위를 조직하는 수단이다. (24-25쪽)



근대에 세계적으로 국가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국가의 경계가 가장 근본적인 경계의 형태라는 생각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국가의 영역적 경계가 다른 모든 경계보다 우선한다고, 다시 말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경계라고 단정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젠더, 종교, 계급 등의 경계는 국경처럼 단순히 내부/외부를 구분 짓는 것 이상의 기능을 수행한다. 

오히려 국경은 다른 범주의 경계들과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상이하다는 관점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국경은 다른 유형의 경계들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그런 경계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국경은 정치적, 영역적 경계다. 정치적으로 조직된 공간의 범위를 표시해 주고 공간 내부의 응집력을 암시해준다는 점에서 영역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이다.(26-27쪽)



글로벌화의 흐름이 필연적으로 탈영토화나 국경의 소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특정한 일부 흐름에 국한해 국경이 선택적으로 축소되는, 이른바 정치권력의 재영토화를 목도한다. 사회적 관계의 이동성 증가는 영역성 자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특성을 수정해가고 있을 뿐이다. 국경은 영향력이 약해지기보다는 더욱 복잡해지고 차별화돼 가고 있다. 국경은 여전히 글로벌화 과정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53쪽)



핵심은 국가의 정치 규제가 종종 국경의 범위 내에 제한되지만, 비정치적인 경제활동들은 쉽게 경계를 넘나들고 국가 규제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9.11 테러 이후 많은 의사결정자들의 머릿속에는 경계의 안보화 담론이 자리잡았다. 대체로 경계의 안보화는 특정 범주의 사람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기 위해 국경을 보강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계는 이동성의 정화(purifying)를 통해서만 통제가능한 일종의 필터나 방화벽으로 비유된다. 과거에 국경 검문소에서만 강제되던 국경의 기능은 이제 국가 영토 내 어디서든 발휘될 수 있다. 국경은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 민영화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더 많은 장소에서 더 자주 경계를 마주한다. 글로벌화에 수반된 시공간 압축의 시대를 맞아 인간의 이동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경계의 네트워킹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54-55쪽)



상호배타적이던 국민국가의 경제 조직논리가 이제 생산과 교환에 토대한 자본조직의 내부 논리로 수렴하고 있다(Harvey 2000). 외부의 경쟁으로부터 내수시장을 지켜왔던 메커니즘으로서의 국경선의 역할은 미약해졌다. 국경은 교환비용을 고려하면서 조명되기 시작했고, 자유시장경제의 운영에 필수적인 무역흐름이 보장되도록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로 간주됐다. 이런 개방경계담론이 1990년대에 우위를 점하면서 새로운 글로벌 국경레짐이 구성되고 있다. (85쪽)


경계의 안보화 담론은 물리적으로는 폐쇄성을 줄이되, 경계의 선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선별적 투과성은 처음부터 경계의 개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선택된 계층의 사람이나 제화는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었지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나 재화는 이동이 금지됐다.



국가 경계는 다양한 수준의 투과성을 지닌 거름망이나 막과 같은 기능을 하는데, 특히 자본의 흐름에는 투과성을 높이고 반대로 저숙련 노동자에 대해서는 투과성을 낮출 것이다. 국경은 합법적인 트래픽은 통과시키고 불필요한 침입자들은 차단하는 방화벽에 비유된다. 여기서 누가 합법적인 트래픽을 결정하는가는 주요한 문제다. 

이러한 경계의 안보화는 실질적으로는 이행하기가 쉽지 않다. 영토보호 기능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율적인 흐름을 허용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영토 선형성의 규범에서 벗어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글로벌화의 지리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형태의 국가경계와 경계짓기가 출현한다. (112-113쪽)



지리학은 끝나지 않았으며 국가는 소멸되지 않았고 세계에서 경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리학은 재인식되고 있으며 경계는 새로운 역할과 의의를 갖게 됐다. 



우선 글로벌화의 흐름이 영토국가의 경계들과 관계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글로벌화는 글로벌 도시나 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같은 다양한 지리적 장소에 영토적 정박지를 가지며 이뤄졌다. 그 결과 글로벌화의 흐름은 영토 안에 뿌리내렸고, 영토는 다시 글로벌화의 흐름에 뿌리내렸다. (120쪽)




국가 정부는 경계의 일정 부분을 세계로 확대함으로써 세계 금융시장을 규제한다. (OECD, IMF, EU 등은) 일부는 자율적이지만 일부는 국가가 통제하는 금융표준의 글로벌 레짐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2000년대 말의 경제불황은 재영토화와 재경계화 과정을 새롭게 검토할 기회였다. 국가는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으로 주목받았다. 온갖 종류의 지구적 흐름은 영토국가 내 납세자들이 낸 세금으로 구제받아야 했는데, 이는 트랜스국가적 흐름과 영토국가 사이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수립된 경제회복 계획이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가의 계획이었다는 점이다. (121-122쪽)



네트워크화된 경계는 먼저 외국의 영사관이나 대사관에서 조우할 수 있다. 두번째로 이 경계는 공항, 항구, 버스와 기차 정거장, 여행사에서 여행객의 서류가 확인되는 순간 발견된다. 세번째로 네트워크 경계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해양경비대가 순찰을 하는 플로리다의 남서쪽 해안, 스페인 카나리아섬, 호주 북쪽 지역, 이탈리아 남부의 바다 등에서 발견된다. 네번째는 호텔, 인터넷카페, 경찰서, 슈퍼마켓, 길 코너, 고속도로 등에서 개인 신분이 확인돼야 하는 경우다. 다섯번째로 요새화된 커뮤니티 공간에서 사람들이 분리되는 경우와 같이, 특정 구역에서 경계를 확인할 수 있다. 여섯번째로는 난민캠프, 이민자 구금센터, 관타나모만과 그 외의 '사이장소'에서 경계의 존재를 살펴볼 수 있다. 일곱번째, 네트워크화된 경계는 법원청사, 병원, 학교, 운전면허장과 같은 공적 기관에서뿐만 아니라 도축장, 건설현장, 딸기밭 같은 개인사업장에서도 발견된다. 여덟번째로 경계는 트럭 집하장, 창고 등과 같이 재화가 유통되는 곳에서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상에서 나타나는 경우인데, 항공권을 구입할 때 경계는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지적재산권을 유지시키는 등의 기능을 한다.



네트워크화된 경계에서는 일상화된 통합 시스템에서 복합적 경계 레짐이 규칙적으로 이동을 관리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예전에 비해 더 많은 경계와 조우하면서도 물리적 경계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경계넘기의 경험들이다. 다시 말해 경계에서 인종, 계급, 민족, 종교, 교육, 건강 같은 사회경제적 특징이 한층 더 중요해졌다. 이 속성들은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보다 복잡한 방식으로, 시대에 따라 달리 각각의 집단에게 적용된다. (132-133쪽)


다시 말해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는 이웃 국가, 고속도로, 건물의 특정 장소에서 경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이러한 경계가 너무나 뚜렷하고 현실적인 것이 된다. 이런 관점은 사람들이 경계가 있지만 그 경계를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그들에게도 경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경계를 인식하지 않고 경계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지닌 물리적, 사회경제적 특징이 경계를 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비자 신청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신청자가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도시로 이동을 해야만 한다. 개도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인구와 선진국에 사는 소수민족에게 이런 신청절차는 결코 수월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가 국경을 넘으며 이동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면 먼저 다양한 '비자 모임'에 가입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항상 경계와 협상을 해야만 한다. (134-135쪽)



안보의 의미 변화는 안보 정책의 위상을 강화했고, 사회구조가 개인 수준에서 더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인의 안보를 위해 가장 먼저 보장돼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닌 일상생활이다. 개인 안보를 위해 국가집단을 지키는 것에서,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을 지키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즉 안보를 영역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닌, 이동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일어났다. 일상적 이동의 흔적은 더 이상 경계 내부에서만 작동하지 않기에 안보 전략은 글로벌 스케일에서 상상돼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일상생활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지켜낼 수는 없다. 따라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위협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위험을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 안보의 더 중요한 문제가 됐다. 

여기엔 두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수많은 위험 중 어떤 것이 사회에 실재적인 위협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이런 모호성은 위험이 정치화될 여지를 제공한다. 예컨대 안보담론은 자유무역이나 환경오염과 관련된 위험은 경시하는 반면 이주와 조직범죄에서 연유한 위험은 강조한다.

둘째, 위험관리는 알려지지 않은 것을 예측하는 것으로, 사실에 기초한 분석보다 상상과 추측에 의지한다. 위험은 확률의 영역이다. 위험의 패턴을 식별하기 위해 사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광범위한 안보망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위험은 감시 활동을 통해 '추출돼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 전체는 감시 활동의 대상이 돼야 한다. (144-145쪽)



좋은 이주자와 나쁜 이주자로 명확히 구분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합법적으로 넘어온 이주자라도 비자 기간을 넘어 체류하면 불법이주자가 되기 때문에, 경계를 넘는 모든 사람은 잠재적 불법이주자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둘째, 경계 통과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논리에 따라, 직업을 이유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경계를 넘는 수많은 이주자가 범죄자로 분류된다. 합법적인 이주경로가 점점 더 봉쇄됨에 따라 난민과 임시 이주자같은 대규모 범주가 점점 더 불법이주로 변하고 있다. (150-151쪽)


재입국협정(Readmission Agreement)과 안전한 제3국 협정(Safe Third Country Agreements)는 정착국가가 불법이주자를 본국으로 보낼 수 있고, 망명 신청자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통과했던 국가로 되돌려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정책의 도입으로 제3국 경계 내에 해외 난민 수용소와 심사기관이 생겼다. 유럽연합, 미국, 또는 호주로 가려다 제지당한 사람들은 난민 심사도 없이 송환되곤 한다. 강제송환이라 불리는 이런 제도는 유럽국가의 헌법과 제네바 난민협약에 위배된다. (159쪽) 



주목할 점은 호주가 수많은 섬을 자국 영토에서 제외시켰다는 점이다. 호주 영토인 어떤 섬에 이주자가 상륙하면 시기적으로 소급해 그 섬을 영토에서 제외했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의 경계는 현실 세계를 외면한 채 추상 세계를 임의대로 지향하는 유동성의 극단적인 표현체가 됐다. 기묘한 시간과 공간의 뒤섞임 속에 호주의 경계는 이주자를 건드리지 않고도 그들의 신체를 넘나들게 됐다. 이런 정책은 2008년 호주 신정부가 구성되면서 끝났지만 외딴 크리스마스 섬에 이주자를 수용하는 정책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162쪽)


이민자 수용소는 세계의 주요 군도에 설치됐고 이 섬들은 정치적-영역적 틈새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가 거의 들어보지 못한 람페두사(이탈리아), 쿠프라(리비아), 상가트(프랑스), 크리스마스(호주), 티 돈 휴토(미국), 관타나모(쿠바), 디에고가르시아(영국), 린델라(남아공) 등을 비롯한 수백 개의 섬은 21세기 안보 패러다임의 드라마를 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는 대부분 죽음으로 끝난다. (163쪽)


(안보, 그리고 안보의 민영화에 쏟아붓는) 막대한 투자가 사회에 가져다주는 혜택은 무엇일까? 사회복지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공적 프로그램에 대한 공공 투자를 줄이고 경계 안보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가? 이 돈이 이민 송출국에 전략적으로 투자된다면 더 나은 안보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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