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구정은의 세상] 난민이 싫으면 석유를 끊어라

딸기21 2018. 9. 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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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건 2015년 초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시작한 뒤 인구 2800만명 중 2200만명이 외부 도움에 끼니를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19만명이 나라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전까지 예멘은 난민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밖에서 온 난민을 끌어안고 사는 나라였다. 소말리아에서 도망쳐 예멘으로 간 사람이 28만명이니, 지금도 예멘에서 나온 난민보다 예멘이 받아들인 난민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예멘 난민 사태’는 사우디가 일으킨 일이다. 2011년 ‘예멘판 아랍의 봄’으로 장기집권 독재자를 몰아낸 뒤 집권한 압두라부 하디라는 인물이 당초 정치세력들 간 권력을 나눠갖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가 자기 정당에서까지 축출되고 결국 쫓겨날 판이 됐는데, 사우디가 하디를 편들어 전쟁을 시작했다. 


사진 유엔난민기구(UNHCR)



건강이 나빠 정상적인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는 평가를 받던 사우디 새 국왕 살만이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사우디 왕실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가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디가 쫓겨나면 미국의 대테러전과 사우디의 ‘아랍 동맹전선’에 균열이 올 상황이기도 했다. 사우디는 미국산 미사일을 예멘에 퍼부으면서 마을과 병원과 예식장과 학교를 초토화시켰다. 지난달에도 통학버스를 공습해 아이들 40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난민들이 향하는 곳은 부자 나라들이 아니다. 대개는 ‘가난한 이웃나라’다. 사우디의 공격으로 도망쳐나온 예멘인들이 주로 향한 곳도 유럽이나 미국이나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예멘이 국경을 맞댄 나라는 사우디와 오만 두 곳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를 보면 예멘인 5만1000명이 오만으로 갔다. 자기네를 공격한 사우디와, 아덴만 건너 소말리아에 각각 4만명이 갔다. 3만7000명은 소말리아 옆 작은 나라 지부티로 향했다.

 

난민들은 이렇게 불안정한 나라들을 오가며 이리저리 피신하고 있다. 떠난 곳도 가는 곳도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기에는 힘든 곳들이다. 난민 중에서 극히 일부, 460명이 지금 제주도에 들어와 있다. 이들을 먼 나라 섬으로 향하게 만든 사우디는 석유를 팔아 먹고사는 나라이고, 예멘에 퍼부은 미사일은 석유 팔아 번 돈으로 사들인 무기다. 한국석유공사의 석유수급통계를 보면 한국은 2016년 기준으로 석유 10억7800만배럴을 수입했고, 그 3분의 1인 3억2400만배럴을 사우디에서 가져왔다.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1966년 한국 건설업이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이후 2014년까지 사우디는 “전체 해외 수주 누계의 20%를 차지하면서 지속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난민 뉴스는 이제 사라졌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난민 대소동이라도 일어난 듯 아우성을 친 지 두 달이 됐지만 아직 제주도의 예멘인 중 국내 난민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사라진 뉴스가 된 건 아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타고 가짜뉴스가 끊임없이 흐른다. 기독교 국가였던 레바논은 난민을 받아줬다가 이슬람 국가가 됐고 기독교도들이 핍박을 받는단다. 레바논 기독교도들이 프랑스 점령 시절 협력했던 사실, 이스라엘과 기독교 민병대가 난민촌에서 3000명을 학살한 사실은 순식간에 왜곡돼 ‘난민 반대’ 논리와 이슬람공포증의 근거로 둔갑한다. 몇몇 언론은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소셜미디어 사진들을 뒤져가며 ‘잠재적 테러범’으로 몰아간다.

 

난민들이 가짜라고? 이주자와 난민은 원래 구분되지 않는다. 불법이주자가 많은 건 단지 이주를 불법으로 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범죄, 생존권을 빼앗는 범죄와 달리 이주자들의 불법은 ‘옮겨왔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행위를 하지 않아도, 지금 어느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된다. 그 법은 임의적이며, 그의 존재가 불법인지 아닌지는 임의적인 잣대에 달려 있다. 

 

예멘 난민이 싫다고? 그렇다면 사우디 석유를 사서 쓰지 말자. 우리 석유 수입의 3분의 1을 줄여버리는 거다. 전기 사용량, 화학비료 사용량 다 줄이는 거다. 사우디의 대량살상을 돕는 미국과의 관계도 끊자. 난민이나 만들어내는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지 말자. 사우디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도 보이콧하자. 예멘 난민이 싫다면 석유를 거부하라.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난민에 가짜 딱지를 붙이고 인종차별적 혐오를 일삼고 난민을 몰아내자고 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다. 국제적으로 합의한 난민 협약이 있고 글로벌 사회에서 져야 할 책임이 있다. 세상은 다 이어져 있다. 돈도 자원도 국경을 넘나든다. 그런데 사람의 이동, 도덕적 책임감의 공유만 쏙 빼놓자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다. 우리에게 석유를 팔아 돈 번 나라가 미사일을 퍼부어 집을 잃은 이들이 지금 우리 옆에 와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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