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로버트 카플란, '지리의 복수'

딸기21 2018. 1. 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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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복수 THE REVENGE OF GEOGRAPHY

로버트 카플란. 이순호 옮김. 미지북스



카플란의 책은 언제나 '기분 나쁘지만 읽는 책'이라서 쟁여두는데, 이번엔 좀 오랜만이긴 했다. <타타르로 가는 길>이나 <제국의 최전선>에 비친 그 오만함과 미국 잘났다 주의, COMING ANARCHY에 드러난 기분나쁜 통찰력과 신랄함이 이번엔 뭐랄까, 조금 꺾인 기분. 


카플란의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이젠 늙은 모양이다. 온 세상을 돌아다닌 이야기들을 풀어놓긴 했지만 대부분은 '지난 이야기'들이고, 이번 책의 전반부는 거의 다 자신이 읽고 공부한 지정학자들의 책에 대한 것들이다. 이라크전 때 자기가 침공을 선동하고 다닌 것에 대한 회한 비슷한 표현도 아주 조금 들어 있다. 


"나 역시 글을 통해, 그리고 부시 행정부에 이라크 침공을 촉구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이라크전쟁을 지지했다. 나는 실상을 가까이서 접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 이라크에서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담의 이라크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시리아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사담의 제거를 열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53쪽)


미국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모험을 시작할 때부터 회의적이었던 인물들, 다시 말해 현실주의자와 실용주의자라는 말이 중요성을 가진 반면에 신보수주의자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뮌헨의 닮은꼴이 베트남의 닮은꼴로 확실히 교체된 때가 바로 알카에다의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이 시아파 성지인 사마라의 알아스카리야 사원을 폭파함으로써 미군도 멈추지 못한 극렬한 종파 분쟁을 야기한 2006년 2월 22일이었다. 그로 인해 미 지상군이 졸지에 원초적 증오와 무질서가 맹위를 떨치는 와중에 속수무책인 무력한 세력으로 비쳐졌으니 말이다. 파나마 침공과 1차 걸프전쟁 때 생겨나 소말리아내전 때 조금 손상을 입었다가 아이티, 보스니아, 코소보에서 그 명성을 회복해 승승장구하던 전능한 미군에 대한 신화는 그렇게 미군의 지지기반인 이상주의와 함께 한동안 산산조각이 났다."(55쪽)


전쟁을 부추긴 저널리스트의 변명하고는. 말은 똑바로 하자. 사마라의 알아스카리야 사원을 폭파한 것은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이었고, 그로 인해 이라크가 종파분쟁의 시대로 접어든 것(그리고 뒤에 가서는 IS 사태가 벌어진 것)은 맞다. 하지만 사마라 모스크의 미나레트, 그 유명한 나선형 탑 '말위야' 꼭대기에까지 정찰 장비를 설치해서 분쟁을 부추긴 것이 미군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카플란은 조지 W 부시 정권의 대테러전을 적극 지지하고 부추긴 강경 우파 친이스라엘 유대인 저널리스트이고, 이라크 침공 때 미군과 동행해 팔루자 학살을 옹호했던 인물이다. 그의 책은 미국의 우익 이데올로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좋은 교재가 된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카플란의 책은 토머스 프리드먼 같은 사람의 책과 꼭 같이 읽어줘야 한다. 프리드먼은 카플란의 대척점에 선 '주류 저널리스트'의 대명사이자, 민주당을 지지하는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 서두에서 카플란이 대놓고 프리드먼을 비판하면서 시작한 것은 그래서 재미있다. 이번 책은 제목을 좀 강하게 붙였는데, 지리는 여전히 중요하며 지정학(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외교적 현실주의)은 몹시도 중요하며 그걸 무시했다가 지금 산과 바다로 갈라진 세계의 복수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카플란은 "여론을 주도해 가는 엘리트들이 몇 시간 단위로 대양과 대륙들을 넘나들게 되고, 그것을 기회로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평평한 세계'라고 부른 것에 대해 거침없는 입담을늘어놓는 시대, 요컨대 제트기와 정보 시대에 접어들면서 잃어버리게 된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우리 모두 되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프리드먼 류가 평평하네 머네 하는 시대에 세계는 지리적 굴곡에 따라 계속 갈라지고 있으니 미국은 정신차리고 마음을 다잡아라, 중동 아시아 중국 유럽 쟤네들 저따위로 나둬서는 안 된다 하는 얘기다. 언제나 그렇듯 카플란이 보는 세계는 '서로 잡아먹으려 다투는 정글 투쟁의 세계'이고, 조금이라도 힘이 생긴 나라들은 미국에 맞서 세상에서 제 몫을 더 많이 가져가려는 잠재적 적들이고, 아시아-동양적-이슬람적인 것은 뒤쳐지고 덜떨어진 것들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 따위는 신경쓰지 않으며, 남의 나라 일을 참 멋대로 잘도 지껄인다. 하지만 못돼처먹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읽으면 카플란의 책은 늘 재미있다.


한반도의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에서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폭력이다. 그러나 철조망과 지뢰밭 양쪽에서 분출되는 형식적 증오감도 결국에는 예측 가능한 내일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될 것이다. 20세기의 분단국이었던 독일, 베트남, 예멘에서 보듯 분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든 통일의 힘은 결국 예기치 않게, 또 때로는 폭력적이고 매우 빠른 속도로 개가를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한국의 DMZ도 베를린장벽과 마찬가지로 지리적 논리와는 상관없는 임의적 경계, 적대적인 두 군대가 멈춰 선 곳에서 민족국가가 둘로 갈라진 임의적 경계라고 할 수 있다. (21쪽)


책 머리에서는 한반도 이야기로부터 '임의적 경계'와 '지리적 경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유럽 문제에서 모스크바는 여전히 워싱턴의 적이고, 아시아에서 중국은 미래의 적이다. 다만 그들이 언제 어떻게 웅크리거나 발톱을 펼까 하는 것이 카플란의 관심사다. 그 틀에서 그는 두 잠재적 적들의 '변방'을 거론하고, 중동이라는 난장판을 들여다본다. 멕시코를 필두로 한 중남미는 미국의 골칫거리이자 미국이 눌러놓고 다져놔야 할 텃밭이라는 시각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나머지 나라들은 장기판의 말이다.


그리스는 유럽 계획(유럽연합)의 건전성 여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그리스가 발칸 지역 중에서는 유일하게 여러 해안을 통해 지중해로 접근할 수 있고, 그러므로 두 유럽권을 잇는 지역인 점도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리스는 거리상으로도 브뤼셀과 모스크바의 중간 지점에 있으며 비잔티움의 유산인 동방정교회를 물려받은 나라로서 유럽만큼이나 러시아와도 문화적으로 밀접히 연관돼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는 근대 역사기 내내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한 나라였다. 그리스 독립전쟁은 대체로 종교에 기반을 둔 민족적 운동이었던 것도 그 점을 말해준다. 그리스는 또 냉전기에 공산권에 속해 있지 않았는데도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골치 아픈 국가이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 다시 말해 서방의 끝이자 시작인 곳이었다. 냉전 초만 해도 그리스는 거의 서구권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랬던 그리스가 나토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처칠과 스탈린 간의운명적 협상, 우파인 그리스 정부와 좌파인 공산당 간의 내전이 한창일 때 두 사람이 얄타에서 만나 그리스를 영국 영향권 아래 두기로 결정한 협상이었다. (231-232쪽)


소비에트는 20세기 초 민족적 경계와는 무관하게 개별 공화국들을 수립했고, 그로써 그들이 소련에서 탈퇴할 수 있는 길은 막혀버렸다. 소련은 범투르크주의, 범페르시아주의, 범이슬람주의를 두려워했다. 불완전한 해법이지만 민족 집단들을 갈기갈기 찢어 공화국들을 수립한 것은 그래서였다. 시르다리야강 계곡만 해도 키르기스스탄의 우즈베크족 거주 지역에서 시작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을 지난 뒤 우즈베키스탄으로 되돌아와 카자흐스탄에서 끝이 나고,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와 페르가나 지방을 잇는 도로 또한 타지키스탄을 통하도록 되어 있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호젠트와 호로크를 가는 데에도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거쳐야 하고, 우즈베키스탄에 접한 침켄트는 주민 대다수가 우즈베크족인데도 카자흐스탄에 속한 도시가 되었다. 타지크인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우즈베키스탄의 도시가 된 사마르칸트 등 그런 예는 부지기수로 많다. (274쪽)


중국은 중앙아시아에 이미 250억달러를 투자했고 지금은 카자흐스탄을 가로즈리는 3200킬로미터 길이의 고속도로 건설비용도 부담하고 있다. 알마티와 우루무치를 오가는 비행기도 날마다 운항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시장에는 중국 물건들이 넘쳐난다.

그 점에서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에서 러시아의 운을 나타내는 궁극적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서유럽 크기의 영토에 국내총생산 규모가 중앙아시아 여타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새 수도 아스타나가 열혈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소련 붕괴 뒤에도 병합을 시도했을 만큼 민족적으로 러시아 색채가 짙은 북부 도시라는 점도 그렇다.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에 접경한 4800킬로미터 길이의 북쪽 경계지에 위치한 9개 주 가운데 8개 주의 주민 90퍼센트 가량이 비카자흐인이었던 것이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아스타나의 기념비적 건축물들도 카자흐스탄이 자국에 품은 러시아의 야망을 질타하는 상징물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100억달러의 거금을 투자하여 아스타나를 카자흐스탄의 도시로 새롭게 변모시켰고, 고속철도를 건설해 남부지역과도 연결되게 만들었다.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한 카스피해의 두 유전을 비롯해 엄청난 규모의 유전, 가스전, 콘덴세이트전도 개발 중이다. 카스피해에서 중국 서부로 이어지는 송유관 또한 조만간 완공될 예정이며, 머지않아 세계 최대의우라늄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를 남북으로 가르는 우랄산맥은 카자흐스탄 북서쪽에서 끝나고, 중국 서부 가장자리에 위치한 톈산산맥은 카자흐스탄 남서쪽에서 시작된다.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미칠 개연성이 높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심한 압박도 받게 될 것이다. 경제가 러시아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데다, 군사적으로도 러시아군에 맞서 자국을 지킬 역량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푸틴이나 그의 후계자가 지나치게 고압적으로 나오면 언제든 중국 쪽으로 돌아설 선택의 자유가 있다. 러시아는 영코 크기가 카자흐스탄의 40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도 3분의1밖에 되지 않으며 변변한 천연자원도 없는 조지아와 2008년 전쟁을 벌일 때 초대형 대륙에서 군사적 모험을 하는 것의 한계를 이미 절감한 바 있다. 2010년 민족 폭동이 일어났을 때 은근하게 타진해온 카자흐스탄의 군사개입 요청을 러시아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카자흐스탄 저편의 중앙아시아 산악지대에서 수렁에 빠져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277-278쪽)


설령 사회, 경제적 혼란이 일어난다 해도 중국은 여전히 지정학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중국이 완전한 혼란에 빠져들 개연성 또한 희박하다. 중국은 관개문명에 서구식의 극단적 현대성을 결합시키는, 다시 말해 수백만 노동력을 요하는 대규모 치수와 토목 사업을 벌이는 중앙 통제적 통치 양식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의 한 관리는 "중국은 당신의 환심을 사려고 들면 얼마든지 사고, 당신을 쥐어짜려고 들면 얼마든지 쥐어짤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매우 체계적으로 행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사회불안과 비효율성이 포함된 내적 활력을 외적 야망으로 분출시키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국가는 때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을 추구하기도 한다. 힘이 강해질수록 부족함과 새로운 불확실성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것이 국가를 유기적 방식으로 세력을 팽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얘기다. 

중국도 지금 변경지들을 통합하면서 외부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다른 점이라면 선교적 방식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전파할 이데올로기도, 정부제도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중국은 국토의 7%밖에 안 되는 용지로 세계 인구의 23%에 양식을 공급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런 중국이 지금은 대다수 도시 주민들에게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제공해줘야 하는 대중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공인된 국경 밖으로 나간 것은 핵심적 국가이익-경제적 생존과 성장과 관련돼 있고, 그 점에서 중국을 극도로 현실주의적인 국가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석유와 광물질이 풍부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으스스한 식민지풍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거나, 탄화수소가 풍부한 아랍-페르시아권과 중국 해안지대를 이어주는 남중국해와 인도양 유역에서 항구 접근권을 얻으려 하는 것이 좋은 예다. 문제는 중국이 교류하는 일부 나라들의 정부가 미개하거나 독재적이거나 혹은 그 두 요소를 모두 가졌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전 세계 자원을 싹쓸이하려는 중국의 행동이 인도와 러시아처럼 중국과 세력권이 겹치는 나라들뿐 아니라 선교적 태도를 지닌 미국과도 충돌을 일을킬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의 여타 국가들이 지난날 중국의 이런저런 왕조의 세력하에 있었다는 것 또한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다. 중국은 제국적 영역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재확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실존적 위협까지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군사적 도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적 위협일 뿐이다. 중국이 가장 본질적인 수준에서 제기하는 도전은 지리적인 것이다. (294-296쪽)


다시금 지리는 지금은 주로 전술적 동맹에 머물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미국은 양국 분쟁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일본, 한국, 타이완 가까운 곳에 주둔하는 중국 해군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러시아와 특별한 우호관계는 물론이고, 중국에 인접한 중앙아시아에 기지를 두고 그곳에서 중국에 압력을 가할 필요성이 생겨날 수 있다. 

반면에 북만주와 러시아령 극동 주민들에게는 한층 낙관적이고 유용한 것이 될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의 교역과 인구가 아무리아와 우수리아로 유입돼 러시아령 극동에서 경제적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진보적 러시아 정부가 그것을 받아들여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북아시아의 글로벌 중심지로 지금보다 좋게 발전시키는 데 이용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한발짝 더 나아가면 북한에도 지금보다 더 나은 정부가 등장하고, 그리하여 동북아시아가 동해를 중심으로 개방된 국경들을 가진 역동적 지역이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도 있다. (300쪽)


중국은 시베리아 동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에서도 러시아와 치열한 세력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 한동안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데는 수송관 두 개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카스피해에서 카자흐스탄을 가로질러 신장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하나와,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국경지대로부터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가로질러 신장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이 그것이다. 대중국이 유라시아 심장지대로 세력을 확대하는 데 굳이 군대까지 필요로 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다.

중국은 이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위험부담도 마다하지 않는다. 카불 이남에서 이미 구리 채굴 작업을 시행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이제 막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좋을 중앙아시아와 연계시켜, 인도양 항구들로부터 천연자원을 실어나르는 도로와 에너지 수송관들을 위한 안전한 도관으로 만들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 시시주 철도그룹도 아프간의 와르다크주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선로를 건설하고 있다. (303쪽)


중국의 도로 건설과 인도양 항구 접근계획이 실현돼 파키스탄이 미래의 대중국권에 편입되고, 상대적으로 허약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같은 범주에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10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인도가 그 막강한 중국 세력권을 분열시키는 지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인도와 중국은 어느 정도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 점에서 티베트 문제도 두 나라 관계에 불을 지르는 것이 되고, 심지어 중심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305쪽)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중국에 특히 중요한 나라는 그 지역에서 영토도 가장 넓고 여기저기로 뻗어나간 버마다. 버마는 중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금속, 탄화수소, 기타 천연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허약한 나라다. 중국과 인도가 개발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버마 쪽 인도양 연안에서 중국 윈난성까지의 거리가 채 800킬로미터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버마가 중요한 이유다. 여기서도 관건이 되는 것은 벵골만의 가스전에서 가스를 실어나를 미래의 수송관이다. 그동안은 타이가 그 지역의 버팀목 및 중국에 맞선 균형자 역할을 해왔으나 타이 정치에 깊숙이 내재된 구조적 문제 때문에... 중국의 파이프라인은 실제로 건설될 것이다. (307-308쪽)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역동적 중산층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남한과 중국 사이에서 완충국 역할을 할 수 있는 보다 현대적이고 독재적인 고르바초프식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은 중국도 통제하지 못한다. 만이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중국 또한 비록 통일을 두려워하고는 있지만 종국에는 그로 인해 득으 보게 될 것이다. 통일이 되면 대한국은 대체로 서울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중국도 한국의 가장 큰 교역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통일 한국은 한반도보다 크고 지난날 자국을 통제, 영유하려고 했던 이웃나라 중국 및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저변에 깔린 민족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일본보다는 중국의 견인이 강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하여 만일 통일 한국이 일본과 멀어지고 중국 쪽으로 약간 기울게 되면 미군이 그곳에 계속 주둔해 있을 이유도 전혀 없거나 혹은 거의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의 재무장이 촉진될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앞으로 한반도의 미래는 대중국 내에서 손쉽게 상상할 수 있고, 동북아시아의 미 지상군 규모는 축소될 거라는 말이다. (312쪽)


현 시점에서 볼 때 중국의 국경들도 위험하기보다는 오히려 기회가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이 그 나름으로 팽창하는 육지세력이고 160만명의 인민해방군 육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민해방군은 인도 아대륙과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경쟁 국가들을 위협하는 세력이기보다는 공백을 메우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313쪽)


중국이 미 항공모함을 실제로 공격할 의도를 가지고 있을 개연성은 희박하다. 중국은 미국에 직접적으로 군사적 도전을 감행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미국의 마음을 돌리려는 것이 중국의 목적이다. 중국이 자국 연안에 공격과 방어 능력을 집중 배치하는 것은 군사적 도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 해군으로 하여금 제1도련선과 중국 연안 사이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재고, 삼고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앞으로 미-중 관계를 결정짓는 요소도 무역, 채무, 기후변화, 인권과 같은 양자적이고 글로벌한 문제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아시아 해역에서 중국이 갖게 될 세력권이라는 특정 지리가 될 것이다. (321쪽)


불안하고 찜찜한 구석도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중앙에 위치한 하이난섬 남단에 핵잠수함과 디젤-전기 잠수함 20척이 들어갈 수 있는 지하 대피소를 특징으로 하는 주요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인도양 반대편 사하라사막 이남에 중국이 보호해야 할 천연자원의 지분이 갈수록 늘고 있다. 수단, 앙골라, 나이지리아의 석유 시장, 잠비아와 가봉의 철광석 광산, 콩고민주공화국의 구리와 코발트 광산 모두 중국이 건설한 도로 및 철도와 연계돼 있고, 이 도로와 철도들은 다시 대서양과 인도양 항구들로 연결돼 있다. (328쪽)


오세아니아의 중요성이 커질 개연성이 높다. 중국의 반접근계획 외곽에 있으면서도 동아시아와는 충분히 가깝기 때문이다. 거꾸로 세워진 만리장성의 '방어탑'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 한국이나 1990년대까지의 필리핀 기지들과 달리 오세아니아에는 상대방을 지나치게 자극할 만한 기지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괌에서 북한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거리이고, 타이완도 배편으로 이틀이면 닿을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실용적 의존도가 높은 까닭에 일부 섬들에서는 미국이 쫓겨날 염려 없이 거액의 군비를 투자할 수도 있다.

실제로 괌에는 이미 미국의 하드파워를 투사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앤더슨 공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10만 개의 폭탄과 미사일 그리고 6600만 갤런의 제트연료를 비축하고 있는 이곳은 공군 최대의 전략적 급유 발진 시설을 갖춘 공군기지다. 전략수송기 C-17 글로브매스터와 F/A-18 호넷 전투기들도 길게 늘어선 채 활주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괌은 미국 잠수함 선단의 기지이자 확대된 해군기지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호주령 애시모어 카르티에 제도의 연안 정박지들과 다윈에서 퍼스에 이르는 서호주의 해안지대를 주변에 둔 오세아니아 남서단도 전략적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오세아니아 주둔 미 공군과 해군력을 증강하려는 데는 중국이 대중국화되는 것을 기필코 막되, 제1도련선 경비에서 중국의 역할을 얼마간 인정해주고,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절충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이 관점에는 제1도련선에 있는 '전통적' 미군 기지들을 축소할 수 있다는 뜻이 암시돼 있다. 반면에 인도양에서의 미 해군의 활동은 극적으로 늘린다는 것이 2010년 미 국방부 내에서 회람된 해병대 퇴역 대령 팻 개릿의 계획이다. (331쪽)


60년 전 미군을 한반도의 지배적 지위에 남겨놓고 끝난 전쟁의 결과물인 남북 분단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지향하는 대양 해군도 시간이 가고 해군력 자체에 자신감이 붙으면 영토적 주장을 하던 태도를 누그러뜨려 동맹 체제로 편입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특별한 지리로 인해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관계는 미-소 갈등 관계에 비해서는 안정을 유지할 것이다. 설령 통일된 대한국이 친중국 성향을 띤다 해도 유라시아 주변에 그 정도로 많은 지상군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고, 중국 해군 또한 미국 해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334쪽)


인도는 아대륙인 동시에 대중동의 중요한 말단을 형성하고 있다. 아대륙으로서의 인도가 뚜렷한 지리적 의미를 갖는 반면 자연적 경계들은 허약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인도 파악의 열쇠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인도 아대륙에는 다양한 국가들이 공존했고 사실상 아대륙 양쪽에 걸쳐 있었다. 

이슬람교도들은 7세기부터 인도에 진출했다. 아랍인 다음에는 투르크족이 이슬람권의 패자가 되어 1000년이 되기 전 이란고원과 아프간을 침략했고, 1세기 뒤에는 북부 평원 일대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도 아대륙이 대중동에 접목된 것이다. 8세기 초에는 이라크의 아랍인들이 신드, 펀자브, 라자스탄의 일부 지역을 정복했고 11세기 초에는 투르크계 맘루크 전사인 마흐무드가 아프간 동부 가즈나(가즈니) 왕국을 정복, 지금의 이라크령 쿠르디스탄, 이란, 아프간, 파키스탄, 델리에 이르기까지 인도 북서지역을 아우르는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13~16세기에는 델리 술탄국이 투르크계 투글루크 왕조, 아프간계 로디 왕조, 그 밖의 중앙아시아 출신 왕조들을 통해 북부와 남부의 일부 지역을 지배했다. 

지리는 인도 아대륙의 북서지역을 고정된 국경이 아닌, 이란과 아프간에서 시작해 델리에서 끝나는 일련의 끝없는 가변적 존재로 만들어놓았다. 그것의 정치, 문화적 표현이 무굴제국이었다. 제국의 창건자는 1483년에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계곡에서 태어난 투르크계 차가타이족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 바부르였다. 바부르는 청년기에는 티무르의 옛 수도 사마르칸트를 회복하는 일에 진력했고, 칭기즈 칸의 후예인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에게 패해 사마르칸트를 잃은 뒤에는 남쪽으로 내려가 카불을 점령했다.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 대제에 의해 토대가 다져진 무굴제국은 수니파와 시아파, 힌두교도는 물론이고 라지푸트족, 아프간족, 아랍인, 페르시아인, 우즈베크족, 차가타이족 등이 혼합된 귀족층을 보유함으로써 북서쪽의 러시아 남부와 서쪽의 지중해에서 시작된 인종과 종교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카불과 칸다하르는 델리에 기반을 둔 이 숭엄한 제국에 포함된 반면, 지금의 방갈로르를 중심으로 한 남부의 힌두교 중심지는 정작 제국의 경계에서 벗어나 있었다. (347-349쪽)


인도인들은 아대륙 지도를 볼 때마다 북동쪽의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와 마찬가지로 아프간과 파키스탄도 인도의 직접적 세력권으로 파악하고, 이란, 페르시아만, 구 소련령 중앙아시아 국가들, 버마를 중요한 그림자 지역으로 본다. 인도가 아프간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자국이 대처해야 할 또 다른 안보적 문제로만 간단히 치부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아프간을 중앙아시아의 일부로 보는 것은 서구의 시각일뿐, 인도인들에게는 그곳이 아대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355쪽)


이란은 이란고원과 곧바로 동일시된다. 이란은 인구가 사우디보다 2.5배 많지만 인구 성장률 또한 1%이하로 낮추는 데 성공했고 15세 미만 인구도 전체 인구의 2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란에서는 인구가 짐이 아닌 자산이 된다.

대중동의 석유와 천연가스는 사실상 모두 페르시아만이나 카스피해 지역 중의 하나에 묻혀 있다. 중동에서 이 두 지역에 걸쳐 있는 유일한 나라가 이란이다. 이란은 아라비아해 쪽으로도 파키스탄 국경에 접한 차바하르 항이 포함된 300킬로미터 길이의 해안지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소련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부동의 바다로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의 칼자루도 이란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란의 등뼈인 자그로스 산맥의 서쪽뿐 아니라 동쪽과 북동쪽에도 호라산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속한 카라쿰(검은모래) 사막과 키질쿰(붉은모래) 사막으로 통하는 도로들이 나있다. 이란은 이렇듯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의 자원 풍부한 유전지대에 걸쳐 있을뿐 아니라 중동과 중앙아시아에도 걸쳐져 있다. 아랍의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입지다. 같은 맥락에서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에 이란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게 미치고 있다. (387-389쪽)


이란은 사우디와 달리 20세기에 가문과 종교적 이념으로 급조되고 임의적 국경들로 둘러싸인 나라도 아니다. 이란은 영국 언어학자 니컬러스 오슬러가 썼듯, 히브리인과 더불어 "원전과 문화 전통을 현재까지 잔존시킨" 근동의 유일한 고대 민족이었다. 페르시아어만 해도 문자는 아랍문자를 채택해 쓰고 있지만 11세기의 형태가 지금까지도 사용된다. 국가와 도시 문명으로서의 이란도 아랍권 대부분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및 팔레스타인이 포함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전 지역을 압도하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요컨대 이란에는 인위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이란 종교계에 다수의 경쟁적 권력중심들이 있는 것도, 이스라엘과 터키를 제외하고는 그 지역 어느 곳보다 수준 높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음을 나타낸다. 

영국 역사가 마이클 액스워시는 이란을 고대 그리스 및 중국과 마찬가지로 다른 민족 및 언어들을 빨아들이는 문명적 흡인력을 가진 나라로 파악했다. 다리어, 타지크어, 힌디어, 벵골어, 이라크 아랍어 모두 페르시아어의 변형이거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언어들이다. (392쪽)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이슬람혁명을 겪은 현대의 이란도 강렬하고 독특한 그 유산에 부합하는 표현일 수 있다. 이슬람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성직자 정부는 확실히 활력과 현대성을 갖추고 있었다. 고대의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와도 직결된 이 특징이 말해주는 것은 결국, 이란의 과거와 현재에 관련된 모든 요소는 키루스 대왕으로부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에 이르기까지의 이란제국들이 보여준 역동성이든, 시아파 성직자들의 정치적 사고와 저술이든, 반체제 인사들의 탄압에서 드러난 관료제도와 안보기관의 복잡한 효율성이든,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이다. 

테헤란의 혁명적 질서가 후세인의 이라크처럼 투박한 일인 깡패 정부가 아닌, 권력 중심들이 고도로 분산되고 고도로 발달된 정부조직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만 해도 그렇다. 올리비에 루아는 이슬람혁명의 독창성이 성직자와 이슬람 지식인들의 제휴에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썼다. "비이슬람권에 대한 시아파 성직자들의 태도가 수니파 울라마들에 비해 개방적인 것은 확실하다. 아야톨라들도 (카를 마르크스와 포이어바흐 등을 읽을 정도로) 독서 수준이 상당히 높다. 요컨대 이들에게는 예수회와 도미니쿠스회 같은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시아파 성직자들의 이원적 문화는 실로 놀라운 바가 있다. 극도로 전통적이면서 또 현대 세계에도 매우 개방적이다." (399-400쪽)


이란은 핵 프로그램이 입증해주듯 기술도 중동 최고 수준을 가진 나라에 속하고,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수력발전소, 도로, 철도를 건설해주었다. 언젠가는 그것들 모두 직통으로든 아프간을 통해서든 이란과 연결될 것이 분명하다. (403쪽)


미국은 팔라비의 실각뿐 아니라, 2001년 9월 11일 이후에 찾아온 기회 역시 살리지 못했다. 하메네이와 하타미 모두 알카에다의 테러리즘을 단호히 비판하고 아랍권 일부 군중이 테러공격에 환호하는 상황에서도 이란인들이 테헤란 거리에서 희생자들을 위해 밤샘 기도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다. 2001년 말엽에 미국이 주도하는 반탈레반 동맹에 이란이 제공한 도움이나 2003년 봄 바그다드 함락 직후에 나온 이란의 실질적 대화 제의의 기회 역시 살리지 못했다. (408쪽)


정녕 이란이야말로 고대와 중세의 혁신적 제국주의 전통에 걸맞게 포스트모더니즘적 군사 제국을 훌륭하게 수립했다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도 없고, 힘에는 으레 따라붙게 마련인 탱크, 기갑부대, 항공모함도 없는 최초의 군사제국을 수립했다는 의미에서다. 

CIA 출신인 로버트 베어도 이란을 침략과 점령이 수반되는 고전적 제국주의가 아닌 "세 갈래의 대리전 전략, 비대칭 무기, 억눌린 (청년군단)에 대한 호소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중동의 초국가라고 보았다. (409쪽)


이밖에 터키, 시리아, 멕시코 이야기들이 있지만 패스.... 2012년에 시리아가 가장 큰 혼란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은 칭찬해주고 싶음.


번역자는 워낙 국제문제에 대한 책을 많이 옮긴 분이고 카플란 책도 여럿 번역한 분이라 훈늉. 다만 지리와 관련된 책인데 '크라이나'가 같은 페이지에 두번이나 '크라니아'로 잘못 찍혀 있는 등 오자가 좀 눈에 보이는 것은 옥의 티.


2012년에 쓴 책인데, 지금 미국은 또 바뀌어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다. 트럼프 정부를 바라보는 카플란의 시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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