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세계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뉴스들은 참혹했습니다. 무너진 집들, 숨지고 다치고 병에 걸린 사람들. 무엇보다 마음 아팠던 것은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에, 먹을 것이 모자라서 진흙을 물에 개어 햇볕에 말려 먹다니. 흙이라도 먹고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 책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김현주 글, 권송이 그림. 사계절)에 소개된 아이티의 열 살 소년 임마누엘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뉴스를 다룰 때에 ‘빈곤’을 어떻게 전달하고 설명할 것인지는 늘 고민거리입니다. 가난한 나라의 비참한 사람들, 특히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은 늘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지요. 굶주려 비쩍 마른 아이의 사진 한 장을 실으면 현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의 사진과 함께 기근, 전염병, 내전, 분쟁 따위를 소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런 신문기사나 방송 뉴스를 보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아프리카는 사람들이 굶주리는 곳이로구나’ ‘아프리카 아이들은 불쌍하구나’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세계의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의 현실을 전하는 것과 함께, 그들이 게으르거나 나빠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가난이란 무엇일까. 세상은 점점 발전한다는데 왜 세계 70억명 중에는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 세계의 그 많은 돈은 다 누구에게 간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갈수록 부유해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까.
이 책은 ‘남반구 나라’들이 겪는 가난을 아이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면서, 식민지배라는 어두운 역사를 고발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식민지 시절의 과거에서만 찾는다면, 독립을 한 뒤 5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이 가난한 이유를 다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나라들이 발전할 기회를 빼앗아가고, 곡물 값이 요동치게 만드는 강대국들과 국제기구들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렇게 가난의 먼 원인, 가까운 원인들을 설명해주는 것이 이 책의 뛰어난 점이지요.
부모님에게 넉넉한 돈을 물려받았는데도 사치를 누리느라 펑펑 다 써버린 뒤 남들을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며 손을 내미는 친구가 있다면, 꾸짖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라고, 성실하게 살면서 돈을 벌라고. 낭비하지 말고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꾸려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세계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아이티 소년 임마누엘은 게을러서 진흙쿠키를 만들어 먹는 게 아니라, 그저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배를 곯는 처지가 됐습니다. 여기, 한국에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여기에서 태어난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고 학교에 다니고 학원에 다니고 현대사회의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가난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펑펑 쓰고 온실가스를 내뿜어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바람에 아프리카 건조지대의 가뭄이 심해져 그곳 아이들이 더욱 굶주리게 된 것도 사실이거든요.
‘페이스북’을 만든 미국의 기업가 마크 저커버그는 얼마 전 딸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습니다. 재산을 거의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저커버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함께라면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단다.” 가난한 이들을 돕고,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 책을 쓴 김현주 선생님은 그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울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또 국제기구에서 직접 실천하고 있는 분입니다. 책의 뒷부분에는 어떤 것이 ‘잘 돕는 방법’인지 소개돼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고통받는 이들을 잘 도울 방법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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