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러시아의 공세 속, 나토의 고민

딸기21 2014. 9.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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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오는 4일과 5일 영국 웨일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28개 회원국 정상들이 격년제 정상회의를 엽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선 공동대응’을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라는 오랜 숙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동유럽국들을 러시아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공동방위에 필요한 돈을 누가 낼 것인지는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나토 정상들은 이번 회의에서 ‘신속대응군’을 창설하는 방안에 합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작게는 소규모 부대에서, 이 계획에 따르면 크게는 ‘여단 규모(3000~5000명)’에 이르게 될 신속대응군은 유사시 48시간 이내에 동유럽에 파병됩니다. 신속대응군을 뒷받침할 보급·통신·정보수집 능력도 강화됩니다.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1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신속배치군이라는 창(spearhead)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도 이번 회의에 참석합니다.

 

러시아 위협 맞서, 나토 '신속대응군 창설' 합의할 듯


이번 정상회의에서 오바마는 “러시아를 비롯한 어떤 세력으로부터든 동맹국들이 공격받지 않도록 미국이 보호할 것”임을 천명하는 데 주력할 것이며, 영국에 도착하기 전 에스토니아에 들러 ‘동유럽의 우방들을 안심시킬’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나토 정상들은 ‘집단적 안보’를 규정한 조약 5조를 이번 회의에서 다시한번 확인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나토군 총사령관을 지낸 미군 장성 제임스 스타브리디스는 “나토가 다시 강화되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악몽이 될 것”이라며 푸틴의 잇단 조치들이 역설적이지만 그런 결과를 불러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도와 반대로, 이번 회의가 나토의 ‘정체성 위기’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나토는 1949년 옛소련에 대응하기 위한 집단안보체제로 출범했고, 이후 40년에 걸친 냉전 시기 유럽의 보호막으로 기능했지요.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 러시아가 더이상 최강의 적이 아닌 상황이 되면서 나토의 존재 의미는 퇴색했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나토군의 주된 역할은 발칸반도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토는 이미 1997년 러시아와 ‘나토-러시아 기본법’이라 불리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나토는 동유럽 국가들에 항구적인 기지를 둘 수 없게 돼 있습니다. 2002년에는 ‘나토-러시아 협의회’가 만들어져서 양자 간 협력을 제도화했습니다.


러시아와 정면 대치? 그건 유럽도 원치 않아!


러시아가 올 2월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나토는 러시아와의 협력활동을 모두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그동안 쌓아온 관계를 모두 내버리는 것은 나토 회원국들 대부분이 원치 않는 일입니다. 올 3월 폴란드가 나토 군사기지를 자국에 설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라트비아 방문 때 폴란드의 요청을 일축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러시아가 노골적·직접적으로 침략해오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나토 내 서유럽국들은 ‘기본법’의 틀을 깨뜨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나토가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5개국에 신속대응군을 지원할 정찰·보급기지를 두고 300~600명 가량을 상주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전투병력은 두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나토가 신속대응군 창설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결국 동유럽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러시아와 전면대치하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뜻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 가능성까지 흘리고 있지만, 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우크라이나라는 완충지대가 계속 있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돈은 누가 내나... 대답 없는 물음 뿐


러시아 위협을 받아들이는 유럽 내 각국의 ‘체감도’가 다른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러시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조차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이겠지요. 이는 누가 병력과 돈을 댈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나토 28개 회원국 중 실질적으로 군사행동에 기여할 수 있는 나라는 절반 뿐입니다. 지난 5월 나토는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군사훈련으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스프링 스톰’ 훈련을 에스토니아에서 실시했습니다. 당시 참가인원이 6000명이었습니다. 반면 지난 2월 크림반도 병합 직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벌인 군사훈련에는 15만명이 동원됐습니다.



나토는 회원국들이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방위비로 쓸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지키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그리스, 에스토니아 4개국 뿐입니다. 총 1조달러 규모인 나토 전체 방위비 지출액의 73%를 미국이 맡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러시아는 방위비 지출을 50% 늘린 반면, 나토 회원국들은 20% 감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터져나온 ‘신냉전’ 주장은 일시적인 것일 뿐, 유럽국들 대부분은 러시아를 심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회원국 각자의 국방비를 뺀 순수 ‘나토군’ 예산은 연간 30억달러 규모에 불과합니다. 오바마는 이번 회의에서 나토의 ‘공동대응’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회원국들의 방위비용 기여도를 높이라고 촉구할 계획이지만 회원국들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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