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도전하는 도시] ‘도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는 행복과 직결

딸기21 2015. 4. 6. 09:35
728x90

에필로그 ‘인간적인 도시를 위하여’


‘인간적인’ 도시,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은 지난해 11월부터 석달에 걸쳐 남미와 유럽,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의 도시들을 돌며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미래를 위한 준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살펴봤다. 도시의 규모나 개발 정도나 고민거리는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국가나 민족 같은 추상적인 틀과 달리 도시는 사람들이 걷고 보고 먹고 일하는 ‘공간’이며, 이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수준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시 공간의 설계였다. 집과 직장 외에 도시에는 수많은 공공공간이 있다. 학교도 있고, 전철역도 있고, 수퍼마켓도 있고, 공원과 산책로도 있다. 이 모든 시설에 ‘누구나 차별없이’ ‘언제라도 불편하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도시 인권의 핵심이다.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거나,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처럼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 앞자리에 앉지 못한다거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거부당한다면 행복한 도시가 아니다.

 

어느 곳에든 편하게 접근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마이너리티 집단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은 도시에서 의식하든 하지 않든 수많은 행동을 한다. 덴마크의 도시학자 얀 겔은 이미 1970년대에 도시 거주민의 움직임을 세분화해, 도시 설계에서 고려할 것 43가지의 목록을 만들었다. 이후 이 체크리스트는 12개로 축약됐으며 도시 공공공간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교통사고 등 사고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것, 범죄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것, 소음이나 스모그, 악취 같은 불쾌한 감각·경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것 등이다. 



또한 우리는 도시 안에서 걷거나,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앉거나, 듣고 말한다. 놀기도 하고 햇볕을 즐기기도 한다. 그 중 ‘걷기’ 하나만 해도 길의 크기, 걷는 거리, 도로의 소재와 높낮이 변화 같은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 대부분 도시들은 길과 건물의 관계가 자동차 중심으로 돼 있다. 길 걷는 사람은 수시로 차량 진출입로에 부딪치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조각작품이나 관상수에 가로막히곤 한다. 

 

도로뿐 아니라 심지어는 길가 상점의 크기도 시민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 캐나다 저술가 찰스 몽고메리는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서 “대형 상가 근처에 사는 노인들은 다양하고 작은 상점이 많이 모여 곳의 노인들보다 노화 속도가 빠르다”고 지적한다. 넓은 면적을 차지한 통유리 건물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걸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고, 이런 지역의 노인들은 외출을 줄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덴마크의 대도시들은 1980년대부터 은행들의 도심 지점 개설을 규제했다. 은행 외벽은 보안상 창문과 문이 거의 없어, 은행들이 몰린 거리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미국 뉴욕과 캐나다 밴쿠버 등도 상점들의 도로변 면적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섬세한 고민들이 모든 공공공간에 적용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에서 벤치들을 관찰한 얀겔이 남긴 기록은 유명하다. 행인들을 바라보게끔 놓인 벤치에는 행인들에게 등을 돌린 벤치보다 10배 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2015년까지 탄소중립 도시가 되겠다고 선언한 코펜하겐은 통근자 교통수단 분담률이 자동차 31%, 대중교통 28%, 자전거 37%이고 보행이 4%를 차지한다. 이런 수준에 이르기까지 시 당국은 도심 자동차 도로와 주차공간을 연 2~3%씩 줄였고, 그 공간에 자전거와 버스전용차로를 늘렸다. 녹지 부근 주민들은 이웃을 더 많이 알며, 이웃에 대해 더 후한 평가를 내리고, 주민모임에 더 많이 참석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결국 도시 공간의 설계를 바꾸는 것, 공동체가 활성화되게 하는 것, 에너지와 자원을 덜 쓰는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도시’로 나아가는 것, 그 안에서 경제가 순환되게 하는 ‘연대 경제의 모델’은 서로 이어져 있다.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의 박용남 소장은 살기 좋은 도시로 가기 위한 몇 가지 요인들을 꼽았다. 첫째는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보행 조건을 개선하고, 자전거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해야 하며, 대중교통이 잘 작동해야 한다. 또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공공공간을 정비·확충해야 한다. 

 

둘째, 지역화폐나 협동조합 같은 연대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둘러본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도시 볼로냐와 트렌토, 지역은행과 대안화폐로 빈민촌을 살린 브라질 포르탈레자의 해변마을은 그런 도전을 하는 곳들이었다. 


박 소장은 세번째로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에 대비해 소비를 줄이고 자원 재활용을 극대화하면서 도시 전반의 효율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