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미-쿠바 화해 뒤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있었다

딸기21 2014. 12. 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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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위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로마가톨릭 성인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이다. 그의 이름을 딴 첫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기도문을 현실로 만들었다.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넘게 계속되온 적대를 마침내 끝내기로 결정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이 결단을 내리도록 호소하고, 물밑에서 협상을 돕고, 대화할 장소를 내준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17일(현지시간) 교황의 78살 생일을 맞아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는 탱고 파티가 열렸다. 수백 커플이 광장에 나와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의 생일을 축하하며 탱고를 췄다. 하지만 이날의 하일라이트는 탱고 파티가 아니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나란히 미-쿠바 관계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자 교황청은 곧바로 “열사적인 결정에 따뜻한 축하를 보낸다”는 성명을 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힘겨운 협상을 도운 ‘중재자 프란치스코’의 역할을 조명했다.


17일 78세 생일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주례 강론을 한 뒤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다. 이날 성베드로 광장 부근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탱고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바티칸/AP연합뉴스


미국과 쿠바가 관계를 풀기 위한 본격 협상에 들어간 지는 18개월이 됐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앙금이 너무 많았다. 당장 풀어야할 문제도 있었다. 쿠바에는 미국인 수감자가, 미국에는 쿠바인 수감자가 있었다. 특히 미 원조개발청(USAID) 직원으로 일하다가 구금돼 4년째 쿠바에 갇혀 있던 앨런 그로스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그가 만일 숨지게 된다면 쿠바로선 미국과의 갈등을 풀 기회를 놓치게 되고, 미국 오바마 정부는 협상에 실패했다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터였다.

 

지난 10월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에게 이례적으로 ‘개인적인 편지’를 각각 보냈다. 바티칸은 편지의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교황이 두 지도자에게 “몇몇 수감자들의 상황을 포함해, 양측이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당장 수감자들을 풀어줘 생명부터 살리는 것이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호소한 것이다. USA투데이는 “교황은 오바마와 라울 사이에서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대화에 관여한 외국 지도자였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 바티칸에서는 미국과 쿠바 관리들이 비밀리에 대화를 나눴다. 양국 간에 워낙 불신이 켜켜이 쌓여온 터라, ‘제3국에서의 협상’조차 쉽지 않았을 터다. 교황청은 그런 두 나라에 협상 장소를 제공해줬다. 교황에 이은 바티칸의 2인자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이 미-쿠바 간 협상을 가운데에서 도왔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탱고 댄서들과 군중들이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78세 생일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들고, 흰 수건을 흔들고 있다. 바티칸/AFP연합뉴스


미국도, 쿠바도 바티칸만큼은 신뢰하고 있었기에 중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오바마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숭배한다”고 늘 말해왔고, 백악관에서도 종종 교황의 발언들을 인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는 지난 3월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과 첫 만남을 가졌는데도, 이 때도 교황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여과없이 표현했다. 또한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미국 내에서 줄기차게 쿠바와의 관계 회복을 요구해왔다. 바티칸은 쿠바와도 관계가 좋았다.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여전히 가톨릭이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출신 첫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문제에 큰 관심을 쏟아왔다.

 

오바마와 카스트로는 관계정상화 합의 사실을 발표한 뒤 각각 교황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바마는 “교황은 나와 라울 카스트로 쿠바 지도자에게 앨런 문제를 풀 것과 미국에 15년간 갇혀 있는 쿠바인 3명의 석방을 호소했다”고 공개한 뒤 감사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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