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뉴스 깊이보기] ‘성과 가족의 문제’ 놓고 주교회의... 가톨릭 보수적 교리 바뀔까

딸기21 2014. 10. 6. 17:18
728x90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가족의 소중함, 노인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 등을 중시해왔다. 비단 프란치스코뿐 아니라, ‘가족의 가치’는 가톨릭의 수장들이 누누이 강조해온 것들이다. 하지만 피임과 낙태, 동성애와 이혼을 죄악시하는 가톨릭의 보수적인 가족관념은 늘 논란을 불러왔으며, 기독교 문화가 강력하게 남아 있는 여러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신장을 막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의 오랜 숙제인 ‘가족’의 문제를 마침내 공론에 부치기로 했다. 


5일 바티칸에서 가톨릭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가 개막됐다. 앞으로 2주간 이어질 이 회의는 추기경·대주교 등을 포함해, 최고위급 성직자들이 모여 가톨릭의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특히 이번 회의는 결혼과 이혼, 피임과 낙태, 동성애 등 가톨릭이 금기시해온 문제들을 공론에 부치는 자리라는 점에서 시선을 모으고 있다. 


“요녀석!”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일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바티칸/AP연합뉴스


교황은 이날 주교 200여명을 모아 개막을 선언하면서 “시노드는 누가 더 똑똑한지 겨루는 곳이 아니다. 창의적이고 낮은 자세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형식적인 교리논쟁 대신에 고통받는 신자들을 생각하고, 현실 속에서 신자들이 겪는 고민을 해결해줄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교황이 이런 식으로 고위 성직자들을 모아 의견을 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 시사주간 타임에 따르면 1965년 이래로 교황이 시노드를 소집해 토론을 요청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세번 뿐이었다.

 

교황은 개막 연설에서 신자들에게 불필요한 의무를 지우는 “나쁜 목자(牧者)들”을 비난하면서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형제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빈센트 니콜스 추기경은 내셔널가톨릭리포터에 “우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들이 실제로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주교들은 오는 19일까지 주제별 세션을 정해 비공개 회의를 열고 토론을 하게 된다. 핵심 주제는 이혼, 피임, 동성애, 미혼모 자녀 세례같은 것들이다. 현대사회의 조류와 가톨릭의 방침이 충돌을 일으킬 때에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어떤 입장에서 어떤 길로 인도할 것인가가 논의 대상이다. 교황청은 1968년 인공적인 산아제한을 금한다는 교칙을 발표했으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도 피임을 하는 이들은 많다. 필리핀의 경우 최근 정부가 산아제한을 위한 피임약 배급에 나서기 시작했다. 유럽 가톨릭국가들에서는 이혼·낙태가 합법인 것은 물론이고 동성 결혼도 ‘시민결합’ 등의 형식으로 합법화되는 추세다.


신자들의 현실의 삶과 교리가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공론화까지 이어지게 된 데에는 프란치스코의 ‘결단’이 큰 몫을 했다. 전임 베네딕토16세 교황이 모든 사회이슈에서 강경보수 편에 섰던 것과 달리 현 교황은 교회의 변화를 예견케 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에서 일하던 때부터 슬럼가 미혼모들을 보살피기 위해 애썼고, “교리에 복종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겪는 문제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혼모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거부한 사제들을 “현대의 위선자들”이라 비판한 적도 있다. 


교황청 언론 ‘로세르바토레로 로마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에서 패럴림픽에 참가했던 두 팔 없는 여성 스포츠선수 시모나 앗초리와 만나는 모습을 4일자에 실었다. AP/L‘Osservatore Romano


“태아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낙태를 비판하지만 동성애자·에이즈 환자들을 찾아가 세족식을 해주는 등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해왔다. 사제들이 낙태·피임·동성애 등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서 치유와 위로라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아르헨티나 여성이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사제가 미사 때 성찬을 주지 않는다”고 호소하자 직접 이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논의하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가톨릭 내 보수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로 하느님을 찾는다면 그를 어떻게 판단(단죄)할 수 있겠는가”라는 답변을 해, 미국 최대 동성애자 잡지 애드버케이트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황이 개인의 의견을 넘어 가톨릭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움직임도 진작부터 포착됐다. 교황청은 지난해 11월 전 세계 가톨릭교구를 대상으로 동성애·이혼·피임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각 교구가 속한 나라의 동성결혼 상황,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들의 생각, 동성 커플의 세례, 피임 등에 대한 사제들의 견해를 묻는 조사였다. 교회 수뇌부가 ‘현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조사를 한 것은 1962년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처음이었다. 

 

바티칸은 풀뿌리 설문조사와 이번 주교 토론회를 거쳐, 내년 10월 열리는 전세계 교회회의에서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밝힐 계획이다. 교회 내에 아직도 보수파가 많기 때문에 전통적 교리가 과연 바뀔지 단언하긴 이르지만, 최고위 성직자들의 토론이 시작됐다는 점만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