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소녀들의 반란

딸기21 2005. 6. 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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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하고 학교에 가겠어요"

"테니스를 계속 칠 거예요""할례는 싫어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종교와 부족 전통 따위에 묶여 학업도, 스포츠도 금지당할 처지에 놓인 소녀들이 용감히 인습에 맞서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 영국 BBC방송 등 외신들이 잇달아 전한 이 소녀들의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억압당하는 여성들의 실태와 그에 맞선 싸움을 보여준다.

인도 소녀의 이혼 투쟁

인도 중부 안드라 프라데시 주(州) 랑가 레디에 사는 체니갈 수실라가 3살 위 소년과 결혼한 것은 2년 전인 2003년. 수실라의 부모는 조혼 풍습에 따라 수실라를 억지로 이웃마을 소년과 결혼시켰다. 하지만 어린 신랑신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남편은 종종 수실라를 때리거나 못살게 굴었고, 그녀는 결국 6개월전 가출, 수실라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남편의 학대 속에서 원치 않는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없으니, 이혼을 하고 학교에 가고싶다"는 것이 수실라의 바람이었다.

수실라와 남편이 자라난 두 마을의 원로들은 경찰서 앞에 모여들어 "힌두 풍습 상 이혼은 안 된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수실라는 "다시 남편 집으로 돌려보내면 목숨을 끊겠다"며 맞섰고,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은 수실라를 옹호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반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원로회의는 결국 이달 중순 이혼을 허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경찰과 인권운동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쪽 집안은 혼인을 무효로 돌린다는 합의서에 서명했으며, 수실라는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인도 정부는 이미 1929년부터 18세 미만 소년, 소녀의 강제결혼을 금지시켰지만 농촌에는 조혼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18세 미만 소녀 중 500~600만명이 부모의 강제로 결혼한 `기혼녀'이고, 그중 13만명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소녀들이다. 6만명 가량이 버림받거나 별거 중이라는 통계도 있다. 지난 3월 중부 차티스가르주에서는 18세 미만 소녀 1000여명이 조혼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8세 소녀의 `윔블던 드림'


미르자 사니아는 올봄 인도 하이더라바드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세계 테니스계의 샛별이다. 지난해 US오픈 챔피언인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를 꺾는 파란을 일으켜 주목받았던 미르자는 그러나 고향에 돌아가 찬사와 함께 거센 비난을 마주해야 했다. 독실한 무슬림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녀가 짧은 치마를 입고 공을 쫓아다니는 것을 용납치 않으려는 무슬림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에 부딪친 것. 국제대회에서 선풍을 일으킨 미르자에게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과 집권연정의 소니아 간디 의장까지 나서서 축하를 보냈지만, `무슬림 동포'들의 비판은 혹독했다.


미르자는 그러나 주변의 시선에도 꿋꿋하다. "나는 하루 5차례 기도하고, 다른 무슬림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내가 어떤 옷을 입는지를 신께서 결정하시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이 왜 여기에 간섭하려 하는가". 미르자는 최근 AFP통신 인터뷰에서 "나는 나 자신과 내 조국을 위해 기도한다"며 "강요에 눌려 테니스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소녀의 망명 투쟁


아프리카와 중동 일대 여성 할례는 대표적인 인권탄압 케이스로 유엔에서도 문제가 돼왔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의 빈국 시에라리온 출신의 17세 소녀 자이나브 포르나는 지난 2003년 할례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기 싫다며 영국으로 이주, 런던 법원에 망명 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포르나의 사례는 정치적 망명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면서 그녀의 신청을 거절했다. 이달초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영국의 여성-인권단체들은 법원의 판결이 형식논리에만 치중한 것이라며 포르나의 편에서 연대투쟁을 벌이기 시작했으며, `포르나 사건'은 영국 정부의 망명자 정책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파키스탄 여성의 힘겨운 싸움


남동생의 죄를 대신해 `집단 강간'이라는 징벌을 받은 파키스탄 여성의 법정투쟁이 국제적인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


무크타르 마이(36)라는 여성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것은 지난 2002년 6월. 마이의 오빠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부족회의는 어처구니없이 마이를 대신 벌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부족 남성들이 그녀를 집단 성폭행한 것이다. 마이는 부당한 일에 참을 수 없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으며 힘겨운 투쟁을 통해 승리를 얻어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집단강간범 6명 중 5명을 석방하고 나머지 1명조차 감형, 마이의 승리를 뒤집었다. 분노한 마이는 다시 항고했고 대법원은 27일 마이를 불러 증언을 듣기 시작했다.


마이는 이달초 미국을 방문해 국제여론에 호소하려 했으나 파키스탄 정부의 여행제한 조치로 좌절됐다. 인권단체들은 정부가 마이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부정을 저지른 혐의가 있는 여성을 가족들이 살해하거나 남자 가족의 죄를 여성에게 뒤집어씌우는 파키스탄의 악습을 전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는 "딸이 부정을 저질렀다"며 한 중년남성이 잠든 아내와 딸에게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아들이 간통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엄마와 두 딸에게 `나체 행군'을 강요한 주민들이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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