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사태를 놓고 각국 손익계산이 분주한데, 당장 리비아 금수조치로 발등의 불이 떨어진 나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는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는 1911년부터 1943년까지 리비아를 식민통치했었죠. 그 뒤로도 지금까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지리적으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리비아의 자원을 사다 쓰고, 리비아는 이탈리아 물건을 수입하고 유럽으로의 진출 통로로 삼는 사이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탈리아가 리비아 내전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6일 보도했습니다. 현재 리비아는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리비아 제재 결의안을 이행하지 않은 채 유예하고 있다는군요. 이탈리아 측은 리비아 국부펀드도 자산동결 대상에 포함시킬지 등을 놓고 유럽연합(EU)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리비아와 이탈리아의 교역규모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는 건지 CIA월드팩트북을 찾아봤습니다.
리비아 전체 대외수출 규모가 지난해 약 450억달러(약 50조원), 수입규모는 245억달러였군요. 리비아의 수출물품은 석유와 천연가스, 석유화학제품이 주종을 이룹니다. 리비아의 전체 수출량 중 2009년 기준으로 37.65%가 이탈리아로 향했습니다. 그 다음이 독일 10.11%, 프랑스 8.44%, 스페인 7.94%, 스위스 5.93% 등이었네요. 이 나라들 다 석유 걱정하고 있을 것 같군요.
리비아의 전체 수입량 중에서 18.9% 즉 5분의1 가량이 이탈리아에서 오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외에 중국 10.54%, 터키 9.92%, 독일 9.78% 등입니다. 특히 이탈리아 입장에서 보면 원유의 4분의1, 천연가스의 10%를 리비아에서 사들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2004년 유엔이 리비아 금수조치를 해제한 뒤에 이탈리아는 EU 국가들 중에서 리비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이고, 이탈리아 석유회사 ENI도 리비아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카다피 집안과의 관계도 많았습니다. 피아트 자동차로 유명한 토리노의 아녤리 가문. 명문 축구클럽 유벤투스 지분 7.5%를 카다피에게 팔았습니다. 카다피의 3남이자 리비아축구연맹 이끌기도 했던 사디는 기이한 행동과 방탕함으로도 유명한데, 이탈리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모델들과 추문을 뿌렸고 또 과거 한때 축구팀 삼프도리아에서 뛰었는데 그 때 축구팀이 거액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카다피의 다섯째 아들 한니발도 이탈리아에서 거액의 돈을 뿌리면서 놀다가 경찰관을 소화기로 폭행하는 사건을 저질러 물의를 빚은 적 있습니다.
리비아가 이탈리아에 투자해놓은 것도 많습니다. 리비아 중앙은행이 이탈리아 유니크레딧 은행 지분 7.6%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카다피 쪽과 가깝게 지내왔지요. 베를루스코니는 리비아의 시위 유혈진압이 벌어지는 사이 침묵하고 있다가 일주일이 지나서야 등떼밀린 듯 비판해 눈총을 받았습니다.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명문대학이죠. 그런데 리비아 사태로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카다피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가 2009년 이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부만 하게 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워낙 카다피 측으로부터 이 학교가 돈을 많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카다피 정권이 시위대 유혈진압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성명을 낸 곳 중의 하나가 LSE였습니다. 사이프와의 관계를 모두 끊겠다고 지난달 발표했죠.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
사이프의 박사논문 제목이 우습게도 “글로벌 통치기구의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역할”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표절 의혹이 짙다고 하네요. 부랴부랴 LSE 측은 “표절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금전관계가 있었으니 이걸로 사람들이 눈 감을 리 없죠. 지난 2일에는 사이프가 이끌던 카다피 국제자선재단과 카다피 발전기금으로부터 받은 돈 액수에 상응하는 30만파운드(약 6억원) 규모의 장학금을 북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에게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사이프 알 이슬람의 유럽 커넥션 /bbc
LSE 학장 하워드 데이비스는 지난 3일 결국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파장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에 사이프가 심지어 LSE에서 강연도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 강연이 LSE가 배출한 저명한 정치인인 랄프 밀리반드 프로그램 이름을 내건 강연이었습니다. 랄프 밀리반드는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로 명성을 날렸던 좌파 경제학자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노동당을 이끌고 있는 에드 밀리반드 당수와, 노동당 정권 외교장관이었던 데이비드 밀리반드 형제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밀리반드 전 장관은 6일 BBC방송에 출연해서 “아버지 이름 내건 강좌에 카다피 아들 데려다가 강연했다니 어이가 없다”면서 뒤늦게 노발대발했습니다. 결국 LSE와 리비아 커넥션을 조사하기 위해 울프 위원회라는 독립된 조사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국내에서도 카다피에게 불교인권상이 수여됐던 사실이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죠. 명지대는 2002년에 카다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준 바 있고... 믿거나말거나이지만... 2008년에는 사이프와 콘돌리자 라이스의 염문설이 돌기도 했는데... )
러시아도 무기수출이 중단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냉전 시절에 비공산권 국가 중에서 소련제 초음속 미그기를 가장 먼저 공급받은 나라가 리비아였다는 얘기를 지난번에 했는데요. 지금은 리비아와 러시아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것은 아니지만, 무기 계약건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러시아는 리비아에 40억달러 규모의 무기수출 계약을 한 상태였는데, 안보리 제재안 때문에 이것이 보류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래저래 리비아 때문에 뒤에서 내심 고민하는 나라들, 기업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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