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월가엔 ‘공룡’과 ‘개미’만 살아 남는다

딸기21 2008. 10. 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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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금융산업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대형 은행 몇개와 다양한 중간규모 은행들, 그리고 소규모 지역은행들로 이뤄졌던 미국 금융산업의 ‘종형 구조’가 해체되고 소수의 초대형 은행들과 군소은행들로 양극화됐다. 월가에 ‘공룡과 개미’만 남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헤지펀드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월가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JP모건체이스, 씨티그룹의 ‘삼국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BOA의 메릴린치 인수로 촉발된 투자은행(IB)과 상업은행(CB)의 합병 바람은 JP모건체이스의 워싱턴뮤추얼(WaMu·와무) 인수와 씨티그룹의 와코비아 자산 매입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이 세 금융회사는 미국 금융권 전체 예금보유액의 31.3%를 보유하게 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30일 전했다. 인수 전 세 회사의 예금보유액은 전체의 21.4%였다. 신문은 “10년 이상 걸릴 기업 재편이 단 몇 주 만에 이뤄진 셈”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에는 7000여개의 은행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부실화돼 금융위기 여파가 오래갈 경우 합병 또는 도산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네티컷주 리지필드 FI컨설팅의 금융시장 전문가 찰스 웬델은 “앞으로 2년 사이에 1000개 이상의 회사가 인수·합병(M&A)이나 파산 등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미쓰비시UFJ금융그룹과 노무라홀딩스가 덩치를 키워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유럽계 금융기관들 사이에서도 HSBC와 바클레이즈 같은 초거대 공룡의 기업 흡수와 중간규모 기업들의 파산·합병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금융 소비자들에겐 별로 이롭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의 회생을 돕는다는 이유로 기존 규제의 한도를 넘어서면서까지 M&A를 허용하고 있다. 소수의 은행이 시장을 지배하면 소비자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 것이며, 수수료 인상을 비롯한 초대형 은행들의 횡포도 심해질 게 뻔하다.


‘대마불사’ 논리 또한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이미 월가에서는 “리먼 브라더스조차 구원을 받기엔 덩치가 작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 당국이 과감히 리먼 브라더스를 내치는 것을 본 금융회사들이 자구책으로라도 몸집 키우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금융기관뿐 아니라 헤지펀드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말까지 월가 헤지펀드 자본 4000억달러 이상이 풀려나와 펀드들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유명 펀드와 스타급 펀드매니저들 간에도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케네스 그리핀의 시타델투자그룹, 디나카르 싱의 TPG-액손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 한때 월가를 주름잡던 헤지펀드들이 몰락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올초 기준으로 월가에서 영업을 하는 헤지펀드는 1만개에 이르렀는데, 그 중 5분의 1은 올해 말이 되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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