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적
아시스 난디. 이옥순, 이정진 옮김. 창비
<플루리버스> 읽고 곶감 빼먹듯 하나하나 챙겨 읽은 책. 읽기는 젤 먼저 읽었는데 정리가 늦었다.
근대 식민주의는 군사적•기술적인 힘보다는 전통적인 사회질서와 배치되는 세속적인 위계질서를 창출하는 능력을 통해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새로운 질서는 다수에게, 특히 전통적인 사회에서 착취당하거나 궁지에 몰린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전망을 열어주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사회질서는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세계를 향한 첫걸음으로 보였고, 바로 거기에 식민주의의 심리적 유인이 있었다.
-14-15쪽
제3세계는 적어도 지난 여섯세대동안 두번째 식민주의를 해방의 방식으로 여기도록 교육받아왔다. 이 형태의 식민주의는 신체와 더불어 정신을 식민화했고, 식민화된 사회에서 문화적 우선순위를 영구히 바꾸는 힘을 발휘했다. 그 과정에서 근대 서구라는 개념을 지리적 시간적 실체에서 심리적인 범주로 일반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제 서구는 모 든 곳에, 즉 서구와 서구 바깥에, 사회구조와 인간의 정신 속에 존재한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제국 종식 이후에도 살아남은 식민주의에 있다.
-19쪽
오늘날은 어떤 하나의 비서구를 택하더라도 이미 그 모든 선택지 자체가 서구의 구성물일 수도 있다. 이 선택지들은 서구를 적대시하는 듯하지만 실상 서구라는 승자에 대한 경의의 형식들이다. 우리는 프란츠 파농의 서구에 대한 가장 맹렬한 비난이 싸르트르의 우아한 문체로 쓰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구는 근대 식민주의를 창안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주의에 대한 대부분의 해석도 만들어냈다.
-21쪽
그들은 여전히 보편주의라는 근대적 관념 바깥에 머무르던 전통적인 세계관 안에서, 서구를 적절하 게 다룰 수 있는 벡터로 전환해줄 범주와 개념, 심지어 정신의 방어기제를 확보해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은 희생자 측에서 구성한 서구개념, 즉 비서구 세계가 겪은 고통의 관점에서 비서구인들에게 이해되는 어떤 서구 개념이어야 했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개념들이 모두 양면적 (double entendre)이라고 간주하려 한다. 그것들은 한편으로는 식민주의 억압구조의 일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희생자들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서구는 단순히 제국주의적 세계관의 일부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고, 서구의 고전적 전통과 비판적 자아는 때때로 근대 서구에 대한 항의이기도 했다.
-23-24쪽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낀, 잘 속아 넘어가는 대책없는 식민주의의 희생자라는 인도인상을 거부한다. 평범한 인도인들은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원래 모습 그대로 그 나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의 방식은 아마도 식민주의에 대한 합당한 투쟁은 어떠해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들이 그 사실에 신경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의 두번째 글에서는 바부(babu, 교육받은 인도인, 또는 영어를 사용하는 인도인 하층관리)조차 나름의 역사적 역할을 인정받는다. 그들은 인도 사회 편에서 서구와 접촉한 후 서구를 가공했고 서구를 소화 가능한 알약의 형태로 요약했다. 이들 자아의 희극적 측면과 위험한 측면 모두 백인 사힙들로부터 인도 사회를 지켰다.
-26쪽
이렇게 따지면 모든 피식민 사회가 다 마찬가지 아닌가?
식민화의 정치경제학은 중요하다. 그러나 식민주 의의 조잡하고 아둔한 면모는 주로 심리 영역에서 표출되며, 식민통치하의 정신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변수들(variables) 자체가 정치심리학의 영역에서 정치화됐다. 이 글은 앞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에게 나타나는 식민주의의 주요한 심리적 면모를 탐구하고, 식민주의를 양자가 공유하는 공통의 문화로 규정하고자 한다.
식민주의는 어떤 사회에 외부 세력의 통치가 확립되면서 시작하지도 않으며, 그 세력이 식민지에서 철수한다고 끝나지도 않는 무언가다. 인도에서 만개한 영국 제국주의 이념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것은 식민주의적인 정치경제학이 작동하기 시작한 지 75년이 지나서였다.
식민주의는 식민주의자와 식민지인 모두의 사회적 의식의 이전 형태에 뿌리를 둔 심리상태다.
첫째, 식민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공유하는 규약들을 포함한다. 이 규약의 주요 기능은 양쪽 모두의 원래 문화적 우선순위를 바꾸어서, 마주한 두 문화에서 과거에는 열등하거나 종속적이라고 여겨진 하위문화를 식민주의 문화의 중심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문화적 우선순위의 확립 과정이야말로 가장 인상적인 식민주의체제가 왜 이념적으로 열린 정치제도와 자유주의 그리고 지적 다원주의를 표방한 사회에 의해 건설됐는지를 설명해준다.
-39~40쪽
보다 위험하고 영속적인 방식은 내적인 보상과 처벌, 즉 식민통치하의 고난과 복종에 기인하는 이차적인 심리적 이득 혹은 손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것은 식민주의가 그 희생자에게 가한 궁극적인 폭력을 인식한다는 것에 대한 내면적 저항감이다. 이때 궁극적 폭력이란 바로 식민주의가 식민지인들이 끊임없이 지배자들이 설정한 심리적 한계 내에서 그들과 투쟁하게끔 유혹하는 문화를 창안해냈다는 것이다.
영국이 식민주의로 무장하고 인도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인도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되고 영국과 영국인 스스로 식민주의에 갇혔다는 해석.
인도에서 영국문화는 아직 정치적으로 지배적이지 않았고 인종에 기반한 진화론도 지배문화에서 이때까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인도에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인도 의상을 입고 인도의 풍속과 종교 관행을 따르는 등 집이나 일터에서 모두 인도인처럼 생활했다. 1830년대 말까지도 영국에서 제국이라는 관념은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곧 영국 중간계급의 복음주의적 정신이 만개하고 이어서 영국과 인도 양쪽에서 새로운 정치문화가 영국의 지배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본격적인 식민주의가 출범했다고 말할 수 있다.
-44-45쪽
<아동의 탄생>과 식민주의.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식민주의가 스페인과 뽀르뚜갈에서 중요한 문화적 과정이자 삶의 방식으로서 굳어지게 된 식민주의의 첫번째 국면때 서구에서 발생한 주요한 문화적 재구성과 병행하여 성장했다. 아리에스는 근대적인 아동개념이 17세기 유럽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아동은 점차 성인이 도덕적인 규범을 써넣어야 하는 텅 빈 판으로 여겨지게 됐다. 식민주의는 이러한 성장과 발전의 개념을 충실하게 받아들여서 원시성과 아동 사이에 새로운 유비를 확립했다.
그리하여 사회진보에 관한 이론은 유럽에서는 한 개인의 생애주기에, 식민지에서는 문화적인 차이의 영역에 포개지게 됐다.
-55-56쪽
번역자의 고유명사 경음 표기는 매우 이상함. 뽀르뚜갈이 현지어 발음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스페인도 에스빠냐라고 써줘야지…
식민주의에 대한 인도 지식인들의 반응, 대항과 변용에 대한 얘기들은 내게는 너무나 생소하지만 설명만으로도 좀 재미있었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인도의 두 가지 남성성.
정신적이고 자기를 부정하는 금욕주의자 브라만은 보다 공격적이고 '성적으로 왕성하고' 활동적인 크샤트리아에 대비되는 전통적인 남성성이었다. 근대적 관점에서는 매우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후자는 우주의 여성적 원칙을 대변했다. 그런 관점은 과거의 인도가 삶의 한 방식인 크샤트리아적 특성에 제약을 가하던 수단이었다.
-50쪽
뱅킴찬드라 차터르지(Bankimchandra Chatterjee, 1838~94)는 기독교인들을 강하게 한 것처럼 보이는 자질들을 힌두교의 과거, 즉 잃어버린 힌두교의 황금시대에 투사하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틀을 제시했다.
그가 창조한 크리슈나는 온화하고 천진하며 자기 모순적이고 때로는 도덕을 어기는 존재로서 자신을 숭배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일상에서 어울리며, 가끔씩만 위대한 신들과 함께 악행을 벌주는 등 활동적이고 생산적으로 변모하는 신은 아니었다. 그의 크리슈나는 본격 종교로서 힌두교의 영광을 수호하고 힌두교를 내적으로 일관성있는 도덕적• 문화적인 체계로 유지할 수 있는 점잖고 정의로우며 교훈적인 '강건한‘ 신이었다. 뱅김찬드라의 목표는 크리슈나를 진보적인 서구인이 보기에도 그 숭배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정상적인 남성 신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70쪽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간디라는 인물.
타락한 서구 문화에 대한 가장 창의적인 대응은 의당 그렇듯이 서구 문화에 의한 희생자로부터 나왔다. 식민지 인도는 여전히 고유의 양성적 우주론과 그 표현 양식을 다소간 보존하고 있었고, 결국 간디라는 인물을 통해 식민주의의 과잉, 남성적인 세계관에 대한 문화를 초월한 저항 방식을 내놓았다.
비록 비서구인이었지만 간디는 항상 ‘다른 서구’의 살아있는 상징이 되려 노력했다. 간디는 승리한 주인의 지위와 제국의 책무 사이에 낀 영국 문화의 근본적인 곤경을 감지하고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영국인들을 식민주의의 역사와 심리에서 해방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109쪽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간디는 비폭력이라는 발상을 인도 경전이 아니라 기독교의 산상수훈에서 빌려왔다. 간디 이전 150여 년의 식민통치 기간에 비폭력을 힌두교나 인도의 가장 핵심적인 덕목으로 생각 내세웠던 정치지도자나 사회개혁가는 없었다.
-113쪽
아시스 난디의 설명을 들으니, 굳이 영국 총독에게 가죽신을 만들어주는, 나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들렸던 간디의 행동들이 조금은 해석되는 것 같기도.
간디의 두번째 배열은 차례대로 남아공과 인도에서 전 개된 반제국주의 운동, 특히 그 방법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 동원됐다.
나리트와 〉 푸루샤트와 > 카푸루샤트와(kapurusatra, 용기 없음)
즉 여성성의 본질이 남성성의 본질보다 우월하며, 이어서 남성성의 본질은 비겁함 혹은 (산스크리트어로 표현한다면) 실패한 남성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여성해방운 동이 시작되기 거의 50년 전에 간디가 그토록 반복해서 강조했던 나리트와라는 개념은 여성성에 대한 서구의 지배적인 정의를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거기에는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힘과 행동주의와 더 긴밀히 엮여 있으며 우주의 여성적 원칙이 남성적 원칙보다 더 강하고 위험 하며 통제가 어렵다는, 여성성에 대한 인도의 전통적인 믿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성 개념에서 더욱 중심적이었던 것은 부부관계보다 모성을 우위에 두는 전통적인 인도의 믿음이었다.
-117쪽
이렇게만 적어 놓으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같네. 책에는 저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조금은 상세한 설명이 나오지만 이것만 읽고서 이해하기는 좀 힘들다.
아동기와 정치적 종속 간의 식민주의적 상동 관계에 대한 간디의 응답은 간접적이었다. 그는 역사를 거부하고 역사적 연대기에 대한 신화의 우월성을 확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식민지 사회에 강요한) 원시성에서 근대성으로, 정치적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나아가는 단선적 인 경로를 우회했다.
간디와 접촉한 서구인과 서구화된 인도인들 모두는 최소한 한번은 간디의 어린애 같은 미소에 대해 언급했으며, 그의 추종자들과 비난자들은 각각 간디를 순진무구하거나childlike, 유치하다고childish 보았다. 간디의 ‘유아적인' 고집과 장난치길 좋아하는 습성, 근대 세계와 그 장치들에 대한 '미성숙한' 공격, 그의 '어린애 같은' 음식 취향과 물레 같은 상징들은 모두 성숙에 관한 관습적 인 관념들에 저항하는 정치적 발판으로 간주됐다.
-121쪽
역사를 단선적인 과정으로 보는 서구와 달리 순환적으로 보았던 간디.
“간디는 현재를 수정하거나 재확증하는 한 가능한 수단으로서 과거를 개념화해온 인도문화의 산물이었다.”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후반부의 주인공은 키플링.
“키플링은 인도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인도적인 환경에서 인도인 하인들에 의해 키워졌다. 그는 힌두스타니어로 생각하고 느끼고 꿈을 꾸었고, 주로 인도인들과 이야기했으며, 심지어 생김새도 인도 소년 같았다.”
“인도어와 인도의 동식물군, 60만여 촌락에 흩어져 사는 인도인에 대한 키플링의 예민한 감수성에 필적할 비인도인 영국 작가는 없었다. 일생동안 그에게 인도 농민은 사랑스런 아동 같은 존재로 남았다.”
-135쪽
스리 오로빈도 얘기(169쪽~)도 한참 나옴. 비틀린 식민지의 서양인이 키플링이라면, 스리 오로빈도는 키플링의 인도 쪽 ’심리적 더블‘이다.
비뚤어진 이방인 키플링이 자아분열을 거쳐 ‘백인의 짐’을 예찬하기까지…. 유년기에 학대당한 것은 키플링 개인의 사정인 거고. 난디는 키플링을 언급하며 영국인들이 식민주의에 빠져 스스로 병들고 비뚤어진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식민주의에 역으로 습격당한 서양을 이야기하는데 솔까말 가해자들 걱정해주는 모양새는 간디나 똑같아 보인다.
이것은 인도인들의 공통된 특징인가? 그렇게 당하고서 가해자들에게 역지사지하는. 아시스 난디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억압자의 고통과 타락은 ‘역사'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여야 할 책임을 진 희생자에 의해 한번은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식적 구분의 실패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통속적인 근대의 대립항들이 언제나 진정한 대립관계로 맺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일 수도 있었다.
금세기의 역사는 진정한 대립항은 항상 배타적인 부분 대 포괄적인 전체 간에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남성성 대 여성성이 아니라 그 어느 한쪽 대 양성성간에, 과거 대 현재가 아니라 그 어느 한쪽 대 초시간성 간에, 억압자 대 피억압자가 아니라 그들 양자 대 (그들 모두를 공동의 희생자로 만드는) 합리성 간에 대립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189쪽
간디는 식민주의가 도덕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기독교적인 가치로 식민주의를 평가하고 그것을 절대악으로 선언하면서 키플링의 본거지에서 승리했다. 두번째로, 간디는 부분적으로 식민주의의 손익에 대한 그 나름의 '독특한' 인식과 계산에 근거해 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개진했고, 영국이 윤리와 합리성 모두를 결여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간디는 그렇게 모든 키플링들과 유사 키플링들의 내밀한 상처를 열어보임으로써 지배문화의 내적 정당성을 위협했다.
-191쪽
소금행진에 관한 당대 글의 인용 부분.
참가자들은 완벽한 약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통해 힘을 얻는 법을 배웠다. 간디는 사전에 '존중하는 친구'인 인도 총독 어윈 경에게 편지를 보내 법을 위반하려는 자 신의 의도를 알렸다. (…)
허리만 가린 옷을 입은 채 각양각색의 노동자 78명과
바닷가로 행진하는 간디의 모습은 1930년에도 시대착오적으로 보였지만, 그런 외양은 기만적인 것이었다. 그 행진은 인도와 세계의 시선을 잔인한 3월의 태양 아래 터벅터벅 걷는 61살의 허약한 노인에게 고정시킬 만큼 충분한 시간 동안 계속됐다. “소금행진을 통해 그는 뉴스릴과 다큐멘터리의 세계에 완벽하게 진입했다. 그 이래로 우리는 깜빡거리는 흑백화면을 통해, 움직이는 간디의 선명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의 모습은 기이하나 진실이 드러나는 어떤 순간 찰리 채플린을 닮았다"(애쉬Ashe)
간디가 행진하며 지나간 뒤에는 ”390여개 촌락의 행정 책임자가 사임하면서 행정체계가 소리 없이 무너졌다". (애쉬)
뉴스가 전세계로 타전됐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인도 전역이 혼돈에 빠져들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인도 곳곳에서 소금을 준비했다. 대규모 시위가 모든 대도시에서 열렸다. 얼굴을 가린 여성들도 거리 시위에 참가했다.
영국 정부는 마치 자동기계처럼 맹목적이고 일관성 없는 폭력으로 대응했다. 약 6만 명에서 10만명에 이르는 비폭력 시위 참가자들이 감옥에 갇혔다. 간디는 단디 부근의 천막에서 잠을 자던 중 한밤 중에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됐다. 8개월 후 석방된 간디는 간디-어윈 협정을 맺었다. 그 이후로 식민지 정부는 억압적인 조치들을 포기하고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199-200쪽
인도는 "항시 동양과 서양을 막론해서 외부자가 침투하 기 어려운 분리된 세계였다". (인도를 향한 타문화의) 자기 투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해석 대상이 아니라 해석 주체다. 그리하여 인도에 대한 모든 해석은 궁극적으로는 자전적이다.
-160쪽
키플링을 정신적으로 계승한 인도인들은 서구의 방식으로 서구를 꺾고자 했던 일본처럼 신념에 찬 서구의 대항자도, 표면적으로는 서구에 적대적이지만 성취•조직력•도구적 합리성 같은 핵심 가치들을 서구와 공유하는 유교적 중국 같은 명백한 동양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서구의 문명적 규범을 충족하는 존재도 아니었으며, 명백하게 고귀한 야만인도 아니었다. 이 새로운 크샤트리아의 문화적 이상은 강인한 세속주의에 의해 뒷받침되는 강건한 인도 국가였다.
그런 인도상에 대한 반발로 어떤 이들은 정신적인 인도를 '진정한 인도'와 동일시했다. 그들은 인도가 근대 서구의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전지구적인 의식의 축을 담당한다고 보았다.
한 사회는 항상 물질주의와 정신주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혹시 그러한 선택에 대한 생각 자체가 키플링이 신봉한 제국주의 사명의 산물은 아닌가?
-161쪽
인도의 특수성도 얘기하는데, 세상에 특수하지 않은 집단/정체성이 있나? 집단이 100개면 100가지로 특수하고, 100만 개면 100만 가지로 특수한 거지.
일본과 중국에 대한 판에 박힌 설명도… ㅋㅋㅋ
하지만 아래 문장은 재미있다.
나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주술사로 간주해 한곳에 불러모은 15세기 아스떽 사제들에 대해 이반 일리 치가 들려준 일화를 기억한다. 그들은 기독교 식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 만약 아스떽의 신들이 죽었다면 자신들 또한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이 최후의 저항 후에 사제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스페인 전사들에게 희생됐다.
나는 동일한 상황 아래 놓인 브라만 사제들이 어떻게 행동했을지 알 것 같다. 아마도 모두 기독교를 받아들일 것이고, 몇몇은 이방의 지배자와 그들의 신을 칭송하는 우아한 찬가를 지었을 것이다. 그들이 하룻밤 사이에 훌륭한 기독교인이 됐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힌두교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믿는 기독교는 조금 지나면 위험할 정도로 힌두교의 한 형태로 보였을 공산이 매우 크다.
아파다르마(apaddharma)의 원칙, 즉 위험한 상황하에서의 삶의 방식과 모든 존재는 하나라는 원칙에 따라 브라만들은 이방의 신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자신들의 문화와 과거를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완벽하게 정당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서구화처럼 보이는 것은 때때로 서구를 희극적이고 사소한 상태로 격하함으로써 그저 서구를 길들이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203-204쪽
책은 1983년에 쓰였고 한국어판은 2009년에 나와서 ‘출간 25년‘을 맞은 저자의 후기가 뒤에 붙어 있다.
대다수 남반구 국가들, 특히 국민국가라는 19세기적인 관념의 마지막 두 보루인 중국과 인도는 이제 과거 자신들의 종속과 굴욕의 역사와 동일시되는 자아의 파편들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이들 두 국가는 한때 자신을 지 배했고 굴욕을 안겼던 사회를 모델로 삼아 역사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합류했다. 그들은 그렇게 또다른 일본이 되길 바란다.
그 결과 이제 한 문화에 대한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데,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의 중산층은 세계화됐고 그 규모 또한 상당히 커진 데다가 그들은 발전이 참여민주주의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남반구의 사람들은 더이상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같은 병으로 죽기를 바라지 않고, 대신 암과 심혈관 질병, 그리고 그밖의 과잉 소비에서 비롯되는 병으로 죽기를 원한다.
-224-225쪽
그렇다고 과거가, 다양성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인도문화는 어떤 다른 문화의 열성적인 측면들을 맡아서 관리하는 별난 경향이 있다. 빅토리아적이거나 에드워드적인 영국은 영국보다 인도에서 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슬람이 도입되기 전후의 페르시아도 모두 인도에 보존되어 있는데, 오늘날 페르시아의 유산은 여러모로 이란에서보다 인도에서 더 안락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슬람의 가장 창조적이고 인간적인 측면들 또한 남아시아에서 번성하고 있다. 물론 스딸린주의자도 러시아보다 인도에 더 많다. 인도는 패배한 지식체계와 실패한 정치적 대의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는 경향이 있기에, 세계의 문화적 유전자 은행 노릇을 하게끔 되어 있었다.
이는 대안적 비전에 이념적으로 헌신한 도전적인 개인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타임머신에 갇힌 듯한, 수많은 인도의 소문화들이 어찌어찌 살아남았고,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자기를 내세우거나 딱히 그렇게 한다는 의 식도 없이 좋은 사회에 대한 대안적 비전의 조각들을 대변하고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양성에 익 숙해졌고, 다양성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이런 사정은 마하라슈트라에 살던 부르봉 왕가 일파의 경우와 어느 정도 흡사하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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