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베리 Nanberry
재키 프렌치. 김인 옮김. 내인생의책
어쩌다 보니 호주 원주민의 절멸에 대한 책을 또 읽게 됐다. 오래 전 읽었던 <독수리의 눈>은 '멸종'을 당하게 된 원주민 소년의 이야기였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토끼 울타리>는 이른바 '잃어버린 아이들' 즉 백인 이주민들의 '동화정책' 때문에 부모 곁을 떠나 강제로 백인들 손에서 자라게 된 아이들의 탈출기였다.
<난베리>는 좀 다르다. 난베리라는 이름의 원주민 소년이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천연두로 가족을 잃고 백인 의사에게 구조된다. 백인 의사는 난베리를 치료하고, 자기 아들로 입양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잉글랜드인'처럼 키운다. 그 속에서 난베리가 겪는 혼란과 정체성 고민 같은 것들이 소설의 한 축이다.
또 다른 축은 '백인들'이다. 이전의 백인들이 침략자, 멸종을 불러온 적들이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백인들은 그들 자신 또한 시대의 모순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의사이자 박물학자이자 영국의 신사 출신인 의사는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오지에서 한없는 야만을 본다. 그것은 백인들이 흔히 갖는 '원주민=야만'의 등식에서 나온 야만이 아니라, 죄수 출신 백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야만이다. 무식하고, 더럽고, 질병에 시달리고, 술에 쩔어 있는, 영국에서 오지로 밀려난 자들의 야만.
책에 등장하는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고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난베리가 아니라 의사의 가정부인 레이첼이라는 여성이다. 주인집 물건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은 레이첼은 영국이라는 문명사회의 야만을 뼛속 깊이 체험한 사람이다. 레이첼은 오지로 귀양 와서 인간다운 삶을 되찾지만 '정착'하고 '성공'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귀족이고 신사인 의사가 보여주는 선의와 그 한계, 백인들이 갖고 있는 선의와 그 한계. 그 사이 어딘가에 다행히 운이 좋았던 레이첼이 있었다.
난베리와 의사, 레이첼을 비롯해 중요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존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호주와 영국의 문헌들을 뒤지고,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소설을 썼다. 책 자체가 엄청 재미있다.
저자가 그려낸 백인 이주민과 원주민들의 관계는 다면적이다. 어느 한쪽이 무조건 착하고 고상하고 한쪽은 야만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쪽이 무조건 야만적인 침략자인데 한쪽은 당하고만 있다가 절멸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실은? 세상 모든 관계가 다면적이라지만 그래도 역사적 실체라는 게 있다. 백인들은 침략해서 원주민들을 '거의' 절멸시켰다. 그것이 지배적인 실체인데, 그 사이의 틈새에서 보이는 다면성을 돋보기로 들여다본 것은 책의 장점이자 부인할 수 있는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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