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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의 눈
론 버니 (지은이) | 심우진(그림) | 지혜연 (옮긴이) | 우리교육 | 2000-09-25
론 버니 (지은이) | 심우진(그림) | 지혜연 (옮긴이) | 우리교육 | 2000-09-25
호주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계기를 굳이 찾으라면 한 장의 그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백인 정복자들이 원주민을 사냥하는 그림을 책에서 본 일이 있다. 말을 탄 백인들이 총과 창을 들고, 도망치는 원주민들을 사냥하는 그림. '독수리의 눈'은, 내가 그림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면을 글로 써놓은 동화다.
동화라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의 페어리 테일은 절대 아니다. 사촌지간인 소년과 소녀는, 가족들이 백인들에게 몰살당한 뒤 다른 부족에게 의탁을 하지만 역시나 도망쳐야 하는 신세.
나는 소년과 소녀가 '어디론가' 도망을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동화'이니까, 분명 어디론가 도망을 쳐서 오래오래는 아닐지언정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착한 백인'과의 화해 따위를 설파할 것으로 믿었다. 물론 그랬다면 나는 아마 작가를 욕했을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어설픈 화해 따위를 주장하지 말라고.
그런데 이 책에서, 소년과 소녀는 끝까지 안식처를 찾지 못한다. 그냥, 계속 도망칠 뿐이다. 가뭄 속에 굶어죽을뻔한 위기를 넘기면서, 백인들을 피해 달아나는 것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책은, 동화라는 외피를 쓰고서 원주민들의 '역사'를 얘기하려 한다. 그 역사의 내용은 너무나 단순하다. 백인들은 원주민을 짐승처럼 '사냥'했고, 원주민들은 희생됐다. 백인들이 원주민의 문화를 몰살하기 위해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떼어내와 따로 격리시켰다든가 하는 따위의 '고도의 식민전략'은 훗날의 일일 뿐이다.
환경운동가들이 종종 인용하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땅도 이 하늘도 우리가 숨쉬는 공기도 모두 있는 그대로의 것들이지 나의 땅이 아닌데 그것을 어떻게 팔고 사고 할 수가 있느냐고. 물론 인디언들의 외침은 백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연설문은 자연과 하나되는 마음을 가진 선량한 인간의 목소리였고,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아름다웠다.
나는 결말이 궁금하다. 시애틀 추장은 그 연설 뒤에 어떻게 됐을까. 인디언 '보호구역'에 격리되어 비참한 말년을 보냈을까, 아니면 '서부개척'에 나선 '카우보이'의 총탄에 숨졌을까.
독수리의 눈을 가진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넓디넓은 호주라는 땅에서 백인들을 피해 맨발로 도망치던 소년은, 어딘가 숨어살 구석을 찾았을까, 아니면 결국에는 백인들의 사냥감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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