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구정은의 세상] 평화상 뒤의 실력자(?), 노벨위원회의 토르뵤른 야글란트

딸기21 2018. 10. 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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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평화상은 드니 무퀘게나디아 무라드에게 돌아갔군요. 논란 많았던 근 10년의 수상자 선정에 비춰 보면, 올해에는 '받을 만한 사람' '줄곧 거론되던 사람'에게 줬다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 전쟁 중 성폭력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고요.

잘 알려진 대로,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대개 정하지만 유독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그렇게 됐다는데 (사실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지는 100년 밖에 안 됐어요;;) 왜 그렇게 정한 것인지는 노벨이 직접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의 명성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무언가 '공신력 있는 기관'이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서 수상자를 정할 것 같지만, 사실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학자들이나 이른바 '전문가'도 포함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나라의 '정치인'들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Thorbjørn Jagland is also one of the five members of the Norwegian Nobel Committee. Photo: Berit Roald / NTB scanpix



평화상 발표를 계기로, 최근 10년 넘게 수상자 선정에 큰 영향을 미쳐온 인물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토르뵤른 야글란트(Thorbjørn Jagland)라는 사람입니다. 2009년부터 노벨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있고, 임기가 2020년까지랍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위원장도 지냈고요. 


1950년생인 야글란트는 노르웨이 노동당 소속 정치인입니다.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사무총장도 2009년부터 맡고 있어요. 노르웨이, 그리고 유럽 안에서 활동하는 '국제주의 정치인'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경력을 보면 여러 모로 특이한(?) 구석이 많습니다. 야글란트는 오슬로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노동당 청년조직을 거쳐 일찍부터 정치에 뛰어들었죠. 노르웨이 총리를 지내기는 했는데... 1996년부터 1년 정도 단명에 그쳤습니다. 총리 시절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역대 최약체 총리"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러 차례 총리를 지낸 그로 브룬틀란트로부터 "얼간이" 소리까지 들었다고 하네요. 총리를 지낸 뒤에 2000~2001년 외교장관을 했는데, 그 때도 구설에 오를 만한 발언을 많이 해서 언론의 질타를 많이 받았습니다. 유럽평의회 의장이 됐고 2014년 연임에도 성공했으나 러시아의 푸틴과 친해서 비난을 좀 들었고요. 


2009년에는 노벨위원회를 이끌면서 집권 1년도 채 안 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해 세계를 어이 없게 했습니다. 오바마 노벨평화상은 이 상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가장 우스꽝스런 일'로 꼽히며 '스캔들'로까지 불리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2012년에는 유럽연합(EU)을 야글란트 스스로 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했답니다. 자기가 일하는 단체를 직접 추천하는 용기... 


야글란트는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 이민자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정책을 추진했을 때, "미국 대통령이 해선 안 될 짓만 한다"고 맹비난했습니다. 그것도 러시아 방문 중에. 실은 그 몇 년 전부터도 트럼프가 이슬라모포비아를 부추기는 것에 대해 누차 비판을 했었고요. 야글란트의 입김이 적지않은 이상, 노벨위원회가 트럼프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을 가능성은 애당초 적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위원인 헨리크 쉬세도 이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부터 “세계의 도덕적 기준을 떨어뜨린다”며 맹비난하는 등, 노벨위원회의 반트럼프 정서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못 받았다고 하면 쫌 억울. ㅋ 


미국 일각에선 벌써부터 내년의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에게는 내년에 노벨상을 받는 게 더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는 모양이네요. 한국에서 올 평화상에 대한 관심은 온통 문 대통령 수상 여부에 쏠렸습니다. 발표가 나온 뒤에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뭔가 좀 아쉽네요. '문프'가 못 받아서는 당연히 아니고요. -_-

남의 나라 전시 성폭력과 가해 행위를 비판하면서 우리 안의 문제는 여전히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긴 이야기는 <오버데어>를 읽고 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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