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대로 공부되는 책을 읽었다. 앤서니 D. 스미스, <민족의 인종적 기원>(이재석 옮김. 그린비).
재미있고 현란하고 풍부하다. 다 읽고 나니 어질어질. 복잡하고 엄밀한 내용을 학술적으로 꼼꼼히 짚어가면서, 일관된 구조로 짜맞춰가면서,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방대한 양의 사례와 정보를 퍼부어가며 적어놨으니 그럴 수밖에. 번역이 껄끄럽다 싶은 부분이 적지 않지만 원문이 아무래도 그렇지 싶다. 글쟁이의 책이라기보다는 학자의 글이고, 꼬이거나 모호한 문장을 얼추 넘겨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이만한 넓이와 깊이의 책을 읽는 데에 그 정도 수고는 감내할 수 있다. 생각보다는 다 읽는 데에 시간이 덜 걸렸다. 일주일. 이 정도면 쾌속 돌파한 셈이다.
책이 처음 나온 시기는 1986년.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와 에릭 홉스봄, 테렌스 레인저의 <만들어진 전통>이 출간된 것이 1983년이다. 큰 전쟁들 전후로부터 시작해 1940~60년대를 거치면서 옛 식민지 지역들의 '민족국가 수립'이 열풍처럼 진행되고 나서 학자들이 그 과정을 분석하느라 바빴던 시기였을 것같다.
서론 격인 1장의 제목이 '민족은 근대적인 것인가?'다. 그것이 저자의 첫번째 질문이다. 책은 민족 개념을 바라보는 시각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며 출발한다. 하나는 이름 붙이자면 '근대주의'다. 거기에는 세계체제론을 포함하여 시장경제의 발전과 민족의 탄생을 연결하는 근대주의가 있고, 제3세계의 탈식민 저항과 연결지은 도구론적 근대주의가 있다. 앞의 것은 (인쇄 등) 기술발전과 함께 지역/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민족 개념이 생겨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뒤의 것은 세계 곳곳에서 주민들을 만들어 통합하고 새 나라를 수립할 필요성을 느낀 지식인/지도자들이 민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또 하나는 근대주의와 대비되는 '원초주의'다. 이 또한 두 갈래로 나뉜다. 무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고 "민족은 자연적"이라고 보는 급진적 원초주의가 있는가 하면, '자연적'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더라도 "근대 세계에서 발견되는 단위와 감정이 인류 역사의 초기까지 추적될 수 있는 비슷한 단위와 감정을 보다 규모가 크고 효과적으로 해석한 것"(44쪽)이라 생각하는 영속주의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시 한번, 민족은 근대의 산물인가 아니면 원래 공동체는 끼리끼리 모여 남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추구하기 마련인가. 학자들끼리 설전을 벌였겠지만 진실은 그 두 가지 중간에, 혹은 두 가지가 섞인 채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국 학자인 스미스는 그 둘 사이를 이으면서 '인종적 민종'이라는 존재를 상정한다. 빌려온 개념을 빌려온 말로 이렇게 표현하면 감이 잘 오지 않는데, 저자가 쓴 영어 표현은 '에스니(ethnie)'다. 그는 '집단의 명칭, 가계의 공통된 신화, 공유하고 있는 역사, 뚜렷이 남과 구분되면서 공유되는 문화, 특정한 영역(장소)와의 결합, 연대의식'을 에스니의 6개 요소로 짚는다. (아래에서 에스니로 쓴 것은 모두 '인종적 민족'으로 번역표기된 것들을 내가 편의상 에스니로 바꿔 적은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민족성의 핵심은 그것이 신화, 기억, 가치, 상징의 네 가지 기둥 속에 그리고 특징적인 형식, 양식, 장르로서 역사적인 인구(번역을 '인구'로 해놨는데 '집단'으로 봐야할 듯)의 통합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신화-상징 복합체'가, 특히 신화원동기(mythomoteur) 혹은 인종적 민족의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신화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인종적 민족정체성의 특징을 파악하려면 어떤 인구를 통해 전파되고 미래 세대에 전수되는 메커니즘에서 신화-상징 복합체라고 요약한 신화와 상징, 역사적 기억과 중심적 가치의 형식과 내용의 본질을 봐야 한다. (51쪽)
민족성은 1)내부의 간극과 2)동화와 흡수라는 외부 압력에 직면해 점진적으로 묽어진다. 첫번째 경우, 인구변동은 문화변동보다 덜 중요하다. 치명적인 요소는 아랍의 정복 후 이뤄진 이집트의 이슬람화 기간 동안 발생했던 것과 같은 인구 대다수의 신화-상징 복합체와 신화원동기에서의 급격한 단절이다. 그러나 이란에서는 이슬람화 후에 그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두 번째 경우는 인구변동이 문화변동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민자가 물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전 거주자를 능가하면 초기에 비잔틴의 지배 아래 있다가 후에 로마화된 그리스에서처럼 고대의 신화-상징 복합체와 신화원동기를 급격히 파괴한다. (52쪽)
에스니가 영역을 물리적으로 소유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상징적인 중심, 신성한 본고장, '모국'을 갖는다는 것이고 성원들이 지구 곳곳에 이산해서 모국을 잃었을 때조차 그들은 계속 에스니가 된다. 10~13세기 중앙아시아로부터 아나톨리아로 이주한 터키인, 아라비아 반도를 떠나 먼 땅을 정복해 정주한 아랍인, 스칸디나비아의 피요르드를 떠나 프랑스 영국 시칠리아로 간 노르만인처럼 에스니가 모국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시적 상징적 성격이 일상적 특성보다 강한 힘을 갖는다. 꿈꾸는 땅은 실제 영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는 에스니의 세 가지 특성, 즉 1)신성의 중심 2)일군의 기념물, 그리고 3)영원한 인식에 의해 조명된다. 모국은 종교적, 인종적 의미에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중심지를 갖는다. 폴란드의 야스나 고라 검은 성모마리아 수도원, 메카의 카바(마스지드 알하람)처럼 성자나 신의 사원은 에스니와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이란의 쿰이나 마샤드, 아르메니아의 에치미아진 혹은 오늘날 북부 쿠르디스탄의 고대 우라르투의 신성한 도시인 무사시르는 에스니의 종교학습 사원, 교단, 혹은 학교다.... 에스니와 모국이 외부 힘에 의해 격리될 때에도 사람들과 영토의 결합 혹은 유대는 남는다. (74-75쪽)
에스니의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시기는 아주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종적 민족 공동체는 기원전 3000년 전 중동에서 처음 기록이 나타난 때인 적어도 초기 청동기시대부터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인류사회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연속적인 이주자들이 비옥한 강변지대에 정착함에 따라 선조의 신화, 기억, 종교와 언어를 갖는 에스니의 범주가 형성됐을 것이다. 기원전 3000년대 초기 최초의 도시국가 및 세습왕조의 등장과 국가 사이의 전쟁에서 지방적 수준 이상의 인종적 민족의식과 감정의 성장을 발견하며, 이는 특히 이집트와 수메르인 사이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3000년대 후반부터 이집트인과 수메르인뿐 아니라 엘람인, 암몬인, 쿠시인, 가나안인같은 핵심적인 에스니 공동체에 기반한 국가 계승이 중동 역사기록에 나타난 것은 확실하다. 이와 더불어 구티, 룰루비, 하라파가 기원전 2300~1700년 시기에 번성했다. 이 시기 정치체제와 에스니는 종종 일치하지는 않는다. 보다 흔한 패턴은 위협에 직면해 일시적으로 결합한 도시국가, 혹은 아프간과 중앙아시아로부터 인더스강 하구와 펀잡 지방으로 퍼져가서 하라파 문명의 검은 피부의 토착적인 다사족을 복속시켰던 기원전 2000년대 초 아리안족이 그랬던 것처럼, 영향력을 증대해 도시 혹은 지역을 지배하고자 한 부족연합이었다. (106쪽)
이런 틀 속에서 스미스는 에스니의 요소들(2장 인종적 민족 공동체의 토대, 3장 역사상의 인종적 민족과 민족성 중시주의), 에스니가 구성되는 과정(4장 농경사회의 계급과 인종적 민족, 5장 인종적 민족의 생존과 소멸)을 짚는다.
에스니 시절의 의식을 그는 민족주의와 대비시켜 민족성 중시주의(ethnicism)라 부른다. (근대 이후의) 민족주의와 똑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미 에스니 시절부터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과 내부의 부식에 저항하고, 공동체의 형식과 전통을 쇄신하며, 분열된 공동체의 성원과 재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적 운동"이 있었고, 이런 노력에는 "공동체 문화의 특성과 영토를 회복하려는 중요하고도 명백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다. 에스니시즘은 근대 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흐름이 교차할 때 특히 후진사회가 보다 발전된 사회의 충격을 통해 사회문화적 변동에 노출되는 곳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된다"(117쪽)는 것이다.
저자는 근대 이전의 에스니시즘을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1) 영토회복운동은 가장 직접적인 것으로, 이미 기원전 3000년대 말 우루크의 도시국가 수메르가 산악부족 구티의 지배에 총력 저항을 했던 것, 기원전 16세기 중반 이집트에서 쿠시의 패배와 힉소스의 추방, 1610년 러시아 영토를 회복하려고 한 포자르스키와 미닌의 운동, 1429년 프랑스의 부르군디 추방운동, 9~10세기 카탈루냐 회복운동 등을 들 수 있다.
2) 계보회복운동은 에스니의 정통성과 계보의 정통성이 섞여들어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화와 관습을 부활시킨 바빌론의 찬탈자 나보니두스의 사례, 이집트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솔로몬의 유산을 주장한 1270년 에티오피아 왕조의 회복 같은 것들이 그런 예다.
3) 문화적 쇄신운동도 역사가 오래됐다. 18왕조에서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이 세워진 것, 사산조에서 페르시아 사조가 부활하고 조로아스터로의 복귀를 추구한 것 등등.
구티인에 대항해 기원전 3000년대 말 우루크가 이끈 영토적 저항운동은 신수메르국의 광범위한 문화쇄신운동이 되었다. 그것은 우르 3왕조(기원전 2113-2006)에 의해 지도됐는데 범수메르의 르네상스가 되었다. 왕조의 건설자 우르남무의 지도 아래 상업은 회복되고 운하가 건설됐으며 관개가 재건됐다. 도시의 담 벽을 다시 쌓았으며 인상적인 일련의 지구라트가 우르, 우루크, 에리두, 니푸르에 세워졌는데 아마도 인간과 신 사이의 가교를 상징하려는 것이었겠으나, 분명한 것은 제국적인 수메르 왕조의 광휘를 상징한 것이었다. 우르남무의 계승자들 아래서 제국은 확장돼 중부 티그리스강 지역을 포함했고 우르 3왕조가 소멸한 후 오래도록 수메르 문화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넘어 퍼졌다. 이 시기에 오래된 수메르의 신화와 의식이 재가동됐고 범수메르 감정이 상류계층에 스며들어 그 종교문화를 보전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125-126쪽)
음... 관심 가진 부분이라 지구라트 대목을 옮겨놨는데, 이렇게 놓고 보면 인류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에스니 의식의 형성과정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저자는 이집트와 이란, 비옥한 초승달 지역과 중부 유럽, 영국 사례를 주로 많이 언급한다. 더불어 유대인과 아르메니아도 자주 등장한다(저자가 이 책을 썼을 때는 소련 붕괴 이전이고, 아직 아르메니아라는 독립국가가 출현하기 전이었다).
(유대인과) 유사한 신학적, 지리공동체적 신화원동기가 또 다른 이산민족인 아르메니아인 사이에 출현했다. 그들은 산악지방 왕국과 조지아의 성지 에크미아드진(옮긴이가 에치미아진, 에크미아드진을 혼용했는데 에치미아진으로 써야할듯;)에 강하게 계속 집착했다. 유대인에게서처럼 이산 아르메니아인에게 황금시대는 성지의 먼 과거에, 즉 그레고리와 나르시스 그리고 그레고리 교회의 시대에 있었다. (149쪽)
스미스에 따르면 에스니들은 유사 이래로 어느 시기부터인가 존재했고, 거기에 근대의 무엇인가가 색칠되면서 네이션(nation)으로 나아갔고, 그 과정에서 에스니들은 과거의 신화와 전통과 상징들을 발견하고 재구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때론 종교가 큰 역할을 했다. '정교의 저장소'로 남은 조지아-아르메니아의 신앙공동체, 아랍의 인종적 민족정체성 인식을 공동시킨 신자들의 공동체라는 개념, 가톨릭의 수도승적인 신화-종교 복합체를 발달시킨 아일랜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뒤 정교와 더욱 결합한 비잔틴의 그리스 공동체, 비잔틴의 계승자를 자쳐하고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이반 3세를 제2의 콘스탄티누스로 생각"한 러시아가 그런 예다.
저자는 "왕조적인 것, 공동체-정치적인 것, 공동체-종교적인 세 가지 유형의 신화원동기 가운데 맨 마지막 것이 의심할 나위 없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한다(155쪽). 근대 이후 식민지/탈식민지의 민족주의를 분석할 때에 '민족해방투쟁'의 도구적 관점에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면, 스미스의 이런 분석은 21세기의 종교적 저항/쇄신/복고 흐름을 분석하는 데에 시사점을 더 많이 던져주는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고대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에스니 혹은 에스니 의식은 어떻게 옆으로, 아래로 확장됐을까. 이 부분에서 스미스는 수평적-귀족적인 형태와 수직적-민중적인 형태를 나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평적-수직적이라는 개념과 다소 거리가 있는 탓에 어휘와 개념이 단번에 딱 들어오지는 않는데, 말하자면 전자는 '지배계급끼리의 공감대'이고 후자는 '민초들의 공동체 의식'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에스니를 논할 때, 분명 계급 간의 단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만화책에서나 보던 -_- 히타이트는 이 책에 수시로 등장한다. 윗층만의 공동체가 거대한 제국으로 확대되면서 아래로 스며들지 못했을 때 순식간에 생명력을 잃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가는' 사례로 저자는 히타이트를 거론한다.
이 전사귀족은 기원전 2000년대 초기 북으로부터 아나톨리아 고원지대로 침투해서 기원전 1750년경 토착 농민인 하티족과 카네슈(Kanesh인데 역자가 카네시트로 그냥 옮김) 주민을 지배하는 봉건귀족 국가연합인 구 히타이트 왕국을 세웠다. 종속민들은 히타이트 전체 공동체를 의미하는 판쿠시(귀족, 왕실, 사제)에서 배제됐다.
...히타이트 왕국은 점점 남쪽과 동쪽으로 확장해서 기원전 1595년에 바빌론을 기습했다. 이 인도-유럽어계의 전사귀족들은 18왕조 이래의 이집트 신왕조와 더불어 3세기 동안 중동 정치를 지배했다.
히타이트는 종속민 혹은 종속된 도시국가가 조약을 통해 대군주와 연결되지만 정복된 주민의 다른 종교와 문화는 그대로 두는 '정복 봉건제'를 창설했다. 그들은 산악지방에 '폭풍의 신'을 융합시키고 이웃한 인도-유럽어계 후르리인으로부터 사원, 의식, 사제와 모든 양식의 신격을 빌려온 반면 수도 하투사 근처 야질리카야에 있는 중앙의 노천사원에 매달렸다. 히타이트는 귀족적 에스니의 장점과 결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제국의 붕괴 이후 오랫동안 생존하지 못했다. (178-180쪽)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 여러번 언급한 것은 숱한 침략과 정복과 외부로부터의 문화적/종교적 유입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살아남은 이란의 에스니, 그리고 수평적-수직적 모든 면에서 세계에 비슷한 예가 없을 정도로 꿋꿋하게 하나의 정체성과 체제 속에 위아래가 똘똘 뭉쳤던 이집트(나일강의 축복;;)같은 곳들이다.
책의 뒤쪽 절반은 에스니가 민족으로 전환되는 과정(6장 민족의 형성, 7장 인종적 민족에서 민족으로), 여기에 '과거'가 결합된 방식(8장 전설과 풍경)을 다룬다.
왜 '민족'은 인류의 열망을 구현하게 됐는가? 수세기 동안 지위와 몫에 만족해왔던 많은 에스니들이 지금 왜 민족이 돼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가? ...민족의 지위로 이행하는 기원은 모호성에 싸여 있다. 원칙적으로(번역 이상함;;) 그 기원은 후에 영국과 프랑스로 알려지게 된 영토의 색슨과 프랑크에 의한 중세 초기의 점진적 통합에까지 소급될 수 있다. 유사하게 2000년대 초반에(20세기 초반의 오기 아닐까;;) 통일된 스페인, 스웨덴, 폴란드 사람들의 국가성장과 그 파도 속에 등장하는 러시아, 헝가리, 홀란드(네덜란드;;)를 지적할 수 있다.
... 민족 혹은 합리적인(??) 국가가 등장할 필연적인 그 무엇은 결코 없었다. 국가형성을 바람직하게(??) 만든 것은 서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세 유형의 혁명의 충격이었다. 분업 분야에서의 혁명, 행정통제에서의 혁명, 그리고 문화적 협동에서의 혁명이다. (277쪽)
스미스는 에스니를 민족으로 변모시킨, 유럽에서 시작된 '세 개의 혁명'을 이야기한다. 첫번째 혁명은 흔히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 부르는 혁명이고, 종속이론 식으로 말하자면 '심장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의 주변부들이 포섭돼 들어간 과정이었다. 세계 경제가 특정 국가들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그 결절국가들 내부에서부터 국가의 힘이 커졌고 '민족주의적 통합정책'이 펼쳐졌다. "이런 경제적 혁명과 밀접하게 교직을 이룬 것은 장관이라 할 정도로 놀랄 만큼 변화한 군사적, 행정적 통제방법이었다"(279쪽). "기술전문가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관료국가의 등장은 프랑스, 영국, 스페인, 그리고 후에 프러시아, 스웨덴, 러시아에서 15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일어난 점진적인 과정"이었다(280쪽).
끝으로 문화와 교육에서의 혁명을 통해 "교회의 권위와 전통은 주권국가 자체"로 대체됐고 새로운 사제계급이라 할 인텔리겐챠들이 등장했으며 베네딕트 앤더슨이 얘기했듯 이것이 문화 표준화와 인쇄술 등과 결합되면서 네이션의 등장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282쪽).
이 과정에서 대중이 주체로 부상했다. '포용'과 '동원'을 통해 정치적 하층민은 '시민'이 됐고 에스니는 정치적 존재가 됐다.
"하위계층 심지어 농민의 정치적 동원은 민족 창조의 도정에 필수 요소가 됐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중간계급과 농민의 외양을 변화시켜, 정치적 최하층민을 동원된 시민으로 변화시켰다. 이전의 수동적인 객체를 시민과 역사의 주체로 동원하는 것은 역으로 권력에 대한 태도를 필요로 했다. 공동체의 성원이 문화를 보전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329쪽). 그래서 에스니들은 정치 영역에로 진입해야 했고 "민족성의 정치화가 불가피해졌다. 일단 진입하면 에스니가 정치 영역에서 스스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근대에서 에스니는 정치화돼야 하고 정치 영역에 남아 있어야 하며, 스스로 완전한 민족이 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민족의 지위에로 나가도록 해야만 한다." (330쪽)
새로운 상상은 민족을 동질적인 개인의 무리로 그린다. 개인은 일반화되고 동등한 사람 혹은 '시민'이며 개인의 관계는 몰인격적이지만 형제적인 우애가 있다. 민족에서 개인은 본질적으로 대체가능하다. ... 민족공동체의 부분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드라마 속에 들어 있고, '역사의 운동'인 사회진보에 잡혀 있는 동등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상에서 대중은 처음으로 구체적인 형식과 분명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들은 더이상 영웅이 구상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한 번 쓰고 버리는 군중이 아니다. 엘리트는 대중의 지지를 부탁해야 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새로운 비전은 민족에게 에스니가 소유하지 못했던 권력과 위신을 부여한다. (356-358쪽)
새로운 권력층 혹은 지식인들은 신화에서 샘을 길어올리고, 역사를 재발견하고 재해석에 물길을 만들고, 고고학같은 학문의 도구를 빌려와 '증거'를 만들고, 거기에 드라마와 영웅들을 결합시키면서 민족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과정이 한 '민족'에게서 단일하고 일관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19세기 그리스에서는 비잔틴과 헬레니즘 중 어느 쪽을 기원으로 삼을 것인가를 놓고 두 흐름이 나타났고, 인도에서는 카스트 상층부의 시민적 민족형성 모델이 실패로 돌아간 뒤 힌두교에 바탕을 둔 급진적 민족주의가 등장해 비로소 퍼져나갔다(309쪽). 나이지리아처럼 20세기 중후반까지도 민족국가의 형성을 놓고 고민을 겪는 나라들이 있었다.
나이지리아에는 세 개의 중요한 에스니와 한 무리의 작은 에스니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나이지리아 '민족'을 얘기할 수는 없다. 연대를 확보하고 시민종교를 창출할 유일한 길은 신화와 공동의 상징을 통하는 것인데 나이지리아가 갖는 난점은 그 지역의 과거에 희미하더라도 공통된 에스니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민족을 형성하려면 나이지리아는 에스니의 역사를 다시 쓰고 문화를 융합함으로써 에스니의 유대와 감정을 창안해야 할 것이다." (311쪽)
가나에서는 고대제국이 공동의 영광스런 정치적 과거를 제공했다. 자이르에서도 유사하게 모부투 정권은 정교한 자이르인의 민족종교를 공식화함으로써 (다양한 에스니들을) 전체적인 에스니로 결속시켰다. (312쪽)
아프리카 '신생국'들의 어려움은 엇비슷하지만 가나는 고대의 동명 제국으로부터 도구를 찾았고, 짐바브웨나 케냐는 일단제 국가를 지향하는 운동을 통해 '단 하나의 정치적 종교의 필요성'을 대신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쨌든 "신생국가의 엘리트들은 민족의 새로운 신화와 상징, 반식민주의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다(312쪽). 그 과정에서 '지배적인 에스니'가 권력을 불균등하게 쥐었을 때 분란의 소지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대안적 전략은 신화와 상징을 결합함으로써, 과거의 공통된 기원(식민주의, 인종차별)을 찾고 다른 민족주의들처럼 공통된 영웅의 기원과 시대를 창조함으로써, 영토국가 안에 다양한 에스니 전통으로부터 새로운 정치문화를 건설하는 것"(315쪽)이다. 하지만 다른 대안 혹은 흐름도 있다. 중부, 동부 유럽에서처럼 '영토적' '시민적' 모델로 이동해가는 것이다. 아타튀르크의 터키, 티토의 유고슬라비아가 그런 예다. 사람들의 정체성은 단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에스니로서의 의식과 근대적 시민권은 양립한다.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충성심이 알력을 일으키지 않을 때가 사실 대부분이다.
스미스가 이 책을 썼던 시기는 냉전의 체제경쟁이 민족주의를 억누르는 있었으나 동시에 민족주의가 계속 분출하던 시기, 민족은 영원한가, 현대 세계에서 민족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이며 민족주의가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를 놓고서도 논란이 많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정치와 국가형성을 정당화하는 원리는 민족주의다. 다른 어떤 원리도 인류의 충성을 명령하지 못한다. 연합조차도 항상 민족연합이다"라고 단언한다. 독립국가의 지위를 요구하지는 않는 집단들이라 할지라도 에스니들은 "보다 큰 정치공동체 혹은 민족국가 안에서 영향력과 특권을 근대화하려고" 하며, "미국에서 백인 혹은 에스니의 파편, 미국에 있는 흑인과 푸에르토리코인"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75쪽).
종교의 영향력이 퇴색한(혹은 그렇게 보였던) 시기에도 소속감을 느끼려는 사람들의 욕구는 있고, 그걸 민족이라는 감정이 일면 채워준 것도 사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엘리트들은 신화와 역사를 총동원해 민족을 만들어갔으나 의문들은 남는다.
"그러나 과거는 정말로 그처럼 명료한 것인가? 우리는 하나의 단일하고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과거에 대면해 있는가 아니면 재구성해야 하는 복수의 과거에 대면해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갈망하는 과거는 현재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그려진 단순한 고안물인가?" (369쪽)
"민족주의는 하고싶은 대로 역사를 쓰는가? 아니면 그것이 기록하는 전통과 '과거'에 의해 구속을 받는가? 달리 말하면 과거는 충만한가 아니면 텅 비어 있는가?" (370쪽)
분명 역사를 발굴하고 해석하는 데에도 한계는 있고, 신화와 소재 자체에 내재적인 일관성과 함께 특징적인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 거기엔 패턴이 있다. 1)사회가 자연처럼 태어나 융성하고 쇠퇴했다 사라지고 다시 부활하는 흐름이 있어야 하고 2)과거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특유의 분위기와 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며 3)이를 구현해줄 영웅이 있어야 하고 4)아주 독특한 지형이나 반대로 아주 일상적이고 향수를 일으키는 산천같은 '풍경'이 있어야 한다.
수채화가들이 재발견한 영국의 목가적 풍경, 이집트인들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되살려준 파라오의 피라미드와 사원, 그리스인들을 업시킨 고대의 찬란한 문명, 영토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도구가 돼준 이스라엘의 고고학, 시아파 이란의 구심점이 된 성스런 도시 쿰, 뒤늦게 탄생한 나라에 역사를 안겨준 짐바브웨의 거대 유적,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빌헬름텔. 그러나 어떤 황금시대와 어떤 영웅과 어떤 풍경과 어떤 덕성을 과거로부터 불러낼 지는 '지금 우리의 요구'에 달려 있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그래서 민족은 늘 새로 쓰인다.
근대 혹은 현대 이후 국가 먼저 세워지고 민족을 발명해내야 하는 곳에서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에스니의 '민족화'가 이뤄졌는데 국가가 없는 곳들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9장 '민족의 계보학'은 그가 책을 쓴 1980년대라는 '현재'에 민족 혹은 에스니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며 세계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합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나를 조망하고 있다.
"국제적인 공동체는 엉성하게 구성된 민족국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종 (민족)국가의 '정당한' 정권이 저지른 야만적 방식을 관용하도록 강요받아온 반면, 합리적이든 아니든 침해되고 배제된 장래의 민족이 행하는 주장은 정당성을 거부하도록 강요받았다.
... 예컨대 우리는 연방 혹은 연합국가를 이용해 배제됐던 에스니의 민족주의를 포용하여 현재의 지역적 국가체계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역으로 에스니의 민족주의는 높은 수준의 '시민적 민족주의'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유토피아적 꿈으로 남아 있다. 정체성이 존중되면서 국가라는 우산에 보호받는 민족의 세계는 현재로서는 거리가 먼 가능성일 뿐이다. 정치적, 경제적 자원이 매우 불균등한 세계에서 우리는 에스니 간의 갈등을 예상해야만 하며... 에스니의 정체성을 받쳐주는 신화, 기억, 상징의 내적 의미와 힘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근대 세계에서 국가와 개인 사이의 관계를 혼란시키는 에스니의 적대를 파악할 수 없다." (467-468쪽)
30여년 지난 책이지만 맨 마지막 장까지 밑줄 쳐가며 읽을 것들이 빼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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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가 옮긴이 주를 열심히 달기는 했지만 지명 표기에서 꼼꼼하지 못한 것들이 좀 많이 눈에 띈다. 아프'카'니스탄 식으로 gh를 ㅋ으로 번역해놓은 것들이 우선 거슬린다(그린비 출판사는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편집자는 번역원고를 읽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아르사크(파르티아) 왕조를 '아르사시드', 바그라티오니(아르메니아) 왕조를 '바그라티드' 식의 영어 접미사 그대로 옮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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