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이라크 극단조직 이슬람국가(IS)의 잔혹성을 세계에 알린 것은 지난해 8월 이들이 저지른 미국 기자 제임스 폴리 참수사건이었다. 이어 또 다른 미국인 기자와 영국 구호요원이 이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때 미국 못잖게 충격에 빠진 것은 영국이었다. 인질들에게 칼을 겨눈 동영상 속 검은 복면의 무장조직원이 완벽한 영국식 억양의 영어를 구사했던 것이다. 이 남성에게는 ‘지하드 존’(Jihadi Joh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하드 존의 신원이 공개됐다. BBC는 2월 26일 복면 괴한이 “쿠웨이트 태생의 27세 영국 남성 모하메드 엠와지”라고 보도했다. 고토 겐지 등 일본인 인질들 살해 협박 영상 속 인물도 엠와지로 추정된다. 영국 대테러 당국은 이미 지난해 9월 IS에서 탈출한 인질들과 동영상 음성분석 등을 통해 그의 신원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 이후 쿠웨이트 입국 거절 당해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엠와지의 친구들과 지인들을 취재해 그가 웨스트런던의 부유한 가정 출신이며,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보도했다. 엠와지는 1988년 쿠웨이트에서 태어났고, 6살 때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했다. 흔한 저소득층 이주노동자 가족은 아니었던 듯싶다. 엠와지는 런던 중산층 거주지역에 살면서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지인들에 따르면 ‘예의 바르고 옷을 잘 입는 청년’이었다. 무슬림이긴 했지만 가끔씩 그리니치의 모스크에 가는 정도였다.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 출신도 아닌 청년이 어째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참수 동영상’ 속 잔혹한 무장조직원이 됐을까.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2013년 시리아로 가서 IS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나, 그 자신이 소셜미디어 등에 남긴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IS가 장악한 이라크 북부도시 모술에서 한 IS지도자가 대중강연을 하고 있다. _ AP연합뉴스
그의 행적이 정보당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독일인 친구 ‘오마르’ 등 2명과 함께 사파리 투어를 하겠다며 탄자니아로 향했다. 하지만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암스테르담에서 엠와지는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영국 국내 정보기관 MI5 요원이 자신을 조사했으며, “내가 소말리아에 가서 알샤바브와 접촉하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작년 케냐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를 일으킨 알샤바브는 소말리아의 무장조직으로, 프랑스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 배후인 예멘 알카에다(AQAP)와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엠와지는 아버지 가족이 있는 쿠웨이트에 가서 잠시 컴퓨터회사 직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2010년 영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쿠웨이트에 가려 했지만 비자를 거부당해 갈 수가 없었다. 엠와지는 대테러 수사당국에 구금돼 두어 차례 조사를 받았다. 친구들은 그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좌절했고, “런던에 있으면 거대한 감옥에 있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무슬림 청년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압박감이 오히려 그를 극단주의자로 몰아갔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가 당국으로부터 어떤 의심을 받았는지, 어떻게 극단세력과 연결됐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영국 수사당국은 “조사 중인 사안”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엠와지는 2013년에도 쿠웨이트로 가려고 했다가 실패했고, 그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부모는 실종신고를 했다. 몇 달 뒤 시리아에 들어가 IS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IS에 가담하겠다며 시리아로 찾아가는 청년들 때문에 유럽은 몸살을 앓고 있다. 2월 17일에는 역시 영국에서 부모 몰래 가출한 10대 소녀 3명이 시리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런던 시내의 한 학교에 다니던 소녀들은 우리나라의 ‘김군’과 마찬가지로 터키의 킬리스를 거쳐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 소녀들을 부추긴 것은 21세 영국 여성 아크사 마흐무드였다. 마흐무드는 2013년 11월 열아홉 살 나이에 시리아로 갔고, 그곳에서 IS 전투원과 결혼한 뒤 인터넷을 이용해 다른 소녀들을 꾀어 들이고 있다.
IS 때문에 몸살 앓는 유럽 사회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서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의 공격이 벌어질 때마다 ‘사회적·경제적 소외 속에서 좌절한 이주민 2세대들이 저지른 비극’이라는 해석들이 나왔다. 2013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공격을 저지른 차르나예프 형제, 지난해 캐나다 오타와 총격사건을 벌인 마이클 제하프-비보, 올 초 세계에 충격을 던진 샤를리 에브도 테러범 쿠아치 형제 등이 그런 예다. 며칠 전 미국 뉴욕 공항 등에서 브루클린에 사는 뉴요커 3명이 체포됐다. IS에 가입하겠다며 시리아로 가려던 이들 역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이민자 가정 출신들로, 비슷한 사례였다. 그러나 엠와지를 보면 알 수 있듯 IS의 대원이 된 유럽 청년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유복한 데다 좋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는 이런 케이스들을 놓고 유럽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유럽 사회가 IS 패닉에 우왕좌왕하는 동안, 시리아로 가는 젊은이들의 이동경로를 가리키는 ‘지하드 익스프레스’는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터키의 경우 세계 69개국과 비자 면제 협정을 맺고 있다. 극단주의자들은 이를 악용해 터키를 자유로이 오간다. 특히 터키와 시리아 국경지대는 유럽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캅카스 지역에서 온 극단주의 전투원들의 통로로도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는 여행금지자 명단을 만드는 등 극단주의자들의 입국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리아로 향한 외국인 전투원 수가 이미 2만명이 넘는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추산한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NCC)의 니컬러스 라스무센 소장은 2월 11일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90개국 이상에서 온 2만명 넘는 전투원들이 IS 전장에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외국인 전투원들 중 3400명가량이 서방국 출신인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라스무센 소장은 IS가 “알카에다 핵심부에 비해 뉴미디어들을 다루거나 폭넓은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데에 훨씬 능숙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다. IS의 어떤 주장, 어떤 ‘콘텐츠’가 평범하게 자라나던 젊은이들을 극단주의자들의 전쟁터로 불러들이는지를 규명하지 못하는 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김군 사건에서 보듯 이것은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유럽이라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 여객기 추락 “150명 사망”… 올랑드·메르켈에게 ‘7시간 공백’은 없었다 (0) | 2015.03.24 |
---|---|
프랑스에서 강도들이 107억원어치 보석 강탈 (0) | 2015.03.11 |
러시아, 기나긴 암살의 역사 (0) | 2015.03.07 |
집권 한달 넘은 그리스 시리자, ‘절반의 성공’ (0) | 2015.03.02 |
넴초프 피살, ‘흔들리는 푸틴체제’에 더 큰 균열 일으킬까 (0) | 2015.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