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넴초프 피살, ‘흔들리는 푸틴체제’에 더 큰 균열 일으킬까

딸기21 2015. 3. 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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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 땅을 빼앗고 애국주의를 부추기며 체제를 다지고 있으나 경제는 위기로 치닫는다. 언론을 통제하고 비판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만 공포분위기 속에서도 ‘다른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온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공고하지만 러시아의 ‘푸틴 체제’는 밑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러던 차에 최고위급 출신의 정치인이 피살됐다. 서방의 압박보다 크렘린에는 내부 균열이 더 큰 위협이다. 보리스 넴초프의 피살은 러시아의 균열을 더욱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 28일 모스크바 시내를 흐르는 모스크바강가에는 전날 의문의 저격수들에게 피살된 정치인 넴초프를 기리는 꽃다발이 산처럼 쌓였다. 시민 수천 명이 추위 속에서도 넴초프가 살해된 곳으로 나와 꽃을 놓고 추모행진을 했다. 



서방 언론들이 ‘갱 스타일 살인’이라 부른 공격의 범인들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모스크바타임스 등 러시아 언론들은 ‘정치권의 분열과 증오’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있고, 수사당국은 우익들의 소행이나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야권의 공작’에서부터 ‘이슬람국가(IS) 개입설’까지 온갖 음모론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시선은 크렘린에 쏠려 있다. 1990년대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살해된 반체제 인사들 최고위급이다.

 

넴초프는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는 이미 ‘한물 간’ 사람이었으나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요구해온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컸다. 보란듯이 크렘린 바로 옆에서 그를 사살한 대담성으로 미뤄, 크렘린이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더라도 푸틴 정권과의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넴초프 피살 뒤 러시아에 공포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넴초프는 숨지기 직전 지인과 만나 ‘푸틴과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 압박 등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은 사건 직후 “끔찍한 범죄”라 비난하는 성명을 내고 넴초프의 어머니에게 “공정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푸틴의 정적으로 영국에 망명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성명을 내고 “역사의 또 다른 무시무시한 페이지가 열리고 있다”며 야권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암살이 뒤따를까 우려했다. 넴초프와 함께 야권을 이끌어온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크렘린 행정실장은 음모론만 쏟아내는 수사당국을 비난했다.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튈 지는 알 수 없지만 푸틴 체제를 더욱 뒤흔들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푸틴은 8년간 대통령을 지내고 총리로 잠시 내려앉았다가 2012년 재집권했다. 한번 더 재선되면 2020년까지 집권하는 것도 가능하다. 극도의 언론통제 속에 실시되는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푸틴의 지지율은 80% 안팎이다. 하지만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푸틴 체제에 대한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반 크렘린 인권변호사’로 유명해진 알렉세이 나발니는 구금과 가택연금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저항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망명 중인 호도르코프스키는 지난해 “푸틴이 축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푸틴이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데에는 지지를 다시 끌어올리려는 국내정치적인 의도도 다분했다. 크림 합병 뒤 푸틴의 인기는 일시적으로 올라갔으나, 서방의 제재 속에 경제가 악화되면서 다시 흔들리고 있다. 국민대 국제관계학부 정재원 교수는 “여전히 푸틴 지지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용감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강압을 비판하는 상트페테르스부르크 젊은이들의 주장이 소셜미디어로 퍼지기도 했다. 

 

날씨가 풀리는 3월부터 여름휴가철을 앞둔 6월 사이에 야권의 반정부 시위들이 잇달아 예정돼 있다. 아직 경제위기가 정권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점이 텅 비기 시작하면서 푸틴 체제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정 교수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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