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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조프스키,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죽음

딸기21 2013. 3. 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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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은 냉혹했다. 한때의 벗이자 ‘공신’이었던, 하지만 나중엔 적이 되어버린 자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1)은 용서하지 않았다.


탈(脫)소비에트 시대를 풍미한 러시아 갑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67)가 모스크바로 돌아가고자 했던 마지막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망명지인 영국에서 숨졌다고 이타르타스통신 등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레조프스키는 이날 런던 교외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냉전이 끝난 뒤 러시아의 민영화 바람을 타고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의 선두를 차지했던 풍운아의 쓸쓸한 최후였다.

 

베레조프스키는 모스크바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학자 출신인 그는 옛 소련이 무너진 뒤 사업가로 변신해 놀라운 상술을 발휘했다.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러시아 최대 자동차회사인 아프토바즈의 지분을 손에 넣었고, 방송사와 에너지회사 등을 차지해 신흥갑부로 떠올랐다. 루블화 폭락 사태로 러시아가 휘청일 때에도 그는 마피아와 결탁해 재산을 오히려 불렸다. 


1993년부터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1931~2007)과 손잡고 정치에도 입김을 행사했다. ‘민영화의 총지휘자’라 불린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총리와 함께 크렘린의 ‘이너서클’이 되어 민영화 과정을 주물렀다. 로이터통신은 이 때문에 베레조프스키를 차르 시절의 궁정 성직자 라스푸친에 빗대 “탈소비에트 시대의 라스푸친”이라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신흥 갑부로 이름을 날렸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오른쪽)가 1998년 4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_AP



베레조프스키는 한때 푸틴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푸틴이 옐친의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돈을 대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고만장했던 신흥갑부는 푸틴의 야심을 읽지 못했다. 러시아 전문가 데이비드 호프먼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베레조프스키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고 지적했다. 


푸틴 집권 첫해인 2000년 10월, 러시아 당국은 베레조프스키가 쓰고 있던 정부 소유 주택을 비우라고 요구했다. 그가 멋대로 자기 리무진에 갖다놓은 집기들도 돌려놓으라고 명령했다. 몰락은 숨가빴다. 3조원이 넘는다던 자산은 부패 수사가 진행되면서 공중분해됐고, 그해 말 베레조프스키는 영국에 망명했다.

 

사소한 권력다툼이 아니었다. 베레조프스키는 대놓고 공산주의를 비판해왔다. 보수파인 푸틴은 베레조프스키-추바이스 연합세력이 추진한 급진적인 자본주의 경제로의 이행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졸부들의 횡포와 부패를 미워한 국민들은 푸틴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고, ‘올리가르히와의 싸움’은 푸틴 집권 1기의 최대 치적이 됐다. 베레조프스키는 망명 뒤에도 “푸틴 정권을 전복시키겠다”고 호언했으나 2007년 러시아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배됐다.

 

베레조프스키는 새로운 절대권력의 형성을 예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올리가르히 내부의 싸움에서도 패했다. 지난해 그는 또 다른 러시아 갑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석유회사 시브네프티 등의 주식 6조원 어치를 강탈해갔다며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아브라모비치와도 1990년대 초반 에너지·정유사업을 함께 하면서 제휴했던 사이였으나 두 갑부의 행로는 이후 크게 엇갈렸다. 베레조프스키가 옐친 시대의 퇴물이 되어 쫓겨난 반면, 영국 축구팀 첼시의 소유주로 유명한 아브라모비치는 푸틴의 비위를 맞추는 데 성공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베레조프스키(왼쪽)가 2000년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함께 국가두마(하원)에 출석하고 있다. 당시 동료 의원이던 베레조프스키와 아브라모비치는 지난해 거액이 걸린 소송으로 맞붙었고, 베레조프스키는 영국 망명 중 23일 사망했다. _AP



영국에서도 고급 승용차에 경호원을 두고 갑부처럼 살던 베레조프스키는 아브라모비치를 상대로 한 소송에 져 궁지에 몰렸다. 소송비용만 2억5000만달러였다. 돈이 떨어진 그는 앤디 워홀의 작품 ‘붉은 레닌’과 요트 등을 팔아야 했다. 파산 위기에 몰린 베레조프스키는 얼마 전 푸틴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러시아 국영방송에 출연해 “그는 자필 편지에서 여러 실수를 인정하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푸틴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베레조프스키는 런던 부근 애스콧에 있는 자택 욕실에서 숨져 경호원에게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위인 에고르 슈페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망 사실이 처음 알려졌으며, 이어 그의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베레조프스키가 자살을 했다, 좌절에 따른 행동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베레조프스키는 죽기 전날 포브스와 인터뷰하면서 “여러 면에서 마음이 바뀌었고,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BBC방송은 사망 직전 그의 심리를 보여준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경찰은 “사망 과정에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CBRN팀을 파견해 조사했으나 타살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CBRN팀은 화학·생물학·방사능·핵 관련 수사팀을 가리킨다. 2006년 베레조프스키의 친구이자 동료 망명자였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방사성물질에 중독돼 숨졌는데, 러시아 측의 암살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올리가르히란?

옛 소련 해체 뒤 국영산업 민영화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러시아의 신흥재벌들을 일컫는다. 주요 산업과 언론을 장악해 전방위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집권 뒤 올리가르히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석유회사 유코스 소유주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은행가 알렉스 코나니킨,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이 수사대상이 됐다. 호도르코프스키는 2005년 징역 9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코나니킨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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