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키프로스의 줄타기 외교와 경제 위기

딸기21 2013. 3. 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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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에서 키프로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0.5% 미만입니다. 키프로스의 면적은 경기도보다도 작은 9251㎢이고, 인구는 100만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경제를 두고 주변국들이 왜들 그렇게 애를 태우는 걸까요.


이 나라가 중요한 것은 위치 때문입니다. 서유럽과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모두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이 섬나라의 역사를 좌우해왔습니다.

 

지중해 동쪽 끝에 있는 이 섬은 이미 3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기 때문에 신석기 이래의 유적이 즐비하다고 합니다. 이 작은 땅을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제국들이 거쳐갔습니다. 아시리아, 이집트,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아랍 제국을 거쳐 프랑스와 베네치아 공국, 오스만투르크, 그리고 영국으로 지배자가 계속 바뀌었습니다.


키프로스의 쿠리온(Courion)에 있는 아폴로 신전 /위키피디아


 

현대에 들어와 키프로스가 주변국들의 싸움장이 된 것은 1960년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한 뒤부터입니다. 이 섬의 주민들은 그리스계와 터키계로 나뉩니다. 반반은 아니고, 그리스계가 거의 80%에 육박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아시다시피 오랫동안 터키의(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요. 말하자면 소수파인 터키계는 예전 지배세력의 후손들인 셈입니다.

어찌 되었든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던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고, 그리스계가 “그리스의 일원이 되겠다”며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1974년 터키가 침공해왔고, 그리스계 주민 15만명이 난민이 됐습니다. 남북 키프로스의 싸움은 사실상 그리스와 터키의 싸움이었고, 키프로스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었지요.

지금도 섬 면적의 40%인 북키프로스에는 터키군이 주둔해 사실상 점령통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북키프러스 터키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영국이 사실상 식민지배를 해온 북아일랜드가 떠오르네요;;) 1985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만, 국제사회는 북키프로스의 존재를 인정치 않으며 터키가 키프로스 땅을 무단 점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4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아난 계획’이라는 중재안을 냈지만 터키는 철군을 거부했고 그리스계도 거부하면서 무산됐습니다. 남북 사이에는 완충지대(비무장지대)가 있었는데, 일전에 읽었던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엔 '생태계의 놀라운 복원력'을 보여주는 지역으로 한국의 비무장지대와 이 키프로스의 완충지대를 예시하기도 했답니다.

이 완충지대는 2008년 철거됐으나 여전히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나뉜 채 어색한 공존을 하고 있습니다. 내전 시기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상처도 여전합니다.

 

2004년 키프로스는 유럽연합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중동과 바로 붙어있는 까닭에 중동 정세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에는 레바논 난민들이 키프로스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복잡한 정세 속에서 키프로스의 생존법은 ‘외교’였습니다. 생활습관이나 법·제도에는 영국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있고 1961년 영연방에도 가입했지만 그러면서도 키프로스는 냉전 시기 한 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비동맹 그룹에 들어갔습니다. 

1990년대 발칸이 혼란에 빠지고 ‘학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옛 유고연방 세르비아가 금수조치를 당하자, 키프로스는 세르비아를 위해 금수조치를 비껴가는 금융 창구 역할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이면서도 여전히 영국에 해군기지 2곳을 내주고 있고, 미군 함대들도 이 기지들을 사용합니다. 이거야말로 전방위 외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키프로스는, 2006년에는 국제프랑코폰기구(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모임)에도 참관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프랑스어와는 아무 상관없는데도요. 가히 놀라운 외교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프랑스에 가까이 갔냐고요? 터키의 압박을 피할 우산을 쓰기 위해서라면 어느 곳과도 손을 잡는다는 뜻이었지요. 제 기억에, 당시 프랑스는 터키와 좋은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의회가 그 해에 터키를 겨냥, "과거사를 부정하는 행위를 범죄로 간주한다"는 법안을 만들어서 백년 전 벌어진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을 비난했거든요.


키프로스는 소규모 광물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고 줄타기 외교를 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구가했습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2년 전만 해도 구매력 기준 2만8000달러로, 유럽연합 내 중위권 수준이었습니다(경제위기 때문에 작년에는 2만6000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최근에는 800억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는 가스전 개발에 들어가 에너지업계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파산 지경에 이른 것은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 복잡한 외교관계 때문입니다. 미국이 이란에서 시리아로 가던 선박에서 무기를 압류한 뒤 키프로스의 기지에 쌓아뒀는데 이것이 2011년 7월 폭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키프로스 국방장관과 군 지도부가 사임했는데, 불똥은 경제 쪽으로 튀었습니다. 이 폭발이 작은 섬나라 전력공급의 절반을 중단시키는 대형사고로 발전했고, 산업이 마비됐습니다.


중세부터 사용해온 건물들이 남아 있는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의 거리. /위키피디아


 

이어진 경제위기의 해법을 놓고 각국은 이해타산에 급급합니다. 유로존의 중심인 독일이 키프로스 구제금융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것은 “러시아의 돈을 메워주기 싫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러시아는 키프로스 금융권에 거액을 물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키프로스에 거액을 예치한 것은 모스크바 당국에 세금을 내기 싫은 신흥부자들이지 러시아 정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키프로스를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키프로스 바로 동쪽에 시리아라는 고민거리가 있는 탓입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타르투스 해군기지를 쓰고 있는데, 시리아에서 독재정부가 무너지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 이를 내줘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타르투스의 이 항구를 가리켜 러시아는 군사기지가 아닌 ‘정보기술시설’이라 주장하지만 지중해로 향하는 러시아의 중요한 길목이라는 걸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이 항구를 잃으면 러시아 함대는 흑해 연안의 기지에 머물러야 합니다. 러시아는 이를 피하기 위해, 시리아의 대안으로 키프로스의 기지를 빌려 쓰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4일 “키프로스는 유럽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역할도 해왔다”며 “키프로스가 유로존과 유럽연합에서 밀려나는 일이 생기면 러시아로서도 큰 손실”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과거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 시절의 이집트는 아스완 하이댐을 지을 때 서방이 자금지원을 거절하자 소련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후 20년 가까이 소련과 긴밀하게 지내면서 미국과 유럽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키프로스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게 될 경우 서방에는 그 때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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