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전 10년, '하지 말았어야 했던 전쟁'

딸기21 2013. 3. 20. 19:44
728x90

>2003년 1월18일, 영하 7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 속에 미국 워싱턴의 의회의사당 앞에 수만명이 모여 ‘전쟁 반대’를 외쳤다. 미국을 ‘깡패 국가’라 부른 것은 북한도 이라크도 이란도 아닌, 미국의 시민들이었다. 시위대의 구호 중에는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정권 교체의 대상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마 취급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부시 자신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이던 프랑스에서도 그날 40개 도시에서 반전 평화시위가 벌어졌다. 영국, 러시아, 일본,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독일, 스웨덴, 그리고 한국.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평화집회가 열려 미국의 무모한 전쟁 계획에 항의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유럽과 미국에 국한된 것과 달리 이 때의 반전 행동은 ‘지구적’이었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목소리는 21세기 첫 전면전이 될 이라크 전쟁에 대한 우울한 예언이기도 했다.


In this March 8, 2013 photo, pedestrians walk down Rashid Street in Baghdad, Iraq. /AP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지 20일로 10년이 됐다. 그 10년 동안 이라크인들은 전쟁·테러·내전에 죽어나갔고, 미국은 빚더미에 앉았다. 세계는 분열됐고, 중동엔 격변이 왔다. 평가는 냉혹하다. 미국이 ‘이라크 자유작전’이라 이름붙였던 이라크전은 ‘해서는 안 된 전쟁, 실패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 때문에 세계는 둘로 갈라졌다. 2001년 9·11 테러 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고, 곧 그 칼날을 이라크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아프간전과 달리 전쟁의 맨 얼굴을 보여준 ‘힐라 병원 오폭사건’이었다. 2004년 팔루자 학살, 2006년 마흐무디야 성폭행·방화, 2011년 민간 군사회사 블랙워터 직원들의 총기난사 등 미군과 용병들의 전쟁범죄가 잇따라 폭로됐다. 그 중에서도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인권유린은 미국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안겼다.


Iraqis sift through garbage for recyclable materials at a dump in the Shiite enclave of Sadr City Baghdad, March 17, 2013. /AP


국제사회와 안보리의 분열은 미국이 자초한 것이었다. 개전 직전 미 국무장관이던 콜린 파월이 유엔 회의장에서 직접 브리핑 하며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파월 자신마저도 속았던’ 부시 행정부 주전파들의 농간으로 드러났다. 안보리는 미국·영국과 나머지 나라들의 싸움장이 됐고, 미국의 위상은 떨어졌다. 이후 리비아·시리아 사태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안보리의 분열이 반복됐다.

배럴당 22~30달러였던 국제유가는 바그다드 폭격과 동시에 뛰어올라 100달러를 넘어섰다. 미 연방 재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기대했던 ‘이라크 개발’은 허풍에 불과했다. 서둘러 전쟁을 일으키느라 재건 계획을 제대로 짜지 못했고, 민간 군사회사들만 덕을 봤다. 직접적인 전비와 이라크 재건 예산, 전역병 복지비용 등으로 미국은 2조달러 이상을 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미 브라운대 왓슨국제문제연구소는 최근 “앞으로 40년간 6조달러가 넘는 돈을 이라크전 비용으로 지불하게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중동 정치역학에서는 미국의 바람과 반대로 이란이 최대 승자가 됐다. ‘아랍의 봄’으로 이집트의 독재정권이 쫓겨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친미 왕정은 궁지에 몰렸다. 반면 이란은 이라크가 무너지면서 역내 패권국으로 떠올랐으며, 이라크-시리아-레바논까지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형성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전쟁 10년을 맞아 미국 안에서도 최근 전쟁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공화당은 여전히 “이라크전으로 테러조직들을 약화시켰다”고 강변하지만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미국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그런 희생을 치를 가치가 없었던 전쟁”이었다는 말로 이라크전을 요약했다.


Iraqi security forces inspect the site of a car bomb attack in Basra, Iraq, Sunday, March 17, 2013. /AP



경향신문 구정은 기자



이라크전으로 돈 번 건 누구?


“이라크전은 군인보다 민간업자들이 더 많은 전쟁이었다.”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 경비, 군수, 재건축 등 목적으로 참여한 민간업체들이 지난 10년간 1380억달러(약 153조원)를 벌어들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이 신문 자체 분석 결과 상위 10대 기업이 전쟁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은 최소 720억달러나 됐다. 


최고 수익 기업은 미국 에너지기업 할리버튼의 자회사 KBR로, 395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낸 것으로 추정됐다. 할리버튼은 이라크전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정권의 딕 체니 부통령이 회장으로 재임했던 회사다. 쿠웨이트의 어질리티로지스틱스와 쿠웨이트석유공사가 각각 72억달러와 63억달러로 뒤를 이었다. 신문은 업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름을 숨기기 때문에 수익 규모는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라크전 당시 이전의 어떠한 전쟁보다 더 많은 민간기업에 경비, 군수, 재건축 업무를 맡겼다. 이들은 대사관 경비, 파워플랜트 건설부터 화장지 공급까지 도맡았다. 클레어 매카스킬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 10년간 우리는 수십억달러의 세금이 군 임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안되는 서비스와 프로젝트에 쓰여졌다”고 비판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시계약위원회의 2011년 보고서도 지난 10년간 국방계약 체결과정에서 낭비되거나 사기당한 금액이 600억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2007년 미국 민간경호업체 블랙워터(현재 명칭은 Xe)는 이라크인 17명을 고의로 살해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KBR 대변인은 “적대적이고,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희생을 감수해 왔다”며 민간업체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미군은 2011년 12월 이라크에서 철군했지만 업체 1만4000개와 경호병력 5500명은 아직 남아있다. 미 국무부는 바그다드의 대사관 시설을 보호하는 데 5년간 30억달러를 쓰기로 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스테파니 사노크는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기업들이 그저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여전히 돈을 쏟아붓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