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재닛 아부-루고드. 박흥식, 이은정 옮김. 까치
읽어야겠다고 생각한지는 오래 됐다. 알라딘 보관함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망설였던 것은, 아주 흥미를 끄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내겐 너무 학술적이고 전문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렇게 마음의 짐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석 달 전 이 책을 주웠다. 거짓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웠다.’ 사무실에 누군가가 버려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냉큼 챙겨놓았지만 역시 책을 펴들기까지는 두 달이 더 걸렸다.
정말 좋아하는 포맷에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 사실 올 해 나의 ‘독서성적’은 형편없다. 이런저런 일들과 신변의 변화로 바빠 하반기 내내 마음 편히 책 한 줄 읽지 못했다. 먹다 얹힌 떡 조각처럼 목구멍에 걸려있던 일을 끝내자마자 이 책을 잡았다.
예상했던 대로 나 같은 직장인이 읽기엔 좀 학술적이었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책의 체계와 논지가 워낙 분명했던 이유도 있다. 도대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 거짓말 조금 보태어 내가 죽고 못 사는 책인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책 첫머리에 인용돼 있다.
저자는 흥미가 끌리는 대로 여러 학문분과들을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러 학문 분과들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제학·정치학·사회학·역사학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계체제론에다가 제3세계 즉 ‘서발턴’의 관점을 결합해서 ‘지식의 변화를 재촉하는 제3의 길’을 찾고 싶었단다. 속 좁고 시야 좁은 역사학자들 틈바구니에서 세상을 넓게 보고,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 세계를 보려 했다는 얘기다. 성찰적인 서구 학자라고 해야 하려나.
“지식의 변화를 재촉하는 제3의 길은 아마도 ‘사실들’이 관찰되는 거리에 변하를 주고, 그것에 의해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의 규모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좀처럼 전지구적으로 조망하려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아놀드 토인비와 윌리엄 맥닐은 시간과 공간의 협소한 한계 내에 특화돼 있는 학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극소수에 속한다.” (9쪽)
제목에서 충분히 예상되듯이, 저자는 세계체제론을 바탕으로 아날 학파의 분석기법을 이용해 논지를 설파한다. 이 책과(혹은 이 책의 저자와) 관련 있는 학자들은 이매뉴얼 월러스틴, 페르낭 브로델, 페리 앤더슨, 에릭 홉스봄 같은 이들이다. 여기에 윌리엄 맥닐(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명저다!)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다. 소제목들을 훑어봐도 그렇지만, 저술 스타일이 참으로 정직하다! 책은 13세기에도 ‘세계체제’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16세기를 대략 유럽 패권에서 출발한 오늘날 세계 체제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13세기에도 분명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세계체제가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3세기 후반은 구세계의 많은 부분이 (비록 모든 부분은 아니었을지라도) 하나의 교환체제 속으로 통합되기 시작한 시기다.
특히 당시의 두 세계, 즉 유럽과 중국이라는 유라시아의 두 부분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이 정착한 시기다. 13세기에는 이전보다 확연히 생산·교역 규모가 커졌다. 그러므로 13세기(정확히 말하면 1250~1350년)는 분명 세계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문화적으로도 동시다발로 세계에서 원숙한 문화·예술이 꽃을 피웠다. 경제적 통합과 문화적 결실은 서로 연관돼 있는 13세기의 특성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13세기의 세계경제’를 탐구하고 그 동력을 살핀 뒤 “왜 14세기부터는 그 체계가 비틀거리게 됐는지”를 살핀다.
여기서 하나의 포인트는 ‘유럽 패권 이전’의 이 체제에는 단일 패권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 세계체제’와의 중요한 차이다(저자는 13세기 체제가 ‘근대 자본주의’의 시초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며 학계의 말싸움과는 선을 그었다). 그리고 13세기 체제에는 이후의 세계체제를 ‘유럽 패권’으로 가게 만든 역사적 필연성 따위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미래는 열려 있었다. 중국이 패권을 잡았을 수도 있었다.
“그 체제가 동양보다 서양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야만 할, 동양의 문화가 근대 세계체제의 원조가 되는 것을 가로막았던 그 어떤 고유한 역사적 필연성도 없었다.” (32쪽)
그런데 결과는 ‘유럽 패권’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대개 유럽이 잘나서 그랬다고들 말하는데, 오늘날 세계체제의 이전단계인 13세기 세계체제를 들여다보면 유럽이 잘 났다는 증거는 없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말하자면 ‘서양 잘난척’에 쐐기를 박기 위한 연구인 셈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책의 출발점은 재미있다. 앞서 언급한 저런 자세 위에, 저자의 마음에 들어선(저자의 눈에 포착된) 어떤 지점들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됐다. 저자 나름의 ‘지리상의 발견’이라 할 세 지점은 카이로(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준 도시), 항저우(13세기 세계에서 가장 크고 발전했던 도시), 브뤼주와 트루아(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복원된 중세 도시들)이었다. “이렇게 발전했다가 훗날 몰락하고 만 세 지점은 유럽 패권 이전의 세계체제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가 저자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책은 지도를 바탕으로 13세기 세계체제를 조망한다. 저자는 당시의 세계를 교역로에 따라 크게 3덩어리, 작게 8덩어리로 나눈다. 큰 세 덩어리는 서유럽, 중동, 극동이다(여기서 극동은 한국만 쏙 빠진 동양, 간단히 말해 중국과 동남아를 지칭한다. 우리가 아무리 변명을 해봤자 세계 교역체제에 당시의 한국은 그리 많이 통합돼 있지 않았으니까). 세 덩어리가 교차하는 지점들이 교역의 중심지들, 세계체제의 중요한 마디들이다.
저자는 유럽의 하위체제(제1부), 중동의 심장부(제2부), 아시아(제3부)의 세 덩어리를 나눠 각각의 내부 동력을 살펴본다. 유럽에서는 상파뉴 정기시의 도시들과 플랑드르의 상공업 도시들,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해양상인들을 중심으로 13세기의 교역 확대를 점검한다. 정치적인 이유, 교역상대의 변화, 입지조건 등 이런저런 이유에서(지점마다 각기 사정은 달랐다) 13세기의 교역중심지들은 14세기 들어 쇠퇴하기 시작한다.
중동에서는 몽골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중동을 제패한 몽골은 산업이 발달한 지역들을 계속 정복해감으로써 잉여를 늘렸으나 이는 ‘붉은 여왕의 한계’에 부딪쳤다. 결국 잉여를 더 이상 빼앗아 올 수 없는 지점이 되자 몽골은 몰락했다. 세계를 한데 엮은 몽골의 성공은 전염병의 대유행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고, 이는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유라시아 육로의 쇠퇴를 가져왔다. 동시에 한때 세계의 중심이던 바그다드와 페르시아만 교역도 힘이 빠졌다. 맘루크(노예 술탄국) 치하의 카이로가 제네바와 결탁해 지중해-홍해-인도양으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한때 잘 나가기도 했지만 유럽이 대서양 노선을 개척하면서 이 독점적인 교역로도 효력을 다했다. 이는 결국 인도양 노선의 쇠퇴, 더 나아가 ‘동양의 쇠퇴’로까지 이어졌다.
세 번째 덩어리 ‘인도양 체제’는 아라비아 순회로(아프리카 동부~인도 서부), 벵골만 순회로(인도와 동남아), 남중국해 순회로(인도양 동부~중국)의 세 바닷길로 구성돼 있었다. 인도 아대륙은 한때 지중해(유럽)와 남중국해 사이 ‘모든 곳으로 통하는 길’이었지만 서인도양에서 아랍-인도 패권이 종말을 고하면서 몰락한다.
가장 재미난 것은 세 번째 덩어리 중에서도 중국에 대한 것으로, 이 책의 핵심에 해당된다. 중국은 14~15세기 갑자기 대양에서 철수해버렸다. 그래서 말라카/동남아 해상은 무주공산, 아니 무주공해가 됐다. 이 공백을 인도나 중동이 메웠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만, 공백을 메우고 나선 것은 유럽(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이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적어도 지난 100년 동안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질문은, 그 당시 중국이 지고의 지위에 있었는데도 왜 세계체제에서 진정한 패자가 되는 최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중국은 자국의 해안으로부터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인도양 일대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중국은 물러섰고 함대를 후퇴시켰으며, 그로 인해서 거대한 권력의 공백을 남겨 두었을까? 국가의 해군력에 의한 지원을 받고 있지 않던 이슬람 상인들은 그 공백을 메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유럽은 약 70년의 휴지기 후에 좀더 의욕과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351쪽)
한때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는 ‘명나라가 바다(교역)를 포기한 이유’를 놓고 창의성이 적었다거나(그래서 과학기술 발달이 유럽보다 뒤졌다) 제도가 나빴다는(개인의 창의성과 모험심을 부추기는 문화가 아닌 전제군주 문화였다) 식의 해석을 많이 내놓곤 했다(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이런 해석에다가 아부-루고드 식의 유물론적 해석을 적당히 걸치고 있는 듯하다).
2차 사료들을 검토한 저자의 해석은, “당시 중국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왜 철수했나”가 아니라 “중국은 그 때 왜 경제적으로 붕괴했나”가 문제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 저자는 송-원-명 교체기 중국이 내부적인 문제들로 인해 15세기에 어쩔 수 없이 해군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 붕괴를 겪었다고 말한다. 송대 이래 중국 경제의 중심은 남부였는데 (몽골식 세계화의 여파로 인해) 남부가 전염병에 황폐화됐다.
게다가 명나라의 정치적 중심은 북부였다. 남쪽의 해상노선이 조금은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화의 원정대’를 중심으로 해상노선을 살리려는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중국은 바다에서 철수했다. 이와 함께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기회도 사라졌다. 이렇게 13세기 세계체제는 종말을 고했고, ‘다른 체제’가 이후의 세계를 지배했다. 체제의 변화를 살펴볼 때 유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제 각각의 변수들이 아무리 확고하다 할지라도 체제들의 형성/이전/재구성을 하나의 변수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둘째, 연이은 체제들은 누적적인 방식으로 재편된다. 셋째, 어떤 체제도 완전히 통합돼 있지는 않고 가장 강력한 참가자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지도 않는다. 넷째 변화의 원인은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같은 행동이 다른 시기, 다른 체제에서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체제변화 이론은 체제의 성장 뿐 아니라 체제의 쇠퇴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402쪽)
그리하여 결론은? 결론은 ‘미래의 세계체제들’이다. 13세기 체제를 뒤로한 채 출범한 ‘근대 세계체제’는 얼마나 존속할 것인가. 근대 세계체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 패권’이다. 이 시기 패권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중국의 성장(그리고 거기 연결된 아시아 용들의 발전)은 새로운 세계체제를 열 것인가.
그 대답을 누가 알리오. 중요한 것은 근대 체제와 다른 13세기 체제가 주는 시사점이다. 13세기 체제는 ‘다핵적’이었다. 지금의 체제는 단핵적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는 탈식민지화로 잃어버린 특권을 경제적 수단을 이용해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점점 더 성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국, 지금은 미국에 ‘체제 재구성’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체제가 진정으로 전지구화 될 21세기에는 민족/국가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게 한결 더 중요해질 것이다. 13세기에는 ‘핵’과 무관했던 수많은 생활권들이 있었고, 세계체제로부터 철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러기가 힘들다. 아마도 우리들은 현재의 체제와는 달랐던 13세기 체제를 연구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405쪽)
다극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자는 법,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지금 이 시기에 새롭게 와닿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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