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
이성형 (지은이) | 역사비평사 | 2002-09-25
[스크랩] 탱고를 통해 본 아르헨티나 사회
눈빛들의 대화
1997년 어느날 밤, 산 텔모의 탱고 바에서 난 눈빛에서 흘러나온 에로티시즘을 처음 만났다. 그래 탱고도 ‘엿보기’야, 관음증 환자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게임이라고! 난 두 번째 찾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얻은 발견에 흥분했다.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허리 아래나 몸놀림이 아니라 10대의 두 무용수가 서로 교환하는 교태스런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홀렸을까? 그날 난 동료들과 포도주와 반도네온의 흐느낌에 빠져들었다. 동네사람들이 찾는 로컬 바에 동양인들이 자리를 뭉개고 있는 것이 이상했던지 일행 중 누가 나와 노래를 한 곡 하라고 한다. 피아노, 반도네온, 바이올린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지만 탱고 곡을 하나 외우는 것이 있나? 창피스러웠지만 이 항구도시인들이 좋아하는 프랑스 시는 두어개 외울 줄 아는지라 간단한 인사 뒤에 피아노 반주에 시낭송으로 대체했다. 아마도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와 랭보의 '나의 방랑시절'이었으리라.
곳곳에서 박수갈채가 터져나오고 반주자와 탱고 여가수도 난리이다. 여행객이 향수와 방랑을 읊는 것이 그 무슨 대수겠는가? 그러나 주말의 술꾼으로 자리를 함께하는 이 아르헨티노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국정취는 나같은 여행객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특유의 센티멘털리즘이지만 프랑스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르헨티노들도 그것을 충분히 즐기는 모양이다. 그래, 춤도 노래가사도 유행한 곳도 모두 이국정취와 깊숙이 맞닿아있는 것이 탱고라고. 탱고 바는 이 센티멘털리즘과 노스탤지어를 제도화한 자리이고.
탕게라와의 조우
탱고를 추는 여자 무희(탕게라) 나이가 15세가 넘었을까? 몸에 짝 붙는 검은색 무희복이 어울리지만 너무 말라서 툭 치면 쓰러질 듯 가냘프다. 나의 시낭송에 보답을 하겠다고 손을 내민다. 거듭 거절한다. 탱고의 탱 자도 모르는 목석 같은 남자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계속 나오라고 한다. 주변에서도 손뼉을 친다. 탕게라는 그냥 자신의 리드에 따르면 된다고 자꾸 나오란다. 반주자들도 부산을 떤다. 블루스 스텝도 잘 못 맞추는데 그 어려운 탱고를 어떻게 추노? 결국 뻣뻣한 몸을 5분 간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 실력을 간파한 젊은 무희는 점잖게 손을 내린다.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왔다.
무대는 한 평 남짓으로 매우 좁다. 스펙터클 탱고가 아니라 좁은 공간을 절묘하게 휘두르는 춤사위가 볼 만하다. 위험한 거리를 유지하며 남자의 육체는 지배하기 위해 다가간다. 남자의 유혹에 여자는 수동적으로 굴복하지 않는다. 특유의 치고 빠지기로 위험한 거리는 유지된다. 그러는 동안 10대 남녀 무용수의 두 눈빛은 끊임없이 교태스런 신호를 주고받는다. 여기에 탐욕스런 관객들의 눈빛도 함께 참여한다. 탱고 무희들의 춤은 그런 점에서 관객들과도 호흡한다. 한 평 남짓 공간에 온갖 시선들이, 온갖 몸들이 권력을 휘두른다. 남자와 여자, 관객과 무희가 충돌한다. 이국정취를 즐기는 관광객의 시선과 식민화된 몸이 던지는 시선들이 함께 뒹군다.
춤추는 슬픈 생각
산 텔모에서 얻은 탱고에 대한 내 느낌은 계속 강화되어갔다. 가르델의 음반도 들었고 피아졸라의 '반도네온을 위한 콘체르토'도 여러번 들었다. 멋들어지게 숙성된 요요마의 첼로 연주도, 북구의 정서로 피아졸라를 연주한 기돈크레머의 재기도 들어보았다. 가슴을 후비고 들어오는 그 쓸쓸하고 정감어린 기운에 가끔은 진한 감동도 느꼈다. 처절하게도 아름다운 음악이리라. 하지만 이게 아르헨티나, 아니 부에노스아이레스 음악이란 흔적은 어디 있지? 반복해서 물었다. 탱고 음악이랑 탱고 가사가 풍기는 정취는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에서 읽었던 도시민의 고독, 센티멘털리즘, 멜랑콜리, 그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더니즘의 진수와 맞닿아 있는데...
그래, 탱고는 토착적인 국민음악도 팜파의 가우초(목동) 음악도 아니야. 오히려 국적불명 코스모폴리탄들의 음악이고 향수를 찾아 헤매는 여행객들의 음악이며 전세계의 이국정취를 재생산하는 파리지앵들의 음악이지. 기껏해야 잠 못 이루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즐기는 처절한 몸짓일 뿐이야. 디세폴로가 말했듯이, '춤추는 슬픈 생각'일 뿐이라고. 춤도 슬픈 생각도 국적은 없잖아.
탱고, 뿌리뽑힘의 찬가
탱고의 전성기는 가르델의 시대였다. 아직도 직직거리는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바리톤 가르델의 목소리에는 전설 속의 한 남자가 뿜어내는 그 열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흉내내어 탱고 노래 음반을 만들었지만 그 결과는 기대 수준 이하였다.
떠나온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돌아간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아세르 아메리카 hacer america'는 금의환향에 해당하는 스페인어이다. 고향 그 언저리 항구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돌아간다'는 메시지는 탱고 노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다. 돌아간다고 함은 뿌리를 내리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했다. 이민자들, 남자 가장은 집에 들어가길 원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탱고 노래는 유럽에서 추방된 아메리카인들이나 또 아메리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윫인들의 방랑가였다. 게다가 이 춤과 노래도 유랑의 역사가 화려하다. 원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창가에서 시작된 이 춤은 자국에서는 풍기문란으로 금지되었다. 그렇지만 파리지앵들이 이 춤을 즐긴 후 국제적 성가를 누리자 아르헨티나 부자들과 중간계급도 슬며시 자신들의 메뉴에 올려놓았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탱고 이야기는 '머리 없는 민족' 이야기이고 '아비 없는 가족' 이야기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다.
아비 없는 가족 이야기
탱고의 가사에는 병적인 구석이 있다. 어디에도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가 집에서 유일하게 상처입은 영혼을 위로한다. 그녀의 말은 법이다. 어머니는 선악 규범을 지배하는 역할 모델이고 지혜로운 조언자이다.
아비 없는 아들은 그저 카페에서 어슬렁거리며 친구와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한다. 이 아비 없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하는 카페는 모방할 역할 연기자가 없는 사회이다. 한번도 자율적인 사고와 독립심을 배양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런 아들이 노동하는 사람들의 집단의식이나 계급적 연대나 국민적 하나됨을 어떻게 학습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탱고 가사는 대단히 비사회적이다. 사회는 개선이 불가능한 '악' 그 자체로 등장할 뿐이다. 친구의 도움과 선의를 예찬하고 그것에 보답하는 것만이 향수 젖은 한 인간의 목표가 된다. 이런 사회의 자본주의가 '친구자본주의 crony capitalism' 이상 어떻게 발전하겠는가?
요부 아니면 마리아
좁은 공간 속에서 남녀는 밀고 당긴다. 여자 무희의 몸은 언제든지 남자의 공격을 되받아치고 방어하며 적당히 유혹하고 다시 도망간다. 그녀의 춤사위에는 남자의 리드를 협상할 수 있다는 여유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젊은 처녀는 끊임없이 마초의 남성을 무시하며 상대방의 거세공포증을 증폭시킨다. 남자는 리드한다고 믿으면서도 두려움에 떤다. 오, 불쌍한 남자여! 비제의 카르멘, 생상스의 데릴라, 슈트라우스의 살로메가 나온 시절 탱고의 춤사위가 완성되었다. 그것도 파리에서. 그러니 여성은 모두 같은 시대에 풍미했던 요부 내지 뱀파이어 형으로 복제되었던 것이다. 이미 낭만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부서지기 쉬운 여성'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런 이미지와 반대로 남자들이 만든 정반대의 이미지가 있다. 탱고 가사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처녀 마리아의 이미지이다. 이 마리아는항상 화사하게 웃으며 외롭고 처량한 한 남자, 귀향길에 올랐지만 반길 이 없는 낙오자를 구원하는 창가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요부나 마리아나 둘 다 동전의 양면이리라. 끊임없이 당하는 남자들의 거울 이미지이리라. 그래, 인생은 가끔 탱고 같을 터이지. 춤으로는 제격이지만 말이야, 아르헨티노들에겐 달콤한 수면제일 수도 악몽일 수도 있겠어.
이성형, '라틴 아메리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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