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아리엘 도르프만, '도널드 덕'

딸기21 2003. 6. 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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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 
How to Read Donald Duck : Imperialist Ideology in the Disney Comic (1984) 
아르망 마텔라르, 아리엘 도르프만
 (지은이), 김성오 (옮긴이) | 새물결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슬픈 사랑이야기이지만 디즈니의 `머메이드(Mermaid)'에 이르면 극단적인 이분법 대결구도로 바뀌어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내용의 단순성은 차치하고, 동글동글 예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행동은 가관이다.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뒤에 안데르센의 책을 본다면 "속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우리 모두 그렇게 속았던 경험이 있다. `마징가Z'와 `요술공주 새리'가 일본만화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똘이장군'이 어린이들에게 반공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는 거친 수작이었음을 알았을 때. 


1971년 칠레에서 출간된 이 책은 바로 그런 `배신감'에서 나온 저술이다. `도널드 덕' 만화의 숨겨진 메시지를 분석한 이 책을 역자는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 제국의 문화상업주의에 맞서기 위한 해독제'라 했는데 그 말이 맞다.


현미경을 들고 샅샅이 들여다본 만화책은 "부자와 무일푼인 사람, 고결한 오리들과 추레한 도둑들 사이의 사회적 차이로 가득차 있다". 원주민들은 범죄자나 열등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디즈니의 메시지들은 2차대전후 미국의 강대국 패권주의, 매카시적인 대결 이데올로기와 일치한다. 말하자면 도널드는 그 시대의 `람보'였던 셈이다.


저자들은 이런 논리가 정확하게 디즈니사의 내부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착취와 제3세계 하청은 자본주의 모범생인 디즈니사의 숨겨진 얼굴이다. 기업만 있고 예술가는 없는 생산체제. 그래서 디즈니의 산물은 오직 `상품'일 뿐 `작품'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도널드 덕 혹은 미키마우스같은 디즈니만화의 스페인어 판에 대한 독해 형식으로 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캐릭터상품과 TV로만 보아온 귀여운 오리들을 생각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오리의 얼굴을 한 독수리(엉클 샘)가 제3세계의 한 나라에서 어떤 횡포를 부렸는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라 생각하면 편하다. 


책이 발간되고 2년 뒤 칠레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 책은 판금과 탄압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오히려 국경을 벗어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국내에서도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 해적 번역본으로 떠돌다가 이번에 정식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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