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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0) 무지개나라 남아공의 내일은

딸기21 2010. 5. 2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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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준비가 끝났다.”
월드컵 개최를 앞둔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중심지 요하네스버그 곳곳에 붙어 있는 문구다. 남아공 월드컵을 바라보는 해외의 우려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지난달 요하네스버그 북부 샌턴 신시가지에 들어서자 힐튼호텔 등 고급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대형쇼핑몰 4곳이 구름다리를 통해 연결된 ‘샌턴시티’ 쇼핑가도 외국인들을 유혹했다.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샌턴을 벗어나면 요하네스버그는 ‘다른 세상’이다. 1994년 백인정권 붕괴 이전까지 번영을 구가했던 옛 도심지역은 이후 발전을 멈췄다. 건물은 70~80년대에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인들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다니는 것을 꺼린다. 흑인 권력이 들어선 후 백인들이 샌턴 지역으로 주거 및 상업 기반을 옮겨가면서 나타난 변화다. 흑인, 백인, 혼혈, 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산다고 해서 ‘무지개 나라’로 불리는 남아공의 현주소다.





요하네스버그 대학 캠퍼스에서 지난달 15일 흑인과 백인 학생들이 각각 따로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 이청솔 기자



남아공의 새로운 도전

남아공은 지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94년 이후 남아공 경제는 고성장을 기록했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정책)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사라진 데다 흑인 노동력이 경제 시스템 안으로 편입된 효과였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남아공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공 사회는 악명 높은 치안 불안, 빈부격차, 고급두뇌 유출, 에이즈, 전력난 등 각종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월드컵을 ‘대반전’의 계기로 삼을 작정이지만 토지개혁이라는 ‘뇌관’이 남아 있어 사회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고급주택들은 대부분 높은 담장을 세워놓고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설치해 ‘자체 방어’하고 있다. 그렇게 해놓아도 잠시 대문이 열린 틈에 강도가 들어와 집안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물건을 훔치는 일이 있을 정도로 치안이 나쁘다고 교민 박대범씨는 전했다.
강영수 코트라 요하네스버그 센터장도 “남아공의 치안상황은 외국인들의 투자를 막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치안불안은 94년 백인정권 붕괴 이후 주요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폭압적 백인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적으로 집권한 정부들은 예전만큼의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흑인 거주지역인 타운십에 주로 존재하던 범죄는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케이프타운대학 사회학과 멜리사 스테인 교수는 이를 ‘범죄의 민주화’라고 부르고 있다.

경제적 불안은 치안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고용불안으로 잠재적 범죄자들이 양산됐다. 94년 20%였던 실업률은 현재 20%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2003년 한때 31%까지 치솟기도 했다. 특히 백인 실업률은 4%에 머무는 반면 흑인 가운데는 약 40%가 실업자다.





전력난도 남아공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8년 초에는 예상치 못했던 정전 사태가 계속 이어져 전력할당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흑인들이 정권을 잡은 후 공공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데 대해 집권세력은 “백인정권 당시 교육 기회에서 철저히 소외됐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교육과정 자체가 달라 흑인들은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수학 과목을 배우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흑인들은 인종 비율에 따라 공무원을 선발하는 정책에 힘입어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거 진출할 수 있었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실력으로만 경쟁을 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민간 부문의 경제력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으로는 ‘흑인경제력육성(BEE·Black Economic Empowerment)’ 프로그램이 있다. BEE는 흑인 기업과 사업가에 대한 전반적인 우대와 특혜 조치인데 이에 힘입어 흑인 중산층이 탄생했다.

그러나 BEE로 인해 유능한 백인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자 ‘두뇌 유출’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죗값을 치르기 싫다”며 외국행을 택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대학에서 만난 백인 학생 에밀(금융관리학과 3학년)은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면서 “BEE는 분명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BEE가 흑인 부호들이라는 또 다른 특권층만 만들었을 뿐 실제 빈곤층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코트라 강 센터장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 BEE가 필요하다는 데는 남아공 재계도 동의한다”며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남아공 사회가 현재 겪는 여러 문제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후유증이다. 흑백 간 경제력 격차가 극복되지 않으면서 사회갈등도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양상이다. 도시를 벗어나면 여전히 백인들이 대토지를 소유하고 흑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농장을 경영하는 등 아파르트헤이트 이전의 경제 구조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토지개혁 이슈가 남아공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부는 2014년까지 농지의 30%를 흑인들에게 재분배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았다. 백인들이 이 방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토지개혁은 물밑에 잠재해 있던 흑백갈등을 노출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요하네스버그 샌턴 지역의 부유층 주택에 강도 침입을 막기 위한 고압 전기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남아공에서 엿본 희망

그래도 요하네스버그대학에선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젊은층은 어떻게든 과거의 갈등을 씻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무지개 나라답게 캠퍼스에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캠퍼스에서 서로 다른 인종의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4%가 “하루에 한 차례도 다른 인종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라온 환경과 문화적 배경이 달라 다른 인종과 어울리기가 쉽지는 않다”면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노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20대 초반인 이들은 16년 전 무너진 아파르트헤이트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다. 공학을 전공하는 흑인 학생 카라보는 “집에서는 여전히 부모가 백인들을 욕하는 것을 듣지만 나는 백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웨스턴케이프주 우스터에 사는 백인 포도농장주 에바(72)도 “과거의 잘못은 우리 세대의 일”이라며 “젊은이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남아공이 큰 혼란 없이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흑인정권을 안착시킨 데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공로가 컸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로, 27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흑백 모두에게 인정받는 리더십으로 사회통합을 가능케 했다. 92세의 고령인 만델라 이후 남아공인들을 하나로 묶어줄 정신적 지도자는 없다. 실제 2007년 만델라 사망설이 나돌자 “이제 백인들이 학살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전국이 들썩이기도 했다. 남아공은 만델라 없이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우스터 | 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에이즈로 남아공서만 연 35만명 사망


지난달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웨스턴케이프주 드두어런스의 한 에이즈 아동 유치원을 찾았다. 해맑은 표정으로 아침식사를 하던 아이들 40여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에이즈 바이러스(HIV)를 몸속에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다. 교육과 건강 관리를 담당하는 이 유치원은 노르웨이 비정부기구가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드두어런스의 한 에이즈 아동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지난달 22일 교사의 도움을 받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에이즈는 남아공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질병이다. 2007년 현재 남아공 인구 4900여만명 가운데 570만명이 HIV에 감염돼 있다. 연간 에이즈 사망자는 35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노동가능 연령층의 4분의 1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받는 사람은 전체의 28%에 불과하다.

에이즈로 신음하는 건 남아공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이 에이즈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겪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HIV 감염자가 무려 2450만명이다. 선진국의 경우 감염자들이 건강관리를 받아 에이즈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지만, 아프리카는 ‘언제 죽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남아공은 에이즈 확산 방지에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다. 90년대 초 에이즈가 한참 퍼질 당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콘돔 사용 캠페인에 대해서 일부 흑인들은 “흑인 인구를 줄이기 위한 백인들의 음모”라고 의심했다. 2000년대 타보 음베키 정권은 “에이즈는 흑인, 라틴계 등을 없애기 위한 음모의 일환으로 꾸며낸 것”이라는 주장으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국민들은 에이즈에 무지했고 사망자는 계속 늘어갔다. 이제 정부가 ‘에이즈 5개년 계획’을 세워 에이즈와의 싸움을 시작했지만 NGO들은 아직도 사람들이 에이즈를 너무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우간다와 세네갈은 아프리카가 에이즈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80년대 자국민 상당수가 HIV에 감염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위험한 성행위를 경고하는 홍보 포스터를 도로에 내걸었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성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92년에서 2002년 사이 임신부의 HIV 감염률은 30%에서 5%로 떨어졌다. 세네갈은 아예 처음부터 에이즈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한 경우다. 콘돔 사용과 검사 실시를 권장해 HIV 감염률이 10년 이상 2%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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