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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2) 최영진 유엔특별대표 인터뷰

딸기21 2010. 6. 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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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의 유엔평화유지사령부(ONUCI)를 찾았다. 이 나라에서는 2002년 남북 간 분쟁이 일어나 유엔 평화유지군 1만명이 파병돼 있다. 반군의 무장해제와 차기 정부를 뽑는 선거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비롯해,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호·재건사업을 관리하는 것이 모두 ONUCI의 일이다.
ONUCI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는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명에 따라 ONUCI를 맡고 있는 최영진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를 만났다. 오랜 외교관 경험과 아프리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대표는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글로벌 이슈들을 마주해야 한다며 한국에 ‘계몽된 국익(enlightened national interest)’의 관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최대표는 “코트디부아르의 분쟁도 글로벌화와 연관돼 있다”는 말로 현지 상황을 소개했다. 이 나라는 1960년 독립 이래로 경제가 괜찮은 편이었다. 사헬(사하라 이남 건조지대)에 위치한 말리나 부르키나파소와 달리 농업 조건이 좋아 언제나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1800만 인구 중 600만명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80년대부터 세계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식민시대부터 이어져온 플랜테이션 농업에 의존하다보니 곡물가 하락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다. 경제가 좋을 때는 이주민들을 데려다 농사일을 시켰는데 카카오, 커피값이 떨어지니 그들을 몰아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서아프리카 내분에도 '글로벌한' 배경이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주자들, 그리고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북부인들이 정부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장기집권을 했던 초대 대통령이 죽은 뒤 정정불안이 가시화됐다. 2002년 대선에서 로랑 바그보 현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북부 주민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무장하고 나서 일종의 내전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유혈충돌은 끝났지만 아직 정부가 약속한 대선을 치르지 않아 갈등이 남아있다. 최대표는 “먼저 갈라진 남과북을 합치는 작업을 할 것인가, 일단 대선을 치른 뒤 화합작업을 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한국의 해방정국을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평화유지와 재건 활동에서 한국이 겪어온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분단 요소가 있는 나라에 선거만 도입하는 것은 큰 분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도가 곧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교육과 문화의 바탕이 없는 ‘선거 민주주의’는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제도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실제 중부아프리카의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서아프리카의 내전지역이었던 라이베리아는 유엔 관리 하에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그 이후’가 없었다. 민주선거가 좋은 가버넌스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재정이 없는 라이베리아에 유엔이 지원을 해줘 군인 2000명과 경찰 4000명을 양성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월급을 줄 예산이 없다. 콩고민주공화국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내전을 끝내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군대를 키웠다. 하지만 역시 그들을 먹여살릴 정부 재정이 없다. 외부지원금은 부패 때문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결과는 악순환이다. 월급을 받지 못한 군인들은 반군처럼 변질돼 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개발' 동아시아 모델엔 신중론

개발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권위주의적 개발과정을 모델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최대표의 접근은 조심스러웠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특수한 과정이었다. 높은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남의 경험을 ‘이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또한 권위주의적 개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과정이다. 그는 “한국은 권위주의적 개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면서 “이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권위주의적 개발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발전모델이 아프리카에서 성공하려면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한 국민 계몽, 좋은 가버넌스를 위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ONUCI는 교육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화유지군의 주요 활동은 무장해제를 점검하고 치안 순찰을 하는 것 뿐 아니라 교육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방 교육시설 확충에 유엔군을 보내자 주민들이 유엔군에 훨씬 호의적으로 변했다.
준비 안된 선거민주주의보다 장기적인 교육·개발을 중시하는 최대표의 생각은 서방 원조공여국들로부터 ‘민주주의를 도외시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최대표는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말해주면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돈을 내주는 서방 원조공여국들과는 생각의 격차가 있다. 이 갭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 동아시아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계몽된 국익'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그는 한국 같은 나라들이 개발과 원조 사이의 갭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본은 기회를 놓쳤다. 서양식 모델에 따라 돈만 냈다. 교육과 문화에 투자,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개발을 도와줄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최대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시각과, 개발이나 경제안정·통합을 우선 필요로 하는 후진국의 시각을 동시에 갖는 것은 힘든 일”이라면서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바뀐, 지구상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대표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을 향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다르고 역사도 다른 곳에서 자기를 키울 수 있다”면서 “서양만 보지 말고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라”고 주문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우리가 많이 뒤쳐져 있었기에 선진국들을 쳐다보며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덜 발전한 쪽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극히 부족하다. 평화유지군 7200명과 경찰병력 1200명, 민간 지원인력 등 1만명이 유엔 깃발 아래 ONUCI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 등 남아시아 파견인력과 아프리카 주변국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은 최대표 외에 일본인 2명과 한국 군인 2명, 중국인 8명이 전부다. 그나마 중국은 평화유지군 파병 2년만에 전세계에 보낸 병력 규모가 2000명으로 벌써 한국을 넘어섰다.
 

이라크전 파병 과정에서 ‘석유 많은 나라에 군대를 보내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판친 것이 사실이다. 최대표는 “우리가 당장 어떤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범 세계적인 문제에 국제사회의 일환으로 대처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인 국익, 미래를 내다보는 그것이 ‘계몽된 국익’이다”라고 강조했다.


아비장/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그들과 함께 섞일때 희망 있어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활동하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 이충성씨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몰려와 ‘니하, 니하’라고 인사한다”고 전했다. ‘니하’는 중국어 인사 ‘니하오’의 르완다식 발음이다. 키갈리에서 진행중인 대규모 공사는 대부분 중국 자본이 투자된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최근 가입한 산유국 앙골라와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최근 한국 중소기업과 개인사업가들의 진출이 늘고는 있지만 장기적,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지는 못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우스터에 사는 교민 김종우씨는 “한국의 이미지가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좋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비록 장삿속일지언정 중국은 장기적 안목에서 아프리카를 지원하고 투자를 한다. 반면 한국은 ‘아프리카를 알아야 한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거대한 시장’이라고 요란스레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투자를 하지않는다.” 지난 4월 나이지리아 라고스 코트라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곽희윤 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면서 “러시아, 브라질, 인도도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리고 있는데 우리는 정부·기업 차원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생각도, 장기적으로 지원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호기구 피스프렌드의 황학주 대표는 한국인들이 당장의 이익만 바라볼 뿐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케냐·탄자니아의 마사이족은 멀리까지 땔감을 구하러 다니면서도 가까이 있는 나무 뿌리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다 잡아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과 지혜로 안다. 그래서 마사이족 거주지역은 지금까지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이 지은 나이로비의 호텔에는 야생동물 뷔페식당이 있다”. 황 대표는 그것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한국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각성된 젊은이들 중에는 한국을 싫어하는 이들이 벌써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특정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가난한 환경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아프리카에서 만난 한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현지에 나와 살고있는 교민들이 현지 문화를 인정치 않고 교류를 거부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고 조심스레 지적했다. 현지인들을 막연하게 범죄자 취급하는가 하면, 집안일을 돕는 현지 주민을 구타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한 교민은 그곳에 산지 20년이 넘었지만 허름한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일부 남아공 교민들은 흑백 분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곳에서 ‘백인문화’만을 선호하고 유색인 공동체와 거리를 두곤 한다.
강영수 코트라 요하네스버그 센터장은 “한국인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생활방식, 문화체계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 센터장은 “2년전 요하네스버그로 발령받았을 때 두려운 마음에 인터넷 검색부터 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곳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르완다 ‘지구촌나눔운동’의 김윤정 간사는 “쩍쩍 갈라진 땅, 흙집, 원주민들만을 생각하다가 이 곳에 와서 미약하게나마 도시가 발달한 것을 보고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키갈리·라고스·아비장·요하네스버그|구정은·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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