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 독재와 학살, 수단 충돌과 다르푸르의 그림자

딸기21 2023. 4. 23.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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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atellite image shows smoke over Khartoum International Airport on April 16, 2023, as Sudan's army and Rapid Support Forces paramilitary group engage in fighting [Maxar Technologies handout/EPA-EFE]

 
아프리카 북동부 드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수단에 다르푸르라는 지역이 있다. 사하라 사막이 커지고 목초지가 줄어들자 아랍계 무슬림 유목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아프리카계 농경민들과 충돌했고, 중앙정부의 묵인과 방조 혹은 지원 속에 무장집단을 만들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쫓아냈다. 2003년부터 10년 넘게 세계의 ‘인도적 재앙’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분쟁이었던 ‘다르푸르 사태’다. 

수단은 면적이 190만km2에 이르는 큰 나라다. 다르푸르만 해도 면적이 50만km2, 한국의 5배다. 그런데 수도 하르툼의 중앙정부는 다르푸르를 늘 무시하고 소외시켜왔다. 그러던 터에 사하라 주변 건조지대인 사헬의 가뭄이 심해졌고 기근이 일어났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다르푸르 서부 아랍계 주민들은 1980년대부터 잔자위드라는 무장집단을 만들어 약탈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학살과 납치와 노예 매매가 횡행했다. 300만명이 난민이 됐고 3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단의 혼란 뒤에는 다르푸르의 그림자
 
하르툼의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는 잔자위드를 척결하기는커녕 편들고 밀어줬다. 다르푸르의 저항을 찍어누른 뒤 잔자위드를 아예 정규군으로 편성했다. '신속지원군(RSF)'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악명 높은 군벌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를 2013년 지휘관으로 앉혔다. 출신 씨족의 이름을 따서 '헤메티'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다갈로는 정규군이 된 옛 민병대 조직에 다르푸르의 자기 사람들을 앉히고 사병처럼 운용했다. 또한 금광, 목축업, 인프라 건설 등 온갖 사업에 손을 대 돈을 챙겼다. 
 

Darfur refugee camp in Chad, 2005. WIKIPEDIA


오랜 독재는 적을 낳는 법. 알바시르가 키운 군 장성 압델 파타 부르한이 2019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하르툼에선 알바시르의 30년 독재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부르한은 시위대에 총구를 들이대고 권력을 잡았다. 독재자를 등에 업고 출세한 다갈로는 그 독재자를 몰아낸 쿠데타에 재빨리 가세했다. 자신을 키워준 알바시르와 손절하고 부르한 장군에게 붙어 ‘하르툼 학살’의 악역을 맡은 것이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숱한 주검이 나일 강에 던져졌고 수백 명이 끌려가 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다. 
 
[Al Jazeera] Sudan unrest: What are the Rapid Support Forces?
[더컨버세이션] Explainer: tracing the history of Sudan’s Janjaweed militia
 
다갈로와 마찬가지로, 부르한에게 정치적 발판이 돼 준 곳 역시 다르푸르였다. 다르푸르 정규군 사령관을 지낸 부르한은 지금은 독립국가가 된 남수단과의 전쟁에서도 수단군을 지휘했고 2018년 육군 참모총장이 됐다. 알바시르가 궁지에 몰린 사이에 슬그머니 중장으로 진급하더니, 쿠데타 뒤 과도군사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수단인들이 보기에 실세는 부의장인 다갈로였다고 한다. 하르툼의 시위대를 짓밟고 알바시르 잔당들을 몰아낸 주역은 다갈로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수단의 통치자로 만들어준 다갈로의 군대가 이제는 부담스러워진 부르한은 군 편제를 바꿔 잔자위드 세력을 몰아내려 했고, 거기 반발한 다갈로는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지역·종교 갈라놓은 독재자들
 
이것이 2023년 4월 수단에서 ‘두 군벌의 싸움’으로 알려진 충돌이 일어난 배경이다. 그 중심에는 다르푸르에서 잔뼈가 굵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 혼란을 이해하려면 수단 내부의 정치사정뿐 아니라 이 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치적인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A portrait of General Mohamed Hamdan Dagalo is seen on a door of an RSF vehicle before a rally [File: Yasuyoshi Chiba/AFP]


알제리와 콩고민주공화국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수단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아라비아 반도와 마주보고 있다. 인구 4800만명 중 70%는 아랍계이고 나머지는 베자족, 누바족, 푸르족 등의 아프리카계다. 역사는 이집트 못잖게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500~1500년 케르마 왕국이 있었으나 이집트 신왕조에 복속됐다가 기원전 8세기에 쿠쉬 왕국이 세워져 1000년을 갔다.
 
기원후 4세기에 쿠쉬가 무너진 뒤 ‘누비아인’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여러 왕국을 세웠다. 하지만 14~15세기 이후 아랍계 유목민들이 들어오면서 이슬람화됐다. 중부와 동부는 16세기부터 300년 동안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향권 하에서 ‘푼지스탄’ 혹은 ‘푼지 술탄국’이라 불린 흑인 무슬림 왕국이 지배했고, 서부의 다르푸르는 케이라 왕조라는 별도의 나라를 유지했다. 
 
19세기에는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이 수단을 점령하고 노예 공급처로 삼았다. 그후 수십년은 이집트와 영국이 수단을 공동통치했다.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영국군을 축출한 이집트 새 정권은 수단을 놓아주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1956년 수단은 독립국으로 재탄생했다. 
 


이후의 역사는 쿠데타와 군부 독재로 점철됐다. 1969년부터 16년간 집권한 자파르 누메이리는 사회주의자이자 범아랍주의자로 이집트의 나세르를 추종했고, 리비아의 카다피와 가까웠으며, 한동안 마오쩌둥주의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소련 반정부진영의 쿠데타 시도를 겪은 뒤 말년에는 이슬람주의로 돌아섰다. 무슬림이 다수인 북부와 기독교도 및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많던 남부 사이의 갈등이 심해졌다. 내전이 일어났고 훗날 남수단이 갈라져나가게 만든 원인이 됐다.

분란 뒤의 나라들
 
1989년 집권한 알바시르는 이슬람을 내세워 비무슬림 주민들을 탄압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을 구금, 고문, 학살했다. 그의 집권기에 30만~40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는 당연히 나쁘다. 땅도 넓고 자원도 많지만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GDP)이 40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빈국이다. 2021년엔 물가상승률이 380%를 기록했다. 성인 인구 40%는 글을 못 읽는다. 

하지만 알바시르 집권 기간 발전에서 뒤쳐지고 최악의 인권 기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수단은 산유국으로 발돋움했다. 50억 배럴로 추정되는 원유 매장량에 눈독 들인 중국은 수단에 거액을 투자하며 후원자가 돼줬다. 주민들의 가난과는 상관 없이 정권은 원유를 팔아 얻은 이익을 독식했고, 걸프 산유국들에 붙어 서방에 맞서는 시늉을 했다. 알바시르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됐으나 아랍연맹 회원국들의 비호를 받으며 버젓이 걸프를 드나들었다. 
 

Smoke rises from burning aircraft inside Khartoum Airport during clashes between two military factions in Khartoum on April 17.


그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한 자들도 다를 바 없었다. 쿠데타 직후 과도위원회를 꾸린 부르한은 2019년 5월 첫 외국방문으로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갔다. 거기에 지금은 적이 된 다갈로도 동행했다. 다갈로가 실세가 된 데에는 걸프국들의 후원도 한몫 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예멘을 침공했을 때 신속지원군을 보내 도왔고, 리비아 내전에서도 UAE가 밀어주는 진영을 도우려고 병력을 보냈다. 

사우디와 UAE는 미국·영국과 함께 ‘쿼드(4자회담)’를 만들어 수단 사태를 중재하겠다고 했다. 이 참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단 두 나라는 수단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싶어 한다. 홍해 개발에 나선 사우디는 긴 바다를 공유하는 수단이 내전으로 불안정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은 부르한, 다갈로 양측과 분주히 통화하며 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UAE는 수단에 대규모 농업투자를 해놨다. 
 
[Financial Times] Risk of regional powers picking sides raises stakes in battle for Sudan

이집트도 ‘중재’를 빌미로 분쟁에 발을 걸쳤다. 이집트 대통령실은 16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이 “분쟁 당사자 양측에 평화로운 대화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집트는 둘 가운데 부르한 쪽을 지원하는 걸로 알려졌다. 부르한이 군 시절 이집트에서 훈련을 받은 적 있어서 인연이 깊은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국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엘시시가, 부족 간 충돌로 역시 학살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키르와 '평화'를 이야기하는 모순이라니.)
 

Chairman of the Sovereignty Council of Sudan, Gen. Abdel Fattah Abdelrahman al-Burhan and Deputy Chairman of the Sovereignty Council, Mohamed Hamdan Dagalo attend a military graduation ceremony of special forces, in Khartoum, Sudan on September 22, 2021. [Mahmoud Hjaj - Anadolu Agency]

 
뉴욕타임스는 17일 러시아의 용병회사 와그너그룹이 다갈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갈로와 신속지원군은 수단의 주요 금광들을 차지하고 있는데, 와그너에 보안을 맡기면서 긴밀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는 알바시르 시절부터 수단과 밀착해 있었고 한때 수단에 해군기지를 짓기로 합의한 적도 있었다. 알바시르 축출로 허사가 된 줄 알았는데, 다갈로가 홍해의 석유수출항인 호트수단에 군사기지를 짓게 해줄 수 있다며 러시아에 손짓을 했다. 이집트는 뒷마당에 러시아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걸 원치 않는다. 또 나일강 물싸움을 벌이고 있는 에티오피아와의 관계에서 수단이 자신들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데, 이 문제에서도 부르한이 더 협조적이라고 보고 있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이스라엘과 손 잡는 수단…그럼 중국은?

미국도 홍해에 러시아 기지가 들어설까 걱정한다. 하지만 나설 공간이 마땅치 않다. 과거 미국은 남수단과 다르푸르의 ‘기독교도 난민들’을 받아들이며 반이슬람 선전에 활용했고, 알바시르 독재 시절 수단을 압박하고 제재하기 바빴다. 알바시르가 쫓겨나고 수단 정국이 몇번이나 뒤집어지는 동안 일관된 입장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이렇다할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휴전을 지지한다”며 양측에 대화를 촉구했으나 딱히 접근할 통로가 없어 이제와 대화 채널을 “만드는 중”이라고 인정했다. 수단 문제에서는 미국에 지렛대로 쓸만한 것이 딱히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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