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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크로닌, '개미와 공작'

딸기21 2018. 8. 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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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읽지 않은 채 꽂아둔 책들을 꺼내어 읽어야지 하면서 두꺼운 책 목록을 만들었다. 그 중 첫 번째로 꺼내든 것이 헬레나 크로닌의 <개미와 공작 The Ant and the Peacock>(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이다. 사이언스클래식이니 책의 질은 높을 것으로 보이고... 추천사를 읽는데 꽤나 재미가 있었고, 누가 썼나 봤더니 최재천 교수님이다. ^^

 

협동과 성의 진화를 둘러싼 다윈주의 최대의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의 제목이 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개미는 협동, 공작(의 그 쓸모없어 보이는 화려한 꼬리깃털)은 성 선택을 상징한다. 다윈주의가 해결하지 못한것으로 여겨졌던, 다윈주의의 의붓자식 혹은 다윈주의에 반하는 증거 따위로 생각됐던 이타주의(협동)의 진화와 성 선택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잡아서 그것들이 다윈주의 역사 속에 어떻게 해석됐는지 분석한다.



 

제목은 개미와 공작이지만 내용은 공작과 개미다. 성 선택을 제시한 다윈, 그것을 부정하려 한 다윈의 동반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글들을 중심으로 성 선택에 대한 해석의 역사를 훑는다. ‘다윈보다 더 다윈주의자였던월리스는 성 선택이라는 개념을 왜 그토록 부인했는지, 번식을 위한 동성 간의(수컷 간의) 경쟁이라는 재미난 주제가 왜 그렇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뒤늦게야 주목을 받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월리스와 그 후계자들이) 다윈주의에 남긴 유산은, 아주 약간만 과장하자면 성 선택이 없는 100년의 시간이었다. 100년 동안 자연 선택은 다윈이 배우자 선택으로 그 원인을 돌렸던 모든 호화로운 아름다움, 모든 장식적인 동작들을 설명해야 했다. 성 선택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자연 선택은 진정한 원동력으로 보였다. 성 선택은 단지 영향력이 없는 가외의 것이자 중요하지 않은 부가물이며 새의 지저귐이나 깃털색에 실제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됐다. 지난 10여년 동안 성 선택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서 지금은 이토록 성 선택을 무시하는 완강한 태도가 매우 놀랍게 느껴진다. 그러나 거의 1세기 동안 다윈주의적인 사고를 지배했던 것은 실제로 바로 이러한 태도였다. (255) 


당대에는 동물의 미학적감각을 인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암컷들이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한다는 발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더군다나 암컷의 선택(!)에 맞춰 수컷들이 아양을 떨어야 한다는 발상이 거부를 불렀으며 결국 여성주의의 성장이 일어난 뒤에야 성선택에 대한 연구도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었다는 것. 크로닌은 악명 높은 반다윈주의 비평가인 세인트 조지 마이바트의 말을 인용한다. 암컷은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특정인의 것이라기보다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그 화려한 꼬리깃털을 진화시키는 공작이라니! 성 선택 이론이 한쪽으로 밀려난 더 중요한 이유는 이 이론이 항상 의인화의 공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심기를 거슬렸던 것은 암컷의 선택, 더 심각하게는 암컷의 미학적 취향이었다.”(392)

 

다윈주의자들도 이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온갖 변종이 흘러나왔다. ‘원래생물은 화려한 색깔을 기본으로 삼는데 암컷들은 자연 속에서 생존을 하려다보니 보호와 위장을 위해 칙칙한 색으로 바뀌었다는 월리스의 생각도 그런 갈래다. 암컷은 성적으로 수줍어하기때문에 그저 암컷을 자극하기 위해 수컷들이 화려한 장식과 행동거지를 진화시켰다는 해석은 또 다른 갈래다. 암컷이 선택을 한다고 쳐도 어차피 암컷들은 자연 선택에 유리한 적응을 발달시킨 수컷들을 선택하는 것이니, 결국 선택을 해봤자 자연 선택의 대세를 따르는 정도이지 별반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는 또 다른 변종 해석도 있다.

 

이렇게 몇 문장으로 정리해버리면 월리스를 너무 폄하하는 것이 되겠다. 저자는 난데없이 색채 이론으로 빠져버린 월리스의 사고를 파고들어, 어쩌면 다윈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모든 것을 적응으로 보려던 그의 전환에 대한 열정과 초적응주의(239)를 평가한다. 수컷의 화려한 장식들에만 눈길을 줬던 다윈의 한계와 암컷의 볼품없는 모습을 보호를 위한 위장으로 분석했던 월리스를 대비시킨다.

 

힘이 세지 않아도 센 척하는 수컷들의 과장된 표시들을 암컷들이 어떻게 걸러내는가. 다윈은 암컷 공작들의 미학적인 선택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월리스는 다 이유가 있어서 실용적인 선택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취향’(미학적 선택)좋은 감각’(자연 선택에 따라 좋은 적응을 선호하는 선택) 간의 논쟁처럼 성 선택과 관련된 디테일한 이슈들은 재미있다.

 

근대의 발달이 월리스의 구원자가 되어 주었다. 매우 화려하고 낭비적이어서 직관적으로는 전혀 좋은 감각이 아닌 것 같은 특성들이 어떻게 생성됐는지... 특히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아이디어들이 생산적이라고 판명됐다. 그것은 바로 지표, 이해의 충돌, 진화적 군비경쟁이다. 가장 밝은 수컷들은 밝은 색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유용한 자질의 지표이기 때문에 선호될 것이다.
두 번째 개념은 지표들을 실제 가치 이상으로 부풀려서 사기를 치려는 수컷들과 거짓된 광고에 사로잡혀 곤란해지지 않기 위해 속임수를 추적하는 대항 적응을 진화시키려는 암컷들 사이에 진화적 추격이 존재하며, 거기서 암컷과 수컷 사이의 이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낭비적인 증폭에서 벗어나는 일이 양측 모두에게 더 이익이 된다. 세 번째는 암컷들을 두고 경쟁하는 수컷들 사이에서 지속되는 진화적 군비 경쟁의 개념이다. (311)


이타주의에 대한 연구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이들이 개체 차원이 아닌 유전자 차원의 진화 메커니즘에 눈을 돌림으로써 근대 다윈주의(크로닌은 고전 다윈주의 시대와 근대 다윈주의 시대를 구분한다. 참으로 다윈주의자다운 시대구분이다)에 들어와 의문들이 풀려가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동물의 도덕성이라는 오묘하고도 불경스러운 주제에 대한 다윈의 생각과 월리스 등등 당대 학자들의 생각을 설명하는데 꽤 재미있다


이 문제는 도대체 적응을 이끌어내는, ‘진화하는주체가 개체냐 가족이냐 집단이냐 종이냐 하는 본질적인 의문과 닿아있다. 크로닌은 도킨스가 복제자(유전자)와 전달자(개체)의 개념을 명쾌하게 정리하기 전까지(혹은 이기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쓸 데 없는 오해와 분란을 낳기 전까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던 개체냐 종이냐의 논쟁을 설명하는 데에 책의 상당 분량을 할애했다.

 

사회적 행동 혹은 협동이나 이타주의의 문제에 대해 고전 다윈주의는 그다지 관심을 많이 갖지는 않았고명확한 해석도 내놓지 않았다다윈주의는 사회진화론’ 혹은 악명 높은 우생학 등등과 뒤죽박죽 엮였는데 그럼 그건 어떻게 된 거지크로닌은 이 또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해석한다상위 수준(개체가 아닌 집단이나 종)의 설명을 하는 이들의 진짜 관심사는 사회적인 것이다. 처음 반세기 동안 사회적인 적응들을 무시해왔던 다윈주의는 점점 그 주제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관심은 사회적인 특성들에 대한 개체의 적응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공동 특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진화는 전체주의와 희미하면서도 강력한 끈으로 연결된다. 질문은 대개 이 적응들이 그 보유자들에게 어떻게 이익이 되는가?’가 아니라 집단에 어떻게 이익이 되는가?’였다.”(441)


이타주의를 인정하고 상위 수준에 적용한 것은자기희생에 문제가 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었으며... 이 모든 상황들 뒤에는 집단의 복지와 개개 구성원들의 복지 사이에 대체로 아무런 갈등이 없다는또 진정한 자기 사랑과 사회적인 것은 대체로 동일한 것이라는’ 은밀한 가정이 있었다덧붙여 개체와 집단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면 집단이 대개 이길 것이라고 무심코 가정했다. (442)


문제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이타주의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도적 행위는 실제로 셀 수 없는 슬픔을 양산한다. 그러나 다윈주의자들을 멈추게 한 것은 인간의 인도적 행위였다.” 저자는 19세기 진화주의자들 가운데 다윈, 월리스, 토머스 헨리 헉슬리, 그리고 허버트 스펜서 4명의 생각을 좇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다윈주의적 입장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살핀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의 차이를 외우고 싶은 것은 아니니 내용은 생략. 오히려 책의 뒷부분에는 개별 연구나 사례들 중에 재미난 것들이 많았다.

 

이를 테면 이런 것. 군집해서 사는 곤충들 즉 개미와 벌들에게서 어떻게 번식을 포기하고 형제(자매)를 키우는 선택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면서 어쩌다 다른 유전자(수컷)이 끼어들어와 엄마와 결혼했을 때 딸들의 이해관계가 그런 선택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469). 엄마 AA, 아빠 BB, 나와 내 형제 AB... 그런데 내 세대끼리 결혼해 애를 낳으면 AB, BA, AA, BB 복잡해짐. 그냥 엄마가 나랑 똑같은(!) 애들을 줄줄이 낳으세요, 내가 어린 동생들 돌봐줄 테니... “맨델의 느린 걸음이 마침내 유전적인 동일성을 부술 것이고, 번식을 포기한 이타적인개체들을 낳는다고라고라.

 

로버트 피셔의 잡아먹힌 벌레이야기도 재미있다.

 

그의 문제는 맛없는 곤충의 유충들이 자신들의 보호 기제를 어떻게 진화시켰냐는 것이었다. 이미 포식자에게 먹혀 버린 개체들에게 맛없음이 어떤 이점을 줄까? 피셔는 포식자가 불쾌한 경험을 해서 미래에 비슷한 먹이를 피하도록 배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 희생자의 한배의 형제들 중 잡아먹히지 않은 새끼들이 희생자와 가깝게 살았다면, 그들은 이 희생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451)  


오래 전 만난 캐나다인 친구가 곰 얘기를 했던 게 생각났다
. 이 책의 앞머리에는 추격하는 곰 앞에서 자기 친구보다 빨리 뛰기 위해 운동화로 갈아 신는 캐나다인 다윈주의적인 전략가이야기가 나온다. 내게 곰 이야기를 해준 캐나다인 친구의 말은 그것과 정반대로, 이타주의적 적응전략에 해당된다. 자기도 어느 교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곰을 만나면 죽더라도 반드시 주먹을 휘두르며 싸워야 한단다. 그래야 곰이 앞으로 사람을 만나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한다고. 곰을 만날 일도 없지만, 살아남을 사람들을 위해 어차피 죽을 것 덤벼보고 죽자 하면서 곰과 싸울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다.

 

호혜적 이타주의를 진화시킨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기꾼을 잡아내는 데에 유독 유리하게 진화한인간의 논리구조를 들춰낸 연구도 눈에 띈다.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표현하자면 돈을 내고 물건은 안 가져감이라는 답을 골라야할 논리문제 풀이에서도 사람들은 흔히들 돈도 안 내고 물건을 가져감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코스미디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속임수 찾기를 실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확실히 자연 선택은 타인을 도우려고 우리의 경계심을 조정하지 않았다. 상호 호혜적 이타주의자는 대가를 지불한 사람이 이익을 얻도록 보장해야 할 필요가 없다.”(537)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이 이익을 얻지 못하게끔 감시하는 감각을 진화시키는 것이 필요했을 따름이다.

 

자연 선택은 우리에게 속임수 찾기 절차를 추구하는 경향을 준 것 같다. 그것이 적응적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적응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논리에 대한 도덕의 승리다. 만약 우리가 상호 호혜적 이타주의 체계를 운영하는 도구를 진화시켰다면, 우리는 이 도구를 능률적으로 유지시키는 수단이 문화적으로(혹은 생물학적으로) 나타나리라 기대할 수 있다. (539)

 

또 다른 연구 사례. 왜 젊은 남성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가? 왜 사소한 언쟁을 하다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가? 모든 남성이 범죄자는 아니지만 살인범들 중에는 20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가?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살인이 다윈주의적인 적응의 원료, 즉 이해의 충돌의 산물이기 때문에 살인 패턴을 조사하기로 결심했다. 살인 행위가 적응이라고, 즉 살인자에게 다윈주의적인 이점이 있다고 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는 방식으로 인간의 마음이 적응했다고 가정했다. “사소해 보이는 모욕은....평판, 체면, 상대적인 사회적 지위와 오래 지속되는 관계라는 더 큰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해돼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회적인 환경들에서 남자의 평판은, 부분적으로는 폭력적인 위협이 지속되는 정도에 달려 있다.” 평판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다윈주의 이론과 성적 경쟁의 강력한 영향에 관심을 돌린다.
분명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인 지위의 차이가 번식 성공에서의 편차와 일관되게 이어지는 생물이다. 여러 분야의 증거들이 인간의 일부다처제적인 경쟁의 역사를 가리킨다. 번식 성공도의 차이는 여성들에서보다 남성들에서 더 크며, 사회적 지위와 더 강력하게 연결돼 있다.” (541-542)

 

다윈 시절에는 생물학적 비용에 대한 인식이 적었기에 성 선택과 이타주의 두 주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윈도 월리스도 대충 얼버무리거나 엇나간 길로 가기 일쑤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연구는, 과학은, 결국 시대의 영향 속에 존재한다. 다윈과 월리스의 생각의 틀이 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반격에 대응해야 한다는 필요도 있었고 그것이 당시의 논쟁을 규정했다고 크로닌은 설명한다.

 

전략적 사고는 고전 다윈주의에서 주요한 변화가 일어난 뒤에야 발달할 수 있었다. 첫째는 지불 비용은 더 크게, 얻을 이익은 낙관적으로 의식하는 적응에 대한 시각이다. 둘째는 행동, 특히 사회적 행동에 대한 강조의 증가다. 고전 다윈주의는 적응의 이점을 찾아내는 데 능숙하지만 적응의 비용을 고려하는 데는 다소 서투르다. 근대 다윈주의는 적응의 비용에 훨씬 신경을 쓰며, 이익은 더 작게 평가하다. 근대 다윈주의는 적응이 지불한 희생을 인정하는 데 더 빠르면서, 적응의 이점은 약화시키고 덜 좋게 보는 시각을 택한다.

비용에는 물질과 에너지와 시간의 고갈, 그 외 유기체가 겪는 다른 변화들, 기회비용과 아마도 환경의 낙후가 포함될 것이다. 따라서 적응은 본질적으로 생성 과정에서 손실을 낳는다. 고전 다윈주의는 적응을 이익과 손실 사이의 절충이라기보다는 명백한 이익으로 보았다. (121-122)

 

(고전) 다윈주의에는 설계를 거스르는 불완전한 지점들을 기록해야 할 필요도 있었지만, 동시에 변이를 적응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훨씬 더 많았다. 대조적으로 근대의 다윈주의는 다양성을 자연 선택의 실수로 설명하기보다 기대되는 바로 종종 강조한다. (다윈이 관찰한 타조 레아의) 무신경해 보이는 알 낳기 습관은 더 이상 단일한 행동 적응이 불완전하게 실행된 결과로 간주되지 않는다. 알을 돌보는 방식은 다양하다. 알을 품는 행위와 품지 않는 행위 모두에 이익과 비용이 따른다. 고전 다윈주의는 부화한 알과 버려진 알의 무더기에서 무엇보다 먼저 의식적인 설계의 부재를 가리키는 불완전한 본능을 본다. 근대 다윈주의에게는 동일한 무더기가 혼합된 전략을 선택한 결과로 비추어진다. (125-126)  


현대의 다윈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다윈 시절 못잖게 논쟁은 많았다
.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 한 그룹처럼 분류되고,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이 또 다른 그룹(환원주의자들 -_-)로 분류되는 식으로 러프하게 구분하자면, 크로닌은 후자 쪽이다. 굴드는 세상을 떠나셨을 뿐 아니라.... 단속평형설 같은 것들의 의미는 여러 책에 계속 나오지만 도킨스나 윌슨의 생각들이 이제는 거의 대세(?)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아닌가 싶다. 크로닌은 도킨스와 윌슨의 몇몇 표현들이 불필요한 반발을 불렀음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타주의에 대해 현재 의견 일치에 도달한 사실들의 측면에서 역사를 조사하면서 이 장에 접근하고 싶었다. 그러나 수사가 내 방식을 방해했다. ... 문헌 속을 거니는 동안에 나는 변함없는 후천론자들과, 과격한 유전자 결정론자들과 그 외 여러 전설 속의 야수들을 마주쳤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그들은 대개 오직 두 장소에서만 서성거리고는 했다. 성명서의 진술문 속이나 또는 자신들의 반대자들에 대한 열띤 묘사 속이었다. 나는 어느 쪽도 과학으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의 관심사는 과학이다. 인간의 이타주의에 대한 견해들을 분류하려는 시도는 그들이 너무 다양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너무 비슷해서 어렵다. (601)

 

다윈 등등의 책들을 계속 인용하면서 소개하기 때문에 다윈의 원저작들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보려니 많이 아쉽긴 했다. 다윈이 쓴 책은 한 권도 본 적 없는데 <종의 기원>을 아무래도 읽어야 하려나?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를 일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무엇보다 글이 매끄럽고 재미있어서 682쪽이나 되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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