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또 공격하고 있다. 현지 방송 화면에 잡힌 가자지구의 모습은 참혹하다. 화면을 캡처한 사진 한 장은 도저히 눈뜨고 똑바로 바라보기조차 힘들다. 남성 두 명이 아이 하나를 들어옮기고 있다. 아이의 고개는 뒤로 꺾였고 몸은 축 늘어졌다. 얼굴은 뿌연 잿가루에 뒤덮여 있다. 차마 신문 지면에 실을 수도 없었던, 글자 그대로 지옥의 한 장면이다.
이스라엘은 공습을 하기 전에 미리 ‘가짜 미사일’로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에게 친절히 경고해준다고 주장한다. 알아서들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만 뚫리고 사방이 막힌 감옥’과도 같은 가자지구에서,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서쪽의 지중해 해안도, 남쪽 이집트와의 국경도, 북쪽과 동쪽의 이스라엘 국경도 모두 막혀 있는데 그들더러 어디로 피하라는 것인가. 인구 180만명 중 100만명 이상이 난민인 가자지구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자 세계 최대의 감옥이다.
무너진 건물 터에서 잿가루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진 아이들을 나르는 사람들, 피흘리는 아이를 끌어안은 부모들. 그들에게 여기가 지옥이 아니고 어디일까. 가자지구는 인구 절반이 14세 이하의 아이들이다. 도망칠 곳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 이보다 참혹한 광경은 없다. 16일에는 가자시티 부근 바닷가에서 이스라엘 해군이 포탄을 발사했다. 그 희생자는 바닷가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어린이 4명이었다.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가자지구 북쪽, 이스라엘 스데롯의 언덕 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가자 공습을 지켜보는 이스라엘인들의 사진이다.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미사일들이 하늘에 흰 줄을 그리며 날아갈 때, 미사일이 가자지구의 어느 구석엔가 내리꽂히고 폭발이 일어날 때 그들은 박수를 친다.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린 이는 덴마크 신문 크리스텔리크트 다그블라트의 중동 특파원인 알란 소렌센이다. 그는 가자지구 학살극을 ‘실시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하며 ‘스데롯 시네마’라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팝콘을 먹으며’ 가자 공습을 구경하는 이스라엘인들의 또 다른 사진을 보도했다. 사람들은 웃고 있다. 더운 여름날 동네 빈터에 바람 쐬려 나온 평범한 주민들처럼 보이는 이 사람들. 이 곳도 지옥이다. 스데롯 시네마의 관객들이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면, 누가 지옥에 있을 것인가.
루쉰은 처형당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사진을 보고 통탄한 적 있다. 일본군이 러시아군과 싸워 승리한 뒤 전시한 사진들이었다. 그 중에는 러시아 첩자노릇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처형된 중국인 사진도 있었다. 이 나라 저 나라 첩자로 이용당하고 결국 목숨을 잃는 민초들. 그들이 숨져가는 장면을 구경하던 사람들 역시 같은 중국인들이었다. 루쉰은 이를 ‘식인(食人)’이라 지칭했다. 하지만 ‘스데롯 시네마’의 관객들은 루쉰이 질타한 중국인들보다 훨씬 잔인하다. 중국인들은 누가 적인지, 왜 처형당하는 지도 모른 채 구경났다고 몰려나온 사람들이었다. 반면 스데롯의 관객들은 자기들이 땅을 빼앗고 내몬 사람들, 이웃이자 공존해야 할 사람들이 죽도록 몰아가면서 거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루쉰의 <광인일기>는 수천년 중국 역사 속에 뿌리박인 ‘식인의 문화’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광인의 몸부림을 다룬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잡아먹어야 한다는 극악한 정신구조 속을 맴도는 사람들. 그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광인의 외침은 “아이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식인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을 통해 구원의 희망을 얻고자 했다. 스데롯의 이스라엘인들은 바로 그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 사냥터에 더욱 막강한 무기를 들이대라며, 미국은 이스라엘의 대공무기 ‘아이언돔’ 지원예산으로 15일에도 3000억원이 넘는 돈을 책정했다. 세계의 지옥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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