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은 이렇게 3년 만에 끝나는 것일까. 민주화 열기가 한창이었던 중동·북아프리카에서 3년 만에 ‘과거로의 회귀’ 바람이 불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이 다시 들어서거나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이슬람주의자가 집권하고, 내전과 테러공격이 기승을 부린다. 하지만 아직 ‘봄이 끝났다’고 단언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이 모든 과정 또한, 민주주의를 향한 힘겨운 역사의 여정 속에 있는 한 국면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이집트에서는 새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가 취임했다. 엘시시는 카이로의 헌법재판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첫 TV 연설을 하면서 “화해와 관용의 기반 위에 새 시대가 세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해와 관용을 얘기하면서, 엘시시는 “폭력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엘시시의 취임식 자체도 삼엄한 경계 속에 치러졌다.
국방장관 자리에 있으면서 지난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엘시시는 정치적 반대 세력인 이슬람 조직 무슬림형제단을 해산시키고 형제단 시위대 수백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취임식 전날에도 이집트 법원은 형제단 간부 10명에게 사형판결을 내렸다고 알아흐람 등 현지언론들은 전했다.
이집트 국민 절반 이상은 군부정권에 ‘지지 유보’
엘시시는 지난달 26~28일 치러진 대선에서 96.9%를 득표했다. 수치로만 놓고 보면 민주선거였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의 압승이다. 하지만 투표율은 매우 낮았다. 당초 투표를 이틀 동안 하기로 했다가 투표율이 너무 낮아서 하루 연장했는데도 최종 투표율은 47.4%에 그쳤다. 유권자 절반 이상이 투표소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한 마디로 엘시시를 지지한 사람들만 투표를 한 셈이다. 엘시시의 당선을 ‘이집트인들이 민주주의보다는 안정을 바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기엔 석연찮다. 그보다는, 국민들 절반이 군부정권에 대한 지지를 유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동의 왕정 국가들은 이집트에 새 정권이 들어선 것을 환영했다. 지난해 7월 쿠데타로 쫓겨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은 무슬림 형제단을 조직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연합, 오만 등 걸프 왕국들은 이 조직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슬람 정치세력들 중에서도 형제단의 운동은 과거 군부 독재정권이나 왕정에 반대해온 풀뿌리 민중 운동의 성격이 짙다. 그래서 무르시가 쫓겨나자 걸프 국가들은 이집트 군부를 대대적으로 지원했고, 수백억 달러를 내줬다.
이번에 집권한 엘시시는 미국 유학파로 미국과도 친하고, 걸프 왕국들로부터도 지원을 받는 셈이다. 엘시시는 우선 치안과 경제회복에 주안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여론을 억압하고 극도로 통제하면서, 걸프에서 들여온 돈으로 당장 서민생활의 급한 불을 끄는 식의 정치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뿐 아니라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도 대선이 실시됐다. 시리아 내전으로 15만명 넘는 사람들이 숨졌으며 23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시리아 내부를 떠도는 유민들까지 포함하면 내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천문학적인 숫자다. 하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3일 치러진 대선에서 아사드는 3연임을 확정했다. 시리아에서는 그동안 대선이 제대로 치러진 적이 없다. 여러 후보가 나온 대선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사드를 위한 정치적 요식행위에 그쳤다. 국제사회는 이번 선거를 ‘피의 선거’라고 비난했지만, 아사드 대통령은 이미 내전에서 승기를 잡았고 난민들은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다시 내전 위기로 치닫는 리비아
리비아 상황도 심상치 않다. 세계 최장기집권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쫓겨난 이후, 지난 3년 동안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는 새 정부가 세워졌고 인권변호사 출신의 알리 제이단 총리가 잠시 집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전 때 무기를 손에 쥔 무장세력들은 내전이 끝난 뒤에도 총을 내려놓지 않았다.
특히 카다피에게 강력 저항했고 내전 승리를 견인했던 동부 지역의 무장세력들이 지금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부 중심도시 벵가지 등에서는 이들이 자치정부를 멋대로 선언하기도 했다. 최근 퇴역장성 칼리파 하프타르가 이끄는 동부 세력이 반정부 투쟁을 선언하면서 내전 상태 가깝게 변해버렸다.
리비아의 혼란에는 석유 이권 문제도 결합돼 있다. 동부 무장세력과 부족집단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동부의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 이익을 트리폴리 중앙정부에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동부 뿐만 아니라 수도 트리폴리에서조차도 치안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무장조직들이 구역을 나눠 자기들이 치안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형편이다.
제이단 총리는 작년에 무장세력에 납치된 적도 있었다. 결국 지난달 말 제이단은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이슬람주의자인 아흐메드 마티크 총리가 취임했다. 그런데 취임하자마자 지난달 27일 마티크 신임총리 집이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지난 9일 법원은 의회의 마티크 총리 임명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순식간에 총리가 바뀌었다가, 다시 위헌결정으로 정부 최고책임자 자리가 공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패'를 말하기에는 이르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아랍의 봄은 실패한 듯 보인다. 거리를 메웠던 희망의 함성은 사라졌고 국가들은 하나둘 아랍의 봄 이전으로 회귀했다. 예멘은 장기집권 독재자 압둘 살레가 쫓겨난 뒤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테러단체의 온상이 됐다.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도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소강상태다.
아랍의 봄이 퇴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젊은층이 중심이 된 봉기 이후, 정국을 주도하며 민주주의 정착을 이끌 정치집단이나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집트도 리비아도, 독재정권의 억압 속에서 정당정치가 이뤄지지 못했던 나라였다. 자유주의적인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적 움직임으로 만들어낼 대안적인 시민사회 세력이 형성되지도 못했다. 이들 국가에서 조직력을 갖춘 집단은 이슬람 단체와 군부뿐이었다.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이 두 세력은 한쪽이 집권하면 한쪽이 반격하고 나서는 식으로 반목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기나긴 과정이며, 민주주의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직 “실패”라고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많다.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도 나폴레옹 체제라는 반동 국면을 겪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는 “아랍의 봄이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기회의 창은 이제 막 열렸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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