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

딸기21 2014. 3. 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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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

폴 폴락, 맬 워윅 지음. 이경식 옮김. 김정태 감수 및 해제. 더퀘스트. 3/23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부실한 책이다. 일단 혹평부터 하자. 유엔과 정부들이 지금까지 해온 제도적, 구조적인 빈곤 퇴치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아니올씨다. 그럼 누가 성과를 거둬왔나요? 성과가 미흡하므로 좀더 노력을 하자, 라고 이야기해야지 '성과 없었다, 이제부터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기업활동을 통해 지구를 구하겠다'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며칠 전 읽은 마이클 에드워즈의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책이지만, 굳이 두 책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발상이나 기본전제의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 <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는 함량 미달이기 때문이다. '적정기술은 죽었다'면서 '적정(기술 제품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대안이라 주장하는데, 거론하는 '성공사례'라고는 저자가 개입된 '페달펌프' 하나뿐인 식이다. 개발경제학 혹은 개발원조와 관련된 책들을 그래도 많이 읽은 편인데, 이렇게 부실한 책은 처음 본다. 이런 분야의 고전이 된 프라할라드의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같은 책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이 부실함이라니. 책 표지에는 글자가 무지 많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새로운 발상",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삶을 바꿀 희망이 담겨 있다" 등등. 쯧쯧... 그래서 지구를 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한 뒤, 맨 마지막에는 삼성이 말라위 등지에서 했던 '햇빛영화관' 사업을 국내 감수자가 상세히 설명해놨다. 


이렇게 혹평을 하면서 독후감은 왜 쓰고 있느냐.


책은 부실한 주제에 한없이 오만하다. 박애자본주의자들의 시장 논리에 대한, 마이클 에드워즈의 절절한 지적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구한다니까, 라면서 아무 근거도 내놓지 못하는 이 오만함. 그러면서 구호와 개발원조와 제도적 개혁의 수많은 노력들을 밑도끝도 없이 깎아내리는 이 오만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싶다. 


하지만 문제는 이거다.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를 비롯해, 원조/개발/구호 등등과 관련된 책들을 읽다 보면 늘 드는 생각. 빌 게이츠 류의 박애자본가들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며 한계와 개선점을 지적하는데, 한국에는 그나마 그런 박애자본가들도 없거니와 오로지 천민자본주의만 보인단 말이지. 


일전에 아프리카와 관련된 미디어-미디어수용 태도의 문제에 대해 '전문가 조사(안타깝게도 이 연구를 하는 교수님은 나같은 사람조차 전문가의 풀에 집어넣으셨다. 한국엔 아프리카 전문가가 얼마나 없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에 응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내세운 이미지 광고라든가, 아프리카를 천편일률 기아의 검은 대륙으로 묘사하는 미디어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조사였던 듯 싶다. 하지만 한국에서 긴급구호 자금을 모집한다는 것의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만은 없고, '올바른 방식'에 대한 고민이 몹시 중요하지만 어쨌든 돈을 모아야 한다는 문제... 등등에 대해 답변서에 적어 넣었다.


카너 폴리의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의 독후감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했는데, 인도주의 혹은 인도적 개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국의 시민들 사이에서는 인도주의 자체에 대한 관심부터 찾고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든다는 것. 그래서 어떤 것이 됐든 남을 돕기 위한 노력에 대해 함부로 비판하기조차 미안하게 만드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는 것. 요는, 한국 사회가 아프리카 긴급구호의 온정주의를 탓하고, 인도주의의 오용을 탓하고, 박애자본주의의 한계를 탓할 때냐는 거다. 오해하고 과신하고 오용할 인도주의가 너무나도 부족한 마당에. 


그게 현실이라서 아쉽다는 거다.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다. 물론 적정기술로 적정가격에 적정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세계의 '바텀 빌리언(피라미드 밑바닥의 10억명'에게 공급하는, 적정 비즈니스가 활성화된다면 좋은 일이다. 좋은 기업활동이다. 자기들이 세상을 구할 테니 나머지는 가만히 있으라고 감히 오만하게 주장하지만 않는다면(그런데 사실 이렇게 오만방자한 주장을 노골적으로 담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런 부실하고 오만한 책이라도 어쨌든 앞으로 많이 나와서 사람들 사이에 얘깃거리가 되고, 지구의 '밑바닥'에 있는 10억 명 내지는 30억 명 가까운 사람들의 현실이 관심사가 되고, 아니 최소한 세상엔 미국과 유럽만 있는 게 아니라 수십억명의 밑바닥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라도 알게 된다면. 오만하고 부실할지언정, 바텀 빌리언을 바라보며 사업하자는 주장이 오로지 천민자본주의의 한 길로만 달려가는 비즈니스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낫지 않을까. 생각이라도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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