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아랍의 봄’ 3년, 이집트 카이로는 지금 ]군부, 생수·컴퓨터 판매까지 손대… “이집트 경제의 40% 장악”

딸기21 2014. 2. 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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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 가말(가명)은 이제 겨우 23살이지만 지금까지 스무 가지가 넘는 일을 해봤다. 웹디자인도 해봤고, 영어 통역과 가이드도 해봤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케밥요리도 해봤다. 건설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말은 공부를 하면서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어머니는 정부 산하 기업에서 일하지만 월급이 2000파운드(약 30만원)에 불과하다. 가말이 이일 저일 하면서 버는 돈은 월 6000파운드 정도다. 다행히 국립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학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이집트에서는 미래가 없다"


가말 스스로 말하듯, 그는 ‘예외적인 경우’다. 가말처럼 한번에 너댓가지 일을 하면서 억척스레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그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거나’ 혹은 ‘게으르고 의지가 없는’ 이집트인 친구들과의 관계를 거의 끊으면서까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를 공부하고 웹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대학 과정을 3년만에 마치고 외국에서 공부하기 위한 장학금을 따냈다. 

 

그는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많고, 외국인들이 여전히 이집트를 ‘사막에 낙타가 다니는 곳’으로만 인식하는 것에 기분나빠한다. 외국인들이 어떻게 보든 이집트의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미래와 돈벌이에 대해서라면, 그는 이집트에서 희망을 못 찾는 듯했다. 외국에 가서 일자리를 찾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그러고 나서 이집트에 돌아와 사업을 하는 게 그의 꿈이다. 


이집트 정부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기 위해 구직자 등록을 받기 시작한 10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한쪽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앞에 청년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카이로 _ 구정은 기자



카이로 시내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9일(현지시간) 찾아갔다. 누나는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집에 있다. 이집트에서 여성 실업률은 50%가 넘는다. 가말은 열살짜리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유학을 가고 나면 이 아이 공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직 20대 초반인 가말의 표정은, 자식을 두고 일하러 떠나는 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는 “이집트에서는 꿈을 이룰 수 없다”며 나중에 동생도 외국에서 공부시키고 싶다고 했다.


대학 나와 콜센터 취직, 월급은 20만원 


가말의 동창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대부분 콜센터나 의류공장에 취직했다. 카이로에서 제법 괜찮다고 하는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가 워낙 모자란다. 콜센터나 의류공장의 월급은 매우 적다. 의류공장에 다니는 친구의 월급은 20만원이 채 못 된다. 이걸로는 먹고살기 힘드니 다들 한두가지 부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은행이나 좀더 나은 직장에 취직하려고 기회를 노린다. 

 

가말에게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첫째로 큰 기업 자체가 별로 없다는 것, 둘째로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질이 낮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꼽았다. 가말은 경영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는데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은 여전히 상업부기 수준이었다. “그런 것을 요즘 누가 쓰나요.” 부유층 출신들은 영어를 아랍어처럼 구사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은 영어를 배우기도 힘들다. 교육수준이 떨어지는 국공립대학이 아닌 카이로아메리카대, 카이로브리티시대 같은 사립대학에 다니면 영어와 함께 훨씬 좋은 수업을 받을 수 있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다.

 



"보조금 끊는다는 소문만 돌면 기름값 빵값 뛰어"


나일강변의 고급주택가 자말렉을 지나, 도키 지역에 있는 솔리만 고하르 시장에 들렀다. 과일과 빵을 내다파는 가게들 한 옆에선 이른 시간부터 카페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남성들을 볼 수 있다. 혁명 이후 한때 연료부족과 식료품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최악의 시기는 넘긴 듯했다. 적어도 카이로 시내에서는 에너지난이나 생필품 공급난은 없다고 했다. 공식 환율은 달러당 6.9파운드, 암시장 환율은 7.2파운드 정도로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물가는 3년 새 많이 올랐다. 혁명의 원인이기도 했던 인플레는 좀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해마다 10% 넘게 물가가 오르고 있고,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인플레가 심각하다. 

 

혁명 뒤 세워진 임시 군정과 그 뒤를 이은 무함마드 무르시 정부, 지난해 7월 수립된 현재의 과도정부 모두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덕택에 환율방어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재정이 고갈됐다. 달러보유고는 2011~2012년 동안 절반으로 줄었다. 공식 물가상승률은 10%대이지만 일곱식구의 가장인 마흐무드(29)가 느끼는 인플레는 ‘40%대’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연료비와 기본식품 구입비를 보조해왔다. 마흐무드는 “정부가 보조금을 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 곧바로 기름값, 빵값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들은 서민을 위한 지출을 일순간 크게 늘렸지만 금세 재정이 바닥났다. 이집트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위축되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2012년 경상수지 적자는 9136억달러에 이르렀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차관 협상도 원활치 않았다.


문맹 많고 실업률 높아... 고질적 문제


하지만 가말같은 젊은이들의 숨통을 죄는 것은 혁명 이후의 일시적 혼란이나 이로 인한 경제지표 하락 같은 게 아니다. 이집트는 그 이전부터 수십년 동안 정체돼 있었다. 중동의 맹주 노릇을 하며 국제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500달러(구매력 기준) 정도다. 아랍의 산유국들은 물론이고, 10년간 전란을 겪은 이라크보다도 낮다. 최빈국 대열에서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다. 오랜 역사와 문명을 자랑하지만 성인 문자해독률은 74%에 불과하다. 여성들 10명 중 4명은 글을 못 읽는다. 실업률이 25%에 이르는데 이 또한 혁명 탓이 아니라 고질적인 문제다.

 

다른 신흥국들이 성장할 때 이집트는 뒤쳐졌다. 연원을 따지자면 경제를 고도로 중앙집중화했던 가말 압둘 나세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뒤이은 안와르 사다트 정권은 자유화를 추진했고, 쫓겨난 호스니 무바라크도 집권 말기에는 외자유치를 위해 애썼다. 특히 2004년 이후에는 잇단 경제개혁으로 민간부문을 키우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부문이 비대하다. 정치연구소에서 일하다 혁명 뒤 정치인이 된 아므르 엘쇼바크 의원은 “중국, 인도, 한국, 말레이시아 모두 큰 기업들이 많은데 이집트에는 유독 없다”며 정부가 여전히 전체 경제의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고용된 사람이 600만명인데, 이들의 급여를 제 때에 주지 못하면 전국적인 혼란이 일어난다. 


"생수사업, 컴퓨터 판매까지 군부 손에"


더군다나 경제의 상당부분은 공식·비공식적으로 군과 연결돼 있다. 한 교민은 “건설·에너지같은 주요 산업은 물론이고, 생수사업이나 컴퓨터 판매까지 군이 손대고 있다”고 말했다. 군이 경제의 15% 정도를 통제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어떤 이들은 “군이 경제의 40%를 장악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이집트 카이로 시민들이 9일(현지시간) 도키 지역에 있는 솔리만 고하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식료품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후 물가 상승률은 조금씩 둔화되고 있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라 서민들의 생활고는 여전하다. 카이로_구정은 기자


이런 이권을 쥔 군은 경제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소속인 무르시 전대통령은 군과 경찰을 개혁하겠다고 선언했다. 위기감을 느낀 군의 조직적 저항이 무르시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과 맞아떨어지면서 지난해의 쿠데타와 무르시 실각이 일어난 것이었다. 군의 돈줄을 건드리려는 정권은 언제든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형제단 막으려, 사우디 등 이집트 군부 지원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무르시 정권 시절에 곳곳에서 전기가 끊기고 마실 물이 모자라고 에너지가 부족했는데, 무르시가 쫓겨나자 이내 전기사정이 양호해졌다는 것이다. 군이 무르시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기 위해 공작을 편 것일 수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형제단의 세력이 커지는 걸 경계해온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무르시가 축출되자 앞다퉈 이집트 군부와 과도정권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이집트 관영 알아흐람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달 이집트에 40억달러 규모의 추가원조를 해주기로 했다. 일부는 차관의 형태로, 일부는 석유로 제공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부 재산을 건드리지 못하고 개혁에 실패한다면, 겉으로는 민주화가 되더라도 이집트는 남의 돈에 기대야 하는 신세를 면키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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