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후세인 재판 계기로 본 반인도범죄 재판

딸기21 2005. 10. 2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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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옛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재판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열렸다. 후세인 재판은 이라크 역사에서 어두었던 한 시대의 종말을 보여주는 매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계기로, 대량학살과 고문 등 반인도 범죄 재판의 기준과 유효성에 대한 논란도 함께 일고 있다. 후세인 정권의 피해자들은 강력한 처벌을 외치고 있지만 서방의 인권단체들은 `보편적 인권'의 잣대를 들어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번 재판은 반인도 범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의 종합판이 되고 있다.

누가 재판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의 전범들은 각기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 국제군사법정의 재판을 받았다. 이후 전범재판이 다시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르완다 내전과 구유고연방 내전 당시 이른바 `인종청소'로 대량학살을 자행한 반인도 범죄를 국제사회가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엔에 두 사건 전범들을 다루기 위한 특별재판소가 각각 설립됐다.
르완다와 구유고연방 외에 동티모르와 시에라리온 등지에서 벌어진 학살과 관련해서는 유엔에 별도의 재판소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해당 국가에 유엔이 지원하는 재판소들이 설치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후세인을 비롯, 이라크의 옛 독재정권을 이끌던 인물들은 유엔과 상관없이 이라크 내에서, 이라크인들에 의해, 이라크 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 2003년 말 후세인이 체포된 뒤 수사는 사실상 미군 정보당국이 일임하다시피 했다. 이라크특별재판소 측이 조사를 벌이기도 했으나 지난 6월 공개된 동영상에서 보이듯 후세인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형식적인 심문에 그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후세인의 처분에 유엔 등 국제기구가 개입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라크 새 정부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 이라크 과도정부측은 이라크인들에게 고통을 준 후세인을 이라크인들의 손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 군정은 지난해 4월 군정법령에 따라 특별재판소를 설립함으로써 이라크 측의 주장을 들어줬다. 실제 국제전범재판들은 10년 이상씩 끌면서 지지부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를 빨리 청산하고픈 이라크 과도정부 측의 입장도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라크인들 사이에서는 후세인 처벌이 `남의 손에' 맡겨지는 것을 국가적 자존심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었다.

국제법학자들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영국의 법학자 제프리 로버트슨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 인터뷰에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유엔은 대량학살과 같은 대규모 범죄들을 `반인도 범죄'로 규정했다"며 "따라서 반인도 범죄는 일국 법이 아닌 국제법에 규정된 범죄이므로 그 재판은 국제법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옥스퍼드대의 애덤 로버츠 교수는 "비효율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유엔 산하 국제법정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레바논의 변호사이자 국제법 교수인 치블리 말라트는 "이라크 외부에 유엔이 지원, 감시하고 이라크인들이 관할하는 형태의 재판소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처벌의 `국제기준'은 무엇인가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번 재판이 후세인 정권의 중대한 범죄들을 낱낱이 밝혀내 `진실과 화해'의 장으로 만들기보다는 보복성 재판이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16일 보고서를 내 "후세인 재판은 국제법을 충족시키지 못한 재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올초 비슷한 보고서를 내놨었다.

인권단체들은 `가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후세인 변호인단 중에는 과거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폭탄테러범으로 몰렸던 길포드 포(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실제 주인공)의 변론을 맡아 유명해진 영국의 앤서니 스크리브너와 같은 저명한 인권변호사도 참여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후세인이 `속전속결'로 사형을 언도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비판의 바탕에는 사형제도를 둘러싼 엇갈린 인식이 깔려 있다. 유엔 법정들은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형을 금지하고 있는 반면, 이라크 특별재판소는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사형제도는 그 자체로 논란이 많은 탓에, 인권단체들과 이라크 어느 한쪽의 기준이 `보편적인 국제기준'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헌법 없이 만들어진 특별재판소


이른바 `특별재판소'의 권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대다수 이라크인들이 후세인의 처벌을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재판소는 헌법도 새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졌다. 휴먼라이츠워치의 국제법 전문가 리처드 디커는 "이라크인들은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법으로 중요한 범죄자를 심판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후세인의 변호인들은 재판소 설치가 초헌법적이라며 권위를 부정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자체가 불법적인 것이며, 불법적인 행동의 결과로 나온 재판은 시작부터 정통성을 잃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후세인은 이란과 쿠웨이트를 침공한 바 있다. 이란은 후세인 재판을 하루 앞두고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후세인의 민간인 학살 등도 기소해 달라"며 특별재판소 측에 일종의 범죄 리스트를 전달했다. 반인도 범죄의 경우 피해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재판에 개입을 원하는 당사자들이 많지만 이런 문제를 하나로 정리할 진정한 `국제기준'은 아직 없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후세인 재판은 반인도 범죄 재판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국제사회가 아직도 보편적 기준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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