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드디어 사하라로!
아침 7시20분에 제마 엘 프나 광장의 카페프랑스 앞으로. 이곳저곳 여행사와 계약한 손님들이 모여든다. 방콕에서와 똑같다. 어디서 계약했든 손님들은 승합차 기사님들 지시에 따라 이합집산. 나와 요니는 잽싸게 기사님 옆 앞자리로 올라탔다. 3박 4일간의 여행경비는 둘이 합해 1950디르함. 아침저녁 식사는 포함, 점심식사와 물값 등은 포함돼 있지 않음. 각종 입장료 중에는 포함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마라케시를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차가 많이 막혔다. 도시 외곽에서는 양과 말과 당나귀와 차들이 한데 뒤섞여 아수라장. 근처에 양 시장이 서는 모양이었다. 이런 광경, 우리에겐 사라져버린 근대와 전근대가 혼재해 있는 풍경을 보면 어쩐지 묘하게 즐거워진다.
뭐랄까, 내게 있어 중동은 그런 곳이다. 이라크를 통해 처음 중동 지역에 발을 디뎠을 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 지역의 무겁도록 긴 역사가 한 순간 다가오는 듯한 느낌. 사막의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유조차들과, 초월자라도 되는 양 길을 가로지르는 낙타들 혹은 양떼. 여러 시간들이 중첩돼 있는 곳. 비단 중동이 아니더라도, 여기 이 모로코에서처럼, 여러 시간들이 겹쳐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내겐 유달리 소중한 경험이다. 우리가 일직선상으로 고속질주하면서 지워버린 것들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 두자.
버스를 타고 아틀라스 산맥을 넘다. 들어나 봤나, 아틀라스!
아틀라스 산지는 높은 아틀라스와 중간 아틀라스와 안티 아틀라스로 구분되는데 우리는 하이와 미들 지역을 타고 넘은 것 같기도...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음(엄훠 그러고 보니 여행 다녀온지 벌써 1년이 되어감;;).
당연한 거지만 아틀라스 꼭대기는 시원했다... (나중에 돌아올 때에는 비가 내려서 엄청 추웠다) 차가운 바람, 내가 몹시도 좋아하는 황량하면서도 멋진 경치. 황량한데, 스페인의 광야나 요르단의 광야 같은 곳들과는 또 다르다. 이 풍경을 말로 설명하긴 힘드니 이만 생략.
풍경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참 힘들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시각장애인 사브리예 텐베르켄의 티베트 여행기를 읽었는데, 남다른 마음의 눈을 가진 텐베르켄은 정말 멋지게 그 특별한 눈으로 본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내겐 그런 재주가 없으니 마음 깊이 새긴 풍경은 그냥 마음 속에 감춰두기로.
중간 기착지는 와르자자트 Ouarzazate. 사막 한 가운데에 카사바(성채)가 있다. 기사님이 내려주신 식당에서 후다닥 비싼 따진을 한 그릇 해치우고 카사바에 들어갔다. 입장료 20디르함. 크지는 않다.
하지만 이날 저녁부터 밤까지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첫날 밤을 보낸 곳은 사하라 서쪽 끝단에 해당되는 자고라 Zagora. 황량한 흙길 어딘가에 내려 낙타로 옮겨탔다. 요니와 둘이 한 마리에 탔는데, 덜컹덜컹 흔들흔들... 이렇게 신나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몇번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린 흥분해 있었고, 기분이 말 그대로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했다.
상상이 되나요?
낙타에 실린 8명의 행렬, 그들을 줄줄이 이어 앞뒤에서 끌고 몰고 가는 베르베르 아저씨 두 사람. 검푸른 하늘, 달빛, 사막을 넘어가는 우리의 그림자. 사이사이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 왁자지껄 어느 새 기분 좋아진 사람들의 웃음소리, 서로 다른 언어로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
30분 정도 이동해 가니 사막에 천막 몇 채가 쳐있다. 거기가 우리의 숙소. 주변이 괴괴하니 조금 무서울 법도 했지만 그러기엔 또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분위기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곳에는 수도도 전기도 없다. 하늘과 모래 뿐. 조금 떨어진 곳에 낙타들이 매여 있고, 또 조금 떨어진 곳에 '부엌' 격인 베르베르족의 천막이 있다.
프랑스에서 왔다고 절대 말하지 않고 프랑스의 남부 바스크 컨트리에서 왔다 말하는 커플, 엄마는 이탈리아인에 큰 딸은 벨기에인에 큰아들은 스위스인이라 말하는 정체불명의 가족(이들이 현재 어디 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음), 그들과 함께 보낸 사하라의 밤. 베르베르 아저씨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우린 웃고 떠들고..
그 사이 요니는 사구에서 슬라이딩. 요니가 어찌나 즐거워했던지. 기분이 너무 좋으면 혼자서도 그냥 웃음이 나오나 보다. 낮으막한 모래언덕에 달려올라갔다가 굴러내려오고, 뛰어내려오고, 몸을 파묻으면서 요니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텐트 앞에까지 들려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사는 끝내주게 맛있었다. 채소와 닭고기 따위를 적당히 익힌 따진에, 맛있는 빵과 버터와 홍차와 커피. 게다가 씻지 않고 잠드는 것은 즐거운 일. 물이 없으니 씻지 않는다. 저녁마다 씻고 자기 귀찮아 하던 요니는 '당당하게' 모래투성이인 채로 잠들 수 있다며 좋아했다. 요니야, 엄마도 그래. 모두모두 지저분하게 지내니 정말 신나. 이렇게 아주 잠시 웃고 떠들다가, 작은 랜턴 하나 켜진 천막에서 담요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다.
10월 24일, 사막 여행 둘째 날
사막의 여명을 보리라는 꿈은 그냥 꿈으로 남겨 두고.. 이미 동튼 뒤에 일어나 적당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천막 주변을 산책하다가, 요니를 모래에 파묻고 놀다가, 다시 차를 타고 출발. 점심 식사하러 잠시 멈췄는데... 사하라에서 비 맞고 무지개를 보다. -_-
나 사막에서 비 맞는 것 이번이 두번째. 어찌 되었던, 우리를 슬픔에서 빠져나올수 있게 다독여준 무지개...
왜 슬펐냐고요?
카메라 잃어버림... 멘붕... 요니 울었음.
카메라보다 더 아까운 것은, 요니가 이 여행에서 찍은 950장의 사진들이 날아갔다는 사실. 요니가 찍은 것들로 블로그에 '사진작가 요니' 코너를 만들자고 했는데... 엉엉엉. 갤탭 액정도 깨뜨렸음. 흙흙
전날 낮에 달렸던 길을 중반까지 다시 되돌아가서, 하두 Haddou 로. 정확한 명칭은 아잇 벤 하두 Aït Benhaddou. 흙으로 지어진 요새 같은 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여기서 할리웃 영화들과 드라마 등등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소돔과 고모라, 글라디에이터, 인디애나존스 시리즈 중 하나, 왕좌의 게임, 바벨 등등을 찍었다고 하는데 나는 모르니까 패스.
아잇 벤 하두
그곳에서 전날을 함께 보내며 정든 일행과 헤어져, 다른 차로 갈아탔다. 새 차;;의 멤버들은 20대로 사료되는 스페인 청년 예닐곱명. 으아으아... 이들 참 즐겁고 발랄하여.... 시끄럽다. 얘네들을 보면서 든 생각. 말은 안 통하지만(영어 전혀 안 됨) 울나라 20대 애들보다 훨씬 천진난만해 보인다는 것. 까불까불 노는 것도 그렇고... 찌든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날 밤의 숙소는 뚜드라 협곡 Les gorges de TOUDRA.
저녁에 잠시 칠레에서 온 관광객 2명과 수다를 떨었다. K팝이 칠레에서 아주 인기라고 해서, 한국의 극히 일부에게 아옌데와 칠레 좌파들의 투쟁이 인기;;였던 시대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몹시 놀라더군요 -_- 우리는 독재자의 딸이 대선 유력 주자인데, 피노체트 딸이 너희 나라에서 대선에 나오면 어떨까, 물었더니 고개를 몹시도 완강히 흔들며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님들, 우리도 그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앞날은 모르는 거더라고요... 아무튼 댁들 나라에선 그런 일 없도록 빌어드리리다.
어흐흐흑 협곡은 어찌나 춥던지. 기사 아저씨가 "뚜드라는 여름에도 서늘한 곳"이라더니 사실이었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해야 하는데... 수도꼭지 매우 부실함. 절절 끓는 물 나오거나 아니면 찬물 나오거나. 요니랑 바들바들 떨며 어찌어찌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들어가 두껍디 두꺼운 담요에 눌려 잤음.
10월 25일, 협곡을 지나 가도가도...
스페인 청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다데스 협곡 Dadès Gorges으로. 잠시 내려 사진 박고, 띠네르 Tiner 라는 베르베르 마을에 들렀다. 양탄자 가게에 들어가 앉아 베르베르 양탄자들을 구경하고, 설명 듣고, 차 마시고. 그냥 일어서려면 초큼 난감했을 텐데 다행히도 스페인 청년 한 명이 작은 카펫을 하나 샀다. 난 얘네들 이런 게 귀엽고 천진해 보이더라구. 총각, 그거 들고 여행다니는 거 번거롭지 않아? 웬만하면 울나라 청년들은 그런 거 안 살 것 같은데... ㅋ
베르베르 마을을 다니다 보니 머리쓰개를 많이 판다... 가 아니고, 사막에 가려면 꼭 있어야 한다며 모두들 장만하라고 가이드님이 지시하신다. 하지만 내게는 이슬람권을 다닐 때 늘 갖고가는 히잡이 있지. 이라크에서 10년 전 산 내 히잡, 여행 때마다 빛을 발하는 소중한 아이템. 베르베르 가이드 아저씨가 요니에게 자기네 식으로 둘러주셨다. 머리수건으로 감싸 놓으니 동글동글 요니.
실은 웬만하면 여기서 히잡같이 생긴 거 요니 하나 사주려 그랬는데 울도 아니고 면도 아니고 폴리에스터 70%, 요니 피부에 두르지도 못하는걸 18000원 다짜고짜 부르는 거 보고 열받아서 안 삼. 이집트에서 사온 울 스카프가 한장에 4000원, 이라크산 내 히잡은 1000원도 안했는데. 여기 물가 은근 짜증. 그래도 사람들은 좋음 ㅎㅎ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 모로코는 기껏 사하라의 서쪽 끝일 뿐이니 이 모래바다는 정말 얼마나 거대한가. 사막투어 첫날을 보낸 자고라와 와르자자뜨 등지는 알 바브 알 사하라, 즉 '사막의 문'에 해당되는 곳이다. 거기서 동쪽으로 더 달려 리싸니 Rissani를 지나면 '문'을 지나 진짜 사하라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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