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이집트 군부가 ‘48시간의 최후통첩’ 뒤 무슬림형제단 소속의 모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전격 축출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군부 쿠데타인 이 사건을 미국은 ‘쿠데타’로 규정하길 꺼렸습니다. 지난 14일부터 며칠 째 계속되고 있는 이집트의 유혈사태는 이집트 군부(현 정부)와 무슬림형제단 간의 정치적 타협을 중재하는 데 실패한 미국의 ‘외교적 실패’라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미국은 왜 실패했으며, 이집트 정국을 둘러싸고 ‘막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17일 이집트 쿠데타 이후 벌어진 막후의 외교협상을 되짚어보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유럽연합 이집트 특사인 스페인 외교관 베르나르디노 레온과 미국의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이 2주 동안 수차례 이집트를 방문하고 군부 측과 무슬림형제단 인사들을 만나 협상을 중재했다고 합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 /위키피디아
당면 목표는 무르시 축출 뒤 계속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반정부 시위를 평화적으로 해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집트 정부 측에 시위 유혈진압만은 피해줄 것을 요구했고, 조기 선거를 통해 새 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쿠데타를 인정해주고 파국만을 피한 채 다음 수순을 모색하려는 방안이었던 셈입니다.
카타르의 할레드 빈 모함메드 알아티야 외무장관이 무슬림형제단 쪽에서 협상에 관여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빈 술탄 외무장관은 이집트 정부 편에서 참여했습니다. 무르시 축출 뒤 세워진 과도정부의 한 축으로 당시 부통령을 맡고 있던 모하마드 엘바라데이는 서방과 아랍권 이웃들이 제안한 이 협상안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레온 특사에 따르면 이집트 군부의 수장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이 안을 거부했습니다. 쿠데타 뒤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과 군부 측은 서로 미국이 상대방 편에 서 있다며 불만을 표하던 터였습니다. 결국 상황이 최악의 유혈사태로 귀결되자 엘바라데이는 부통령 자리를 내놨고, 이집트 정부 내 협상파의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일각에선 미국-유럽-카타르-UAE가 협상을 중재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실패를 노정하고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카타르와 UAE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중동·북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지만 외교적 역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걸프의 소국들이라는 것이죠.
워싱턴포스트는 역내에서 영향력이 큰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무슬림형제단의 발흥을 두려워하며 이집트 군부를 계속 밀어주고 있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 두 나라의 원조액이 미국이 주는 것보다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이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미국은 무바라크 시절 이후 30년 넘게 이집트 군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고, 각종 경제·군사원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 유학파’에 미 국방부 인사들과 친분이 많다던 엘시시는 미국의 의도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강경진압의 후폭풍을 알면서도 시위가 더 연장되지 않도록 짓밟아버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미 버몬트대학 중동정치 전문가 그레고리 고스 교수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이긴 하지만, 외국 후원자의 입김 때문에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능력을 과신하고 개입하는 것보다는,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민주주의로 가는 진통’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지켜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정치분석가 데이비드 폴은 17일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이집트 군부는 지난 60년 동안 그 나라의 역사에서 세 명의 대통령을 낸 가장 막강한 정치집단이었고, 관광수입·목화수출·수에즈운하 통행료 수입 등 세 가지 외화수입원을 능가하는 원조액을 끌어들이는 최강의 경제집단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아랍의 봄 뒤 선거로 집권한 무르시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과 지지기반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죠.
무르시가 이른바 ‘파라오 헌법’ 등으로 무리수를 둔 것은 사실이지만,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이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썼던 방법들은 모두 현행법의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군부는 뒤집어 엎었습니다.
무슬림형제단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이집트 군부를 물로 보는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겪어야 할 고통이라고 봐야겠지요. 모두 이집트 국민들이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몫이고요.
폴은 “유혈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 미국이 좀더 개입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며 “미국이 ‘선의의 방관(benign neglect)’을 택하는 편이 이집트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데이비드 폴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구구절절 공감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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