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1세기 초반의 발칸 반도
927년 시메온이 죽자 불가리아의 왕좌는 아들 페투르1세 Petur I(927-969년 재위)에게 넘어갔습니다.
페투르는 선량했지만 심지가 약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도자들이 꼭 말썽이죠... -_- 독실한 정교 신자였던 그는 아버지가 벌였던 기나긴 전쟁을 끝내고 비잔틴 황제 로마누스 레카페누스 Romanus I Recapenus(로마누스1세·920-944년 재위)의 손녀와 혼인, 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습니다. 힘이 약하면 옆엣것들과 돈독해지게 마련이죠... 로마누스는 그 보답으로 페투르의 황제 호칭과 오흐리드의 총대주교를 정점으로 하는 불가리아 정교의 독립성을 인정해주었습니다.
하지만 페투르처럼 온화한 군주가 비잔틴과의 평화를 도모한다고 해서 나라가 강해질 리가 있나요. 발칸 나라들의 태평성대는 2대를 넘기기 힘들다고 했지요? 통치에 별로 흥미가 없던 페투르 재위 기간에 불가리아의 막강했던 군대는 부패하고 약해졌습니다. 그 결과 북서부 다뉴브 변경지대에 이미 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마자르족이나 북동쪽 유라시아 스텝 부족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유럽사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지명 중의 하나인 오흐리드(Ohrid). 마케도니아 서부의 오흐리드 호숫가에 있습니다.
페투르 치하에서 군·교회의 상층 기득권집단과 가난한 피지배 민중들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사회 불안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이는 종종 금욕주의의 유행 같은 종교적인 반항으로 표출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적인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이반 릴스키 Ivan Rilski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보고밀파'라 불리는 이단이 성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고밀파는 아르메니아에서 플로비도프 주변으로 이주해온 바오로파에 연원을 둔 극단적인 이원론 종파로, 기존의 모든 사회 질서를 거부했습니다.
★보고밀(Bogomil)파
아르메니아 바오로파의 이원론과 정교 개혁운동이 결합돼 10세기에 불가리아에서 생겨났다...고 하네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고밀파라는 이름은 창시자인 보고밀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물질적 혜택을 신의 은총으로 여기는 기독교의 논리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결혼과 육식, 음주도 죄악시하고 금욕주의를 지켰답니다. 인도의 자이나교 같군요;; 비잔틴 제국의 탄압 속에서도 보고밀파는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 발칸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남동부 유럽을 정복한 후에는 많은 신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보리스2세(969-972년 재위) 치세 초기에 스뱌토슬라프 Svyatoslav(964-972년 재위) 대공이 이끄는 키예프 루시(키예프 공국들의 연합국가) 군이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러자 군사적, 사회적으로 몹시 쇠락해 있던 불가리아는 그대로 정복되고 말았습니다. 시메온1세가 나라를 키운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허망합니다. 러시아군은 보리스2세를 붙잡았다가 969년 불가리아의 꼭두각시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오흐리드는 인구 4만2000명의 소도시입니다만 고대부터 지역 내 중심지였던 곳이고요, '발칸의 예루살렘'이라 불린답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옆에 붙어 있던 불가리아가 이 지경이 되자, 불안해진 것은 비잔틴입니다. 러시아 세력에 위기감을 느낀 비잔틴 황제 요한네스 치미스케스 Johannes I Zimisces(요한1세·969-976년 재위)는 972년 러시아 및 그들과 연합한 불가리아 세력을 육·해상 양쪽으로 공격했습니다. 한때 불가리아보다도 약했지만 그래도 제국은 제국, 힘을 정비해놓았던 비잔틴은 소피아를 점령하고 스뱌토슬라프의 부대를 다뉴브 너머로 쫓아냈습니다. 비잔틴은 러시아 세력을 아예 불가리아 땅에서 몰아냈습니다.
치미스케스는 또 보리스2세를 폐위시키고 오흐리드의 총대주교좌를 대주교좌로 낮춰 콘스탄티노플 아래로 집어넣었습니다. 아까 친하던 시절에 해줬던 것들 다 빼앗은 셈입니다. 그리고 불가리아 동부를 비잔틴 제국에 편입시켰습니다. (당시의 비잔틴 제국은 마케도니아 일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 비잔틴 왕조'라고도 하고 그냥 '마케도니아 왕조'라고도 부릅니다. 사실 이 '비잔틴'이라는 것만큼 애매모호한 게 없어요. 아주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걍 '그리스'라고 하면 되는데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서... )
치미스케스는 공식적으로 불가리아를 없앴지만 그래도 불가리아의 지배 체제는 살아남았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에서도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고 비잔틴에도 넘어가지 않은 마케도니아와 다뉴브 사이 지역은 불가리아 잔존세력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976년 마케도니아계 장군 사무일(Samuil·976-1014년 재위)이 불가리아 서부에서 왕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오흐리드를 수도로 선포한 뒤 소피아까지 손에 넣고 오흐리드의 총대주교좌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의 군대는 남쪽의 그리스 지역(비잔틴령)까지 공격해 들어갔고, 한때 동쪽으로 흑해에 이르는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마케도니아 비잔틴 왕조의 마지막 강력한 황제였던 바실레이오스2세 Basileios II(963-1025)는 996-1014년 군사작전을 벌여 사무일 세력을 초토화시켜 ‘불가록토누스 Bulgaroktonos(불가르족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평원 전투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본 불가리아인들은 게릴라전에 들어갔습니다. 게릴라 전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불가리아군은 981년 소피아 남동쪽 산악지대에서 비잔틴 군대를 함정에 빠뜨려 패배시켰습니다. 하지만 바실레이오스가 무자비하게 불가리아 요새들을 없애고 게릴라 장군들을 매수하자 사무일 군대의 저항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오흐리드에 있는 '사무일의 요새'입니다.
바실레이오스가 영토를 잠식해 들어오고 휘하의 장군들도 넘어가자 1014년 사무일은 마케도니아 동부 산지로 밀려가 비잔틴에 맞서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의 군대는 측면을 포위당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바실레이오스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잔혹하게도 1만4000명의 불가리아 포로들의 눈을 뽑았습니다. 그러면서 100명 중 1명꼴로 한쪽 눈을 남겨, 나머지 눈먼 99명을 데리고 사무일에게 돌아가게 했습니다. 훗날 십자군에게 혹독하게 당하게 되는 비잔틴, 그들도 패자들에게 이런 짓을 했었답니다...
자신의 부대가 끔찍한 몰골로 돌아온 것을 본 사무일은 충격을 받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후 4년에 걸쳐 불가리아는 비잔틴에 병합됐습니다. 불가리아 지도부는 결국 비잔틴 지도층에 흡수됐고 불가리아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 밑의 자치 대주교좌로 다시 격하됐습니다. 불가리아라는 나라가 다시 나타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불가리아 북쪽에서는 이 시기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 부족들이 각각 독립 국가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크로아티아 부족 지도자 토미슬라프 Tomislav(923-928년 재위)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비잔틴(동로마)을 피해서 로마(서로마)와 손을 잡은 셈입니다.
20세기 초반 크로아티아 화가 요시프 호르바트(Josip Horvat Međimurec)가 그린 토미슬라프의 초상. 크로아티아라는 '나라'를 처음으로 지도상에 등장시킨, 크로아티아인들의 민족 영웅입니다. /위키피디아
당시 로마 교황은 발칸에서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에 맞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을 채비가 돼 있었습니다. 심지어 로마는 토미슬라프 세력이 라틴어 대신 러시아어와 비슷한 글라골 문자로 전례를 행하는 것조차 허용해줬습니다. 물론 나중에 가서는 결국 라틴어가 크로아티아 교회의 지배적인 종교 언어가 되었지만요.
불가리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동맹을 찾고 있던 비잔틴도 토미슬라프를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세워진 신생 크로아티아 국가는 아드리아 해의 제해권을 놓고 비잔틴, 베네치아와 끊임없이 다퉜습니다. 다뉴브 분지 평야를 놓고서는 헝가리와 영토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세르비아는 8세기 후반부터 나라를 갖출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불가리아와 비잔틴 양쪽의 공격 때문에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11세기 초반 불가리아가 망하자 세르비아인들도 독립 국가를 세울 공간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나라는 11세기 중반 아드리아 해 연안의 좁은 산지인 제타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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