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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최초의 인류

딸기21 2012. 4. 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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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최초의 인류 The Beginnings of Humankind

도널드 조핸슨. 진주현 해제, 이충호 옮김. 김영사. 



미국 고인류학자 도널드 조핸슨이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지역에서 (당시 기준으로) 가장 오래된 인류 화석 '루시'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 이렇게만 적으면 너무 썰렁하다. 문제의 '루시'는, 고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존재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책을 읽고 있던 우리 딸도 "엄마가 읽던 책에 나온 '루시'가 여기에도 나왔어요!" 하면서 제 책을 들이밀 정도이니 말이다.


아파르 지역에서 나왔다 해서 '호모 아파렌시스'라는 이름이 붙은 루시는 1974년 발굴됐다. 저자는 루시를 발굴하기까지의 과정, 루시의 발굴을 둘러싼 저간의 사정과 고인류학자/고고학자들의 작업, 루시 발굴 이후에 학계에서 벌어진 소동 등을 상세히 다룬다. 루시가 나타나기 이전까지 서구의 학계에서 생각했던 인류 진화의 '계보', 이런저런 학계 유명인사들(그래봤자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겐 다들 생소한 이름이지만)의 속닥속닥한 뒷얘기, 루시와 뒤이은 발굴들 덕분에 인류의 진화에 대한 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을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 아들 리처드 리키에 대한 얘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긴팔원숭이는 한국어 이름이 잘못된 것이지 사실은 원숭이가 아니라는 것(어디까지나 꼬리없는 '유인원'이다!), 직립보행을 한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무릎뼈 연결이 어떻게 다른지, 동아프리카 화석지대에서 발굴되는 돼지 종류들이 화석의 나이를 세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지표인지 등등, '쓸데 없는 것'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느낄만한 얘깃거리들도 많다.


아주 느슨하지는 않지만, 살짝 깊이가 있으면서도 적당한 뒷담화들을 섞어 재미나게 엮었기 때문에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미국에서 책이 출간된 것이 1981년이니 그 뒤로도 벌써 세월이 많이 지났다. '루시 이후의 상황'은 한국 고고학자가 상세히 해제를 해놨기 때문에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명색이 고고학과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발굴장 한 번 가본 적 없을 뿐더러 리키의 '오리진'조차 읽지 않은 불량학생이었던 딸기... 그런데 때아닌 고고학(저자는 '미국인'답게 '고인류학'과 고고학을 고집스레 구분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어영부영 통칭한다) 책을 손에 쥔 것은, 그저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왜 집에 있었느냐? 회사에 굴러다닌 것을 주워왔기 때문이다. 거의 늘 '필요'에 따라서만 책을 읽는데, 이 책은 아무 목적 없이 오락 삼아 읽었다. 충분히 훌륭한 오락거리가 됐다! 흥미진진 재미있었으니까.


읽고 나서 남은 것은 물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늘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 "50년은 우리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한 유인원이 우리를 탄생시키려고 진화해온 2000만 년의 세월과 비교하면 눈 깜짝할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영장류에게 하고 있는 짓, 아니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고 있는 짓에 대한 저자의 경고다. 


빅토리아 호에서 리키가 발견한 마이오세의 화석들(1932년부터 1955년까지 수집한)은 진지와 호모 하빌리스만큼 보통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이주 중요하다. 거기에는 마이오세에 살았던 다양한 유인원의 부분 화석이 포함돼 있는데, 그 당시에 살았던 포유류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종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들 화석은 먼 과거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마이오세에는 지금과는 대조적으로 다양한 크기의 유인원이 번성했다. 지금은 그 후손이 겨우 다섯 종류만 남아 있고, 그중에서 단 한 종(우리)을 제외한 나머지는 서식지가 극히 제한된 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마이오세에 크게 번성했던 유인원 중에서 사실상 우리만이 유일한 생존자라는 현실을 돌아본다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현생 유인원들에게 닥친 재앙의 원인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르완다나 부룬디, 콩고의 숲에 사냥꾼이 조금만 더 늘어난다면 고릴라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간다의 부동고 숲을 계속 베어내고, 곰베 강을 경작지로 만들고, 그러지 않아도 허약한 서식지를 계속 파괴한다면 침팬지도 사라질 것이다. 보르네오 섬에서 새끼를 빼앗기 위해 어미를 수백 마리만 더 죽이면, 오랑우탄도 멸종하고 말 것이다. 인도차이나와 말레이 반도의 숲을 목재용으로 베어낸다면 긴팔원숭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모든 유인원이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앞으로 50년 안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50년은 우리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한 유인원이 우리를 탄생시키려고 진화해온 2000만 년의 세월과 비교하면 눈 깜짝할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171쪽)



* 김영사에서 나온 책은 이상하게도 그리 많이 읽지를 않았다. 아마도 그 출판사의 책 선택과 나의 취향이 잘 맞지 않아서일텐데, 이 '루시'는 김영사에서 나오고 있는 '모던&클래식'이라는 시리즈 중의 하나다. 

그 시리즈 목록을 훑어보니 오래전 나왔던 데이비드 쾀멘의 '도도의 노래'가 들어있네. 루시와 마찬가지로 이충호 선생님이 번역한 것인데,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다시 내놓은 모양이다. 시리즈 중의 한 권인 브로노우스키의 '과학과 인간의 미래'를 읽고 있는데, 임경순 선생이 훈늉하게 번역해놓은 것 같다. 꽤 공들인 시리즈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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